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디자인할 수 있을까?… ‘존엄사’의 가치를 묻다

안진용 기자 2022. 11. 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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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욘더’는 안락사를 화두로 삼으며 인간의 존엄한 죽음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 ‘다 잘된 거야’

■ 드라마 ‘욘더’ · 영화 ‘다 잘된 거야’ 로 본 ‘고귀한 죽음’

4년전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후

연명중단 등록 의향서 140만명

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갈망 반영

존엄사 다룬 콘텐츠 속속 등장

죽기전 기억 업로드한 가상세계

고통 사라진 천국에 빗댄 ‘욘더’

안락사 내용 담은 ‘다 잘된 거야’

뇌졸중 노인 고민 관객과 공유

지난 9월 ‘네 멋대로 해라’로 유명한 프랑스 감독 장뤼크 고다르가 세상을 떠났다. 누벨바그 사조를 이끈 거장의 별세 소식만큼 눈길을 끈 것은 그가 안락사를 선택했다는 보도였다. 지난 3월에는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의 아들 앙토니 들롱이 프랑스 라디오 RTL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내게 안락사를 부탁했다”고 밝혔다. 장뤼크 고다르는 안락사가 합법인 스위스에서 눈을 감았고, 알랭 들롱 역시 스위스 국적 취득 후 이곳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의료 기술의 발달은 인간 생명을 연장시켰다. 하지만 풍선효과처럼 “존엄하지 못한 연명을 거부하겠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이후 지난 8월까지 연명의료 중단 의향서를 등록한 사람의 수는 140만 명이 넘는다. 삶과 죽음을 결정할 권리를 직접 갖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연명의료 중단을 넘어 안락사, 즉 조력 존엄사를 원하는 이들이 늘면서 지난 6월에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력 존엄사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문화와 현실은 상호작용한다. 문화는 현실을 반영하고, 현실은 문화를 투영한다. 최근 안락사와 죽음 후의 삶을 다루는 콘텐츠 역시 크게 늘어난 이유다.

지난달 14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이 공개한 ‘욘더’(감독 이준익)는 “죽음을 디자인할 수 있을까?”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근현대인 2032년 안락사법이 통과된 세상이 배경이고, 심장병 투병 중 안락사를 선택한 이후(한지민 분)와 그의 남편 재현(신하균 분)이 주인공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 바이앤바이라는 업체와 계약을 맺은 후 욘더라는 곳에 기억을 업로드한 이후는 사망 후 재현에게 “난 여기로 떠나온 거야. 날 만나고 싶으면 여기로 와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욘더는 죽은 자의 기억으로 구축된 세계이고, 남겨진 자들은 그곳에 접속해 그리운 이들과 만날 수 있다. 이후는 과거 재현과 행복한 한때를 보냈던 장소들을 죽음 후 새롭게 정착할 곳으로 디자인했다.

처음에는 욘더를 부정하던 재현도 결국 이후에 대한 그리움으로 점차 욘더라는 가상 세계에 끌린다. 이는 사회적 현상으로 번지고, 죽은 이들을 따라 욘더로 가기 위한 연쇄 자살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다. 이런 상황은 “내가 없어진다는 건 나에게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당신으로부터 없어지는 것이다”라는 이후의 대사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은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죽음 이후의 삶’이란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한 인간에게 ‘당신이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라고 ‘욘더’는 묻는다.

사실, ‘욘더’의 세계관은 새롭지 않다. 죽음으로 인해 육신의 고통과 슬픔이 사라진 욘더 속 삶, 그건 곧 천국이다. 이는 인간을 구원한다는 종교의 근원과 맞닿아 있다. 죽음 뒤의 삶에 대한 약속이다. 재현은 욘더를 창조한 뇌과학자 장진호를 향해 “(욘더가)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냐며 “그게 바로 사이비 종교”라고 꼬집는다. 이에 장진호는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다”면서 “5만 년 동안 지구상에서 1000억 명 넘게 죽어 사라졌는데, 단 한 명도 되돌아와서 천국이 있다고 알려준 사람은 없다. 도대체 인간이 믿어 온 천국은 어디 있나?”라며 죽은 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자신이 디자인한 천국의 정체성을 옹호한다.

‘욘더’는 안락사가 허용된 이후의 죽음과 삶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직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결국 존엄한 죽음에 대한 논의는 다시금 “안락사는 허용돼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지난 9월 개봉한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다 잘된 거야’는 제목의 온기와 달리 끊임없이 등장인물의 고민을 관객이 공유하게 만든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는 딸인 엠마뉘엘(소피 마르소 분)에게 부탁한다. “끝내고 싶으니 도와줘.” 파킨슨병을 앓는 아내를 두고도 강한 삶의 의지를 보이던 아버지에게 심정적으로 기대던 엠마뉘엘은 견딜 수 없는 고민에 빠진다. 결국 엠마뉘엘은 아버지의 뜻을 꺾지 못했고, 아버지는 안락사가 합법인 스위스에서 죽음으로 이르는 약물 밸브를 자신의 손으로 연다.

‘다 잘된 거야’는 10년 전인 2012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를 떠올리게 한다. 수십 년을 해로한 아름다운 노부부의 삶은 아내 안느가 병에 걸리며 황폐해져 간다. 아내는 언제나 그랬듯 남편 앞에서 품위를 잃지 않으려 하지만, 더 이상 아내의 몸은 정신력으로 지탱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남편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하나다. 아내를 사랑하기에.

‘다 잘된 거야’와 ‘아무르’ ‘욘더’는 사랑하는 가족 간 안락사 결정의 문제를 다룬다. 안락사를 원하는 이들은, “스스로 죽음을 결정할 수 있게 해달라”고 외친다. 하지만 정작 안락사 결심 후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는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안락사를 ‘조력사’ 혹은 ‘조력 자살’이라 부르는 이유다. 조력의 주체는 통상 가족이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힘으로는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씩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 이병률 시인의 ‘사람이 온다’ 마지막 구절이다. ‘욘더’는 주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수차례 이 문장을 차용하며 주제의식을 선명히 드러낸다.

안락사(Euthanasia)는 그리스어인 ‘eu’(good)와 ‘thanatos’(death)의 결합이다. ‘아름답고 존엄한 죽음’ 혹은 ‘행복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뜻한다. 인간은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에 이르게 되기까지 겪게 되는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안락사를 선택해 죽음에 닿기까지의 ‘고통’을 배제한다면 인간은 지금보다 죽음을 덜 두려워할 수 있을까? 안락사와 죽음 이후의 삶을 다룬 일련의 콘텐츠들이 거듭 던지는 질문이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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