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조’ 글씨 없는 검은 리본 달아라? ···공무원들, 리본 뒤집어달며 “이런 일 처음”[이태원 핼러윈 참사]
오세훈은 ‘근조’ 리본, 한덕수는 ‘그냥’ 리본
“근조 리본을 많이 달아봤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도대체 왜 이러는 건가요?”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분향소가 마련된 31일 전국 공무원들은 가슴에 검은색 리본을 달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검은 리본에 희생자를 애도하는 근조(謹弔)라는 한자가 빠져있다.
공무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함께 사회적 재난으로 평가받는 세월호 침몰 참사가 발생했던 2014년에는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도 근조 한자가 적혀있는 추모 리본을 달았다. 2010년 천안함 희생장병 합동 분향소 설치 때도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 등은 일제히 근조 리본을 달았다.
전라남도 등 다른 지자체도 기존에 사용하던 근조 리본을 준비했다가 급하게 검은색 리본을 새로 구매해 공무원들에게 나눠줬다. 전남도 한 공무원은 “기존에 보관하고 있던 ‘근조’가 쓰인 리본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행안부 지침에 따라 급하게 글씨가 없는 검정 리본을 다시 마련했다”고 말했다.
근조 글씨가 쓰여있는 리본을 뒤집어 착용한 지자체도 있다. 서울시 한 공무원은 “그냥 검은 리본은 찾기도 어렵다”면서 “오전만 해도 근조 글씨가 있는 쪽으로 달고 있다가 지침이 그렇다기에 오후에 급히 뒤집어 달았다”고 말했다.
1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공무원들이 검은 리본을 단 것은 정부 방침 때문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30일 각 시·도는 물론 중앙부처 등에도 ‘글씨 없는 검은색 리본으로 착용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행안부, 이유 설명 않고 각 지자체에 공문만
인사혁신처, 명확한 이유 없이 “통일성 위해”
복수의 행안부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공문은 인사혁신처 지침을 각 자치단체에 전달한 것이다. 행안부도 이와 관련해 인사혁신처에서 받은 공문만 전달했을 뿐 이유를 직접 밝힐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근조라는 표현이 조문할 때 사용하는 것인 만큼 행안부 내에서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 부상자들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돌았다.
인사혁신처는 이와는 다른 입장을 밝혔지만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글자 없는 검은 리본을 패용하라고 안내한 것이 맞다”면서 “통일성 있게 하나의 표준을 안내해야 하니까 그랬다. 다른 이유는 없다. 애도를 표할 수 있는 검은 리본이면 별도의 규격이나 형식을 정한 것은 없다”고 밝혔다. 부상자를 고려한 지침이라는 행안부 측 추측과 관련해서는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럽 출장에서 돌아온 지난 30일 저녁 대책회의를 위해 서울시청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만났을 당시 장면을 보면 오 시장은 근조 글씨가 쓰여있는 검은 리본을, 한 총리는 근조 글씨가 없는 검은 리본을 각각 차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추모’라고 적힌 검은색 리본을 달고 31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태원 사고 희생자 애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힌 검은색 리본을 달았다.
이성희 기자 mong2@kyunghyang.com,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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