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환·한규택 해병하사 ‘11월 전쟁영웅’…적 기습 맞서다 산화

정충신 기자 2022. 11. 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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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전쟁영웅 해병대 이창환(왼쪽)와 한규택 하사 흉상
남경 촉성회 선언문. 국가보훈처 제공

국가보훈처는 6·25전쟁 중 북한군 기습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해병대 이창환·한규택 하사를 ‘11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보훈처는 이와함께 1920년대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이하 촉성회)결성에 참여한 박건병·강경선·배천택 선생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11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된 이창환·한규택 하사는 전쟁 당시 해병대 제1연대 3대대 11중대 소속으로 1950년 11월 평양-원산 간 도로의 요충지인 평안남도 양덕군 남동쪽에 위치한 동양리 일대를 장악하려는 적군과 대치하던 중 숨졌다.

이 하사는 1929년 8월 5일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해병대 입대 후 제1연대 3대대 11중대의 제2분대장을 맡았고, 한 하사는 1930년 4월 13일 제주도 출신으로 이 하사와 같은 소대의 기관총사수를 맡았다. 이들이 속한 해병대 제1연대는 1950년 11월 당시 북한 내 수복지역 평정 작전에 참여해 전선을 교란하고 병력 보충과 아군 보급선을 위협하는 북한군 패잔병을 소탕하는 작전을 담당하고 있었다.

11월 20일 대대 규모 패잔병이 동양리 일대 장악을 시도하자 11중대가 출동했다. 이 하사는 분대를 이끌고 선두에서 적진에 접근하던 중 중화기로 무장한 적 200여명의 기습 공격을 당했다. 그런데도 적진으로 돌입해 적을 제압하던 중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한 하사는 중대가 철수에 어려움을 겪자 이미 총탄에 맞아 유혈이 낭자한 상황에서도 중대가 철수할 수 있도록 끝까지 엄호하다가 쓰러졌다. 해병대는 이들의 사명감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경북 포항 해병대 교육훈련단에 흉상을 건립, 후대의 귀감으로 삼고 있다.

한편 1892년 강원도 김화 출생의 박건병 선생은 1919년 5월 서울에서 결성된 임시정부 지원단체인 대한독립애국단 소속 강원도 ‘철원군단’(鐵原群團)에서 학무국장으로서 임시정부를 선전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는 활동을 벌였다.

상하이(上海)로 망명 후 1920년 1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강원도 의원으로 선출됐다. 1924년 8월 ‘북경한교동지회(北京韓僑同志會)’ 결성에 참여해 기관지인 ‘도보’(導報) 집필진으로 참여, 강력한 투쟁을 바탕으로 한 독립운동을 강조했다.

1927년 베이징(北京)에서 촉성회가 결성되자 집행위원 15명 중 1명으로 선출됐다. 강경선 선생은 1891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 1920년 12월 상해대한인거류민단의 간사로 활약했고 1921년 11월 대한적십자회에서 상의원(常議員)에 선출됐다. 이후 중국 안동현에 있는 이륭양행을 통해 국내 정보를 수집해서 임시정부에 연락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상하이 상해대한교민단 의원을 맡아 활동했고 1926년 인성학교에서 교감으로 후진양성을 위해 노력했으며, 1924년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평안도 의원으로 선출됐다. 베이징지역에서 한국유일독립당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자 상하이지역에서도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민족주의자들이 좌우합작을 위해 노력하는 등 1927년 한국유일독립당 상해촉성회 설립에 기여했다. 선생은 촉성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돼 독립운동의 활로 모색을 위해 노력했다.

배천택 선생은 1892년 경북 대구 출생으로 1919년 중국 류하현에 있는 군정부(軍政府)가 서로군정서로 개편될 때 참여했고 1923년 1월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에 참가, 비서장에 선출됐다. 1926년 7월 베이징에서 북경촉성회를 조직할 때 집행위원으로 선출돼 창립선언서의 기초를 만들었고 1927년 상하이에서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 결성에 참여해 상무위원으로 활동했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통합한 단체였던 촉성회는 1928년 5월 주요 인물들이 체포되면서 활동이 위축됐고 1929년 해체 수순을 밟았다.

정부는 1993년 박건병 선생, 1995년 강경선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배천택 선생에게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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