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공천권… ‘민의’ 대신 ‘충성’ 목매게하는 정당
■ 창간 31주년 특집
- K 정치 실종, 미래 찾는다 (上) 공천권 · 계파에 휘둘린 정치
개혁적 인물조차 입당 후엔
‘행동대원’으로 만드는 구조
전문가 “줄세우기 없애려면
룰 만들고 ‘상향식’ 현실화를”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 내도
유권자 지지땐 정치할수 있게”
“정당들의 상태는 그 나라 정치체제의 본질을 보여주는 최고의 증거다.”
미국 정치학자 E E 샤츠슈나이더가 ‘정당 정부’(1942)에서 한 말이다. 2022년 현재 한국의 정당들이 보여주는 정치체제의 본질은 어떤가.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 ‘친명(친이재명)’ ‘개딸(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 같은 신조어가 보여주듯, 권력·사람 중심의 계파와 공천권을 놓고 벌어지는 헤게모니 쟁탈전, 팬덤정치 속에서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감과 효능감 저하로 미래를 향한 진지한 논의가 실종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화일보는 정치전문가 13인들에게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을 듣고 해법을 모색해봤다.
국민의힘은 지난 3·9 대선과 6·1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정작 당의 한 축이었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은 데 이어 무고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지방선거 승리 이후 본격적으로 노출된 국민의힘 내분에 관해 “큰 틀의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총선 공천권을 놓고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다툼”이라고 설명했다. 채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은 ‘총재’ 개념인데, 따르는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다면 행정부 수장으로서 어떻게 국회를 움직일 수 있겠느냐”며 “3김(金) 시대 이후 많은 대통령이 그렇게 했듯 이번 정부에서도 전례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근본적으로 여론조사를 통한 당 대표 선출로 당원 및 국회의원의 입장과 당 대표의 입장이 크게 다른 것이 원인이었다”면서도 “차기 총선에서 이 전 대표가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을 차단하려는 정치적 행위의 작용”이라고 설명했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한국의 전형적 특징으로, 집권한 이후 폭넓은 정치연합을 형성하기보다 협소한 진영에서 권력을 독점하려는 욕망에서 균열이 생긴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야가 각각 친윤(친윤석열)·비윤, 친명·비명으로 재편 조짐을 보이고 있어 계파정치 부활 우려도 나온다. 권 교수는 “계파가 정치적 방향, 정책 노선을 중심으로 형성되면 권력과 사람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결국 정치가 본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권력 싸움에 머물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계파가 이념이나 정책 대안 위주로 가면 바람직하고 생산적”이라면서도 “우리나라는 차기 대권 주자나 유력 후보 중심으로 이합집산이 일어나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반면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내 민주화가 될수록 계파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내놨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공천 개혁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특임교수는 소수 지도부에 의한 ‘줄 세우기’ 현상에 대해 “공천혁명이 핵심”이라며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도 “특정 정치세력이 공천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며 “내부 구성원이 공감할 수 있고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없는 공천 룰(rule)을 만들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상향식 공천이 현실화돼야 한다”며 “당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더라도 유권자 지지를 받으면 계속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빠’(문재인 전 대통령 강성 지지자)·개딸 등 한국 정치의 이상 현상으로 지목받는 ‘팬덤 정치’에 관해서도 여러 전문가는 우려를 표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정당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이 쌓이고 효능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치의 인격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팬덤 정치의 과격화는 민주주의의 종말”이라며 “경쟁자를 인정하는 관용, 소수 의견을 참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안은 뭘까.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당원 중심 공천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며 “당의 안정된 결정 구조가 기본이고, 당 안에서 성장한 사람이 당직·공직에 올라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 컨설턴트인 박성민 민기획 대표는 “기존 소선거구제는 개혁적이었던 인물들조차 정당에 들어오면 충성하는 행동대원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비례대표제를 없애고 차라리 한 선거구에 4명 정도를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하자”고 제안했다. 채 교수는 “중앙당 당 대표 체제에서는 구조적으로 당권 싸움과 계파 투쟁이 발생한다”며 중앙당 없는 정당 모델을 제시했다.
차기 대선 승리를 위해 정당 개혁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장 22대 총선에서 정당정치의 획기적 개선은 어려워 보인다”면서도 “다음 대선에선 정당 내 민주화를 이루며 진영을 잘 정비한 당이 대권을 잡는 데 유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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