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이란 무엇인가?…미 대법원 ‘소수인종 배려입학제’ 심리 개시
6대3 보수 우위 대법원, 위헌 결정 여부 주목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흑인 등 소수인종을 배려하는 대학 입학 제도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의 합헌 여부에 대한 심리를 개시했다. 현재 연방대법원에는 소수 인종 배려입학에 부정적인 보수 성향 대법관이 다수여서 위헌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미국 언론들은 분석했다.
소수인종 배려입학이란
헌법소원은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A)이라는 단체가 소수인종 배려입학 제도로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며 노스캐롤라이나대와 하버드대를 상대로 각각 제기했다. SFA는 하버드대가 아시아계 미국인 지원자를 차별해 연방 재정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이나 활동에서 인종이나 피부색, 출신 국가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1964년 민권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대에 대해서는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해 법의 보호를 동등하게 받을 권리를 규정한 헌법 14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당초 어퍼머티브 액션은 인종분리정책 등 흑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하지만 SFA는 특정 인종에 대한 배려가 오히려 다른 인종에 대한 역차별을 낳는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두 대학은 인종은 지원자를 평가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SFA는 2014년 이 소송을 처음 제기했으며 1·2심에서는 패소했다. 당시 법원은 대학이 인종별로 정원을 할당하거나 수학 공식에 따라 인종 분포를 결정할 수는 없지만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인종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한 기존 대법원 판례를 두 대학이 따랐다고 판결했다. 앞서 대법원도 2003년과 2016년에 이 판례에 문제가 없다고 결정했다. 인종을 고려하지 않으면 대학 교육의 다양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달라진 미 대법원 구성
하지만 대법관 구성이 달라지면서 이번에는 위헌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망했다. 이미 어퍼머티브 액션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존 로버츠 대법원장, 클래런스 토머스,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 등 3명이 현재 대법원에 있으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3명까지 합하면 총 9명의 대법관 중 6명이 보수 성향이다.
WP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얼리토 대법관은 “대학 입학은 제로섬 게임”이라며 “인구 비율 대비 입학생이 적은 소수로 분류되는 사람에게만 ‘플러스’를 주면 다른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게 된다”고 말했다. 토머스 대법관은 “다양성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는데 난 도대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로버츠 대법관은 ‘인종 중립’적인 방식으로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해 이미 제도 폐지에 대한 대안을 고려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반면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은 기존 제도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첫 흑인 여성 대법관인 커탄지 잭슨은 SFA 주장과 달리 대학이 입학 심사에서 인종뿐 아니라 40개의 요인을 고려한다면서 “SFA는 대학들이 인종만 고려한다는 점을 입증하거나 한 사례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진보 성향인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은 “미국인이 된다는 의미 그리고 미국의 다원주의를 신봉한다는 것의 한 부분은 (대학 같은) 기관들이 미국인으로서 우리의 모든 다양함을 실제 반영한다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 정부 입장으로 나온 엘리자베스 프리로가 법무부 송무차관은 이날 심리에서 인종 배려는 바람직한 제도라고 밝혔다. 그는 인종이 대학의 입학 결정에 고려될 수 있다는 판례를 뒤집는 것은 “우리가 있는 국가와 우리가 열망하는 국가”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베트남전 당시 장교는 대부분 백인이 맡고 이들의 지휘를 받아 실제 전투를 수행하는 병사는 흑인 비율이 높아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사례를 들었다.
뉴욕타임스는 5시간의 심리 동안 나온 대법관들의 질문을 볼 때 대법원은 인종을 의식한 입학 프로그램은 불법이라고 판결할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런 결정은 미국 전역의 대학들 특히 엘리트 교육 기관에서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의 비율을 감소시키고 백인과 아시아계의 비율을 급격히 증가하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론은 제도 존치에 부정적
WP와 조지 메이슨대 공공행정대학원 샤르스쿨이 지난 7~10일 미국 성인 1238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3%가 소수인종 배려입학 금지에 찬성했다. 이미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플로리다, 아이다호, 미시간, 네브래스카, 뉴햄프셔, 오클라호마, 워싱턴 등 9개 주는 공립대에서 소수인종 배려입학을 금지했다.
이날 대법원 밖에서는 학생과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회원 등이 “다양성을 수호하자”, “기회를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대법원 결정은 내년 늦은 봄 이후에야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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