처칠 같은 ‘구심점’ 실종 … 자국 우선에 갇힌 ‘극단 세계’
■ 창간 31주년 특집 - 리더십 없는 리더시대 (1) 다자주의 시대의 종언
통합의 상징 부재로 ‘사분오열’
2차 대전 종식 처칠 · 쿠바 핵위기 돌파한 케네디 지도력 없어
바이든 ‘美 우선주의’ · 習 ‘종신집권’ · 푸틴 ‘침략전쟁’ 폭주
서방 - 反서방 ‘강요의 시대’
우크라發 ‘편 가르기’ 심화 … 중립 핀란드 · 스웨덴도 나토行
反美 하메네이 ‘러 밀착’ … 미온적 마크롱 · 숄츠 존재감 미미
2022년은 향후 역사에 ‘리더십 없는 시대’의 원년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전후 세계질서를 형성·주도해온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자국 우선주의’를 이어가면서 ‘세계 경찰’은 사라졌다. 영국에서는 올해 총리가 3번이나 바뀌었고, 이탈리아에선 1922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 이후 100년 만에 극우 총리가 탄생했다. 이 틈을 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3연임에 성공하며 사실상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북한의 핵 개발도 점증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낳은 불평등 속에서 3년째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변화 등 인류가 풀어야 할 공통의 숙제는 갈수록 쌓이지만 지금 세계에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켰던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나 1960년대 쿠바 핵 위기를 돌파했던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같은 ‘거인’ 리더십이 실종됐다. 협력·공존의 다자주의가 허물어진 자리에는 ‘각자도생’과 양극화, 포퓰리즘만 득세하고 있다. 무게감 있는 리더가 없는 시대, 구심점 없이 표류하는 세계는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지금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진정한 리더를 갈구하고 있다.
◇거인의 줄퇴장…‘리더십 없는 리더의 시대’ 열렸다 = 지금 국제사회는 구심점이 될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아마겟돈’ 경고만으로는 역부족이다. 통합의 상징이자, 협력의 아이콘이었던 유럽연합(EU)도 우크라이나 전쟁 앞에서 사분오열이다.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나’를 도왔던 영국은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총리만 5명에 달할 정도다. 유럽 통합의 구심점이었던 독일과 프랑스의 리더십 역시 존재감이 미미해졌다.
반면 통합의 리더십으로 전 세계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던 거인들은 사라져 가고 있다. ‘무티(Mutti·엄마)’ 리더십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해 12월 퇴임했고, 영국의 정신적 지주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지난 9월 서거했다. 냉전 체제 종식과 소련 붕괴, 공산주의 몰락 등 20세기 역사 격변의 중심에 섰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평가가 갈리지만 역대 최장기간 집권하며 일본의 위상을 끌어올렸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역시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캠페인 도중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구심점 사라지면서 붕괴 위기 처한 다자주의 = 진정한 리더의 부재는 다자주의 붕괴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협력·연대 대신 양극화·경쟁이 자리 잡으면서 전후 세계를 형성했던 다자주의는 최대 위기에 처했다. 국제기구는 제 기능을 잃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미국이 2017년부터 상소기구 위원 임명을 거부하면서 무력해졌다. 팬데믹 대응의 최전선에 서야 하는 세계보건기구(WHO)는 중국의 반대로 대만의 옵서버(참관인) 참여마저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특히 무력분쟁 시 국제사회 개입을 결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파행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P5)인 러시아·중국의 거부권 행사로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공개된 자신의 신간 발췌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엔 안보리를 효과적인 갈등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조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고 호소했지만, 개혁은 요원하다. 이는 또다시 각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방 vs 반서방…韓 등 선택 강요받는 국가들 = 분열과 경쟁, 지역주의 중심으로 전 세계 역학 구도가 재편되면서 한국을 포함한 각국은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 하는 폭력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정치와 경제, 심지어 과학·문화·스포츠 분야까지 심각한 ‘편 가르기’가 자행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19일 칼럼을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우리는 외교와 대화가 사라진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사례가 중립을 지켜왔던 핀란드와 스웨덴의 선택이다. 이 두 국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 공격을 퍼붓던 지난 5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위한 신청서를 제출했다. 영국 가디언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이익을 취하던 두 나라가 완벽하게 서방 라인에 편입됐다”고 평가했다. 반면 대표적인 반미 국가인 이란은 러시아와의 공조를 강화하고 있으며, 벨라루스·아르메니아·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 5개국은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적극 참여로 돌아섰다. 글로벌 헤게모니 경쟁에서 동떨어져 있던 남태평양 국가들마저도 일부가 중국의 공세적 접근에 화답하면서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이 같은 신(新)냉전 상황은 저소득국가에는 더욱 치명적이다. 지난달 유엔총회 연단에 오른 라자루스 차퀘라 말라위 대통령의 연설은 국제사회에 묵직한 울림을 던졌다. “세계 경제는 불타고 있고, 말라위 같은 작은 국가는 ‘불타는 건물에서 알아서 자신을 지키라’는 말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국제사회의 가족이라면 설교가 아니라 실천을 해야 한다.”
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후쿠야마 “푸틴 우크라戰 승리 · 習 대만침공땐 ‘역사의 종말’ 이 종말될 수도”
- [단독] CCTV로 지켜봤지만…손 놓고 있었다
- 유승민 “선동성 정치적 주장을 해선 안된다는 장관부터 파면해야”
- 미국인 20대 여성 희생자는 연방의원 조카...“신이 주신 선물이었다”
- “집순이 우리 손녀, 얼마나 악바리같이 살았는데… 너무 불쌍해”
- [단독]日 출격 미 해병대용 F-35B 4대 군산기지 전개…한국기지 첫 착륙
- ‘검은 리본’ 고민정 “책임있는 당국자 누구 하나 사과하는 사람 없어” 비판
- 외국인 중 가장 많은 5명 희생된 이란, “한국 정부 관리 부실”
- 5.5평 공간에 질식 한계치 300명 압착… ‘선 채 실신’ 도
- 폴란드와 2단계 협력의향서… 한국 원전수출 가속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