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사라진 쓱데이, 정부 '희생양' 얘기 나온 이유
유통업계 공들인 연말 할인 행사 '올스톱'
정치공학적 계산에 기업만 '희생양' 아쉬움
신세계가 자사 최대 연말 쇼핑 행사인 '쓱데이'를 취소했습니다. 행사 시작 당일인 지난달 31일 갑자기 이런 결정이 났습니다. 사실 소식을 듣고 조금 놀랐습니다. 그룹 차원에서 6개월간 공들여 준비한 행사를 하루아침에 포기한 것이니까요. 고물가에 생필품 할인을 기다린 소비자가 적지 않았습니다. 행사와 연관된 중소 협력업체의 기대감도 높았죠. 신세계 입장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겁니다.
물론 신세계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정부가 전날 갑작스럽게 '국민 애도 기간'을 선포했으니까요. 국민 애도 기간이란 국가적으로 이를 애도하고 추모하기 위해 지정하는 기간입니다. 보통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사망했거나 많은 희생자를 낸 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 지정됩니다. 통상 국가 원수가 공식 선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정부는 사고 수습까지 이를 '유지'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행사를 여는 것은 큰 부담이었을 겁니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애도'를 못 박는 경우는 손에 꼽았던 일이니까요. 실제로 국민 애도 기간 선포는 과거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 단 한차례에 그칩니다. 이런 정부가 부랴부랴 나서니 기업이 느끼는 무게감이 달랐을 겁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왜 재빨리 애도 기간을 선포했는지도 짚어봐야 합니다. 업계 안팎에서는 '정치 공학적' 계산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정부 책임론'이 불거진 상황에 야당의 공세를 막을 방법이 필요했던 거죠. 이른바 '진흙탕' 싸움을 피해야 합니다. 애도를 선포하면 일단 이를 막을 수 있습니다. '싸움보다 애도가 먼저'라는 메시지를 정치권에 전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과거 세월호 참사로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야당의 공세에 탄핵의 '단초'가 됐죠. 윤석열 정부도 이런 상황을 우려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 국가가 애도를 표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국가 애도의 날'도 있고요. 다만 하루에 그치고 맙니다. 정부가 이 대신 '애도 기간'을 선포한 것은 의도성이 충분히 짙다는 겁니다. 여론을 잠재울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이 피해를 기업과 소비자들이 고스란히 보고 있다는 겁니다. 현재 업계의 연말 할인 행사는 모두 '올스톱' 상태입니다. 쓱데이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닙니다. 중소·군소업체 등 다른 유통사들도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올해 처음 유통 계열사 통합 행사인 '롯키데이'를 꺼내든 롯데도 행사를 전면 축소시켰습니다. 코리아세일페스타도 현재 개막식 행사를 모두 취소한 상태입니다.
이커머스 업계의 할인 행사도 줄줄히 취소되거나 축소되고 있습니다.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다음 달 연중 최대 할인 행사가 예정되어 있는데, 내부적으로 취소까지 논의 중"이라며 "입점 셀러는 물론 중소 협력사들의 피해도 예상돼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유통업계는 현재 위기입니다. 이른바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고물가·고금리·고물가에 소비자의 지갑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실제로 지난 25일 한국은행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10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8로 전달(91.4)보다 무려 2.6p가 하락했습니다.
업계는 그동안 소비에 군불을 지피기 위해 안간힘을 써 왔습니다. 그래서 올해 연말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신세계는 이번 쓱데이에 2조 원 규모의 역대 최대 물량을 준비했었습니다. 롯데는 롯키데이를 위해 조직 개편까지 했었습니다. '순혈주의'도 깨고 외부 마케팅 인사도 영입하며 공을 들여왔었죠. 이를 망친 기업들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겁니다.
행사 준비를 위해 쏟은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됐습니다. 당장 할인을 위해 마련한 인프라, 상품 등은 등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스란히 사회적 낭비가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관련 직원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입니다. 단순한 행사 취소에서 그칠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특히 연말은 선물 등 소비가 늘어나는 기간입니다. 업계가 올해 '성적'을 바짝 올리는 시기입니다.
이 때문에 '섣부른 애도 선포'라는 비판이 적지 않습니다. 경제는 심리입니다. 앞으로 야기될 사회적 손실은 단순히 계산조차 어렵습니다. 소비 침체가 앞으로 더 깊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기업들의 실적도 타격을 받을 겁니다. 실제로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과거 세월호 참사로 감소했던 민간 소비는 1조8000억원에 달합니다. 이태원 참사도 못지않은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는 분명 '애도'할 일이 맞습니다. 슬프고, 참혹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정부의 주먹구구식 대처에 따른 피해가 너무 큽니다. 참사는 애도 기간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 갈등으로도 번지는 모양새입니다. 아울러 정부가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습니다.
정부의 메시지는 무겁고 신중해야 합니다. 항상 몇 수 앞을 내다봐야 합니다. 혜안과 통찰이 절대적입니다. 물론 이를 갖췄었다면 참사도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찌 됐건 '비극'은 벌어졌습니다. 애도 기간 선포에 앞서 '생필품 직결 소비 할인 행사는 가급적 유지해달라'는 정부의 말 한마디가 아쉽습니다. 참사와 더불어 그 후속 대응까지 정부의 비판이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한전진 (noretreat@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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