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 재집권에 중남미 ‘분홍 물결’ 최고조…친중색채 더 짙어지나

유태영 2022. 11. 1.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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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대국 브라질 룰라 재집권
멕시코 등 좌파블록 주도 전망
美·中 경제패권 대립 격화 속에
‘브릭스’ 親中색채 더 짙어질 듯
美·서방 주요국 정상 “당선 축하”
중남미 좌파 대부 룰라는 누구
구두닦이·노동운동 등 파란만장
2002년 3전4기 끝 대통령 당선
2006년 재선… 집권 중 경제도약
물러날 당시 지지율 80% ‘인기’
남미 대국 브라질에서 다시 좌파 정권이 집권하면서 중남미의 거센 분홍 물결(Pink Tide)이 최고조에 올랐다. 미국의 뒷마당인 중남미에서 좌파 정권이 득세하던 상황에서 신흥경제대국 블록인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핵심 브라질 정부도 좌파로 넘어가면서 국제사회에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전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대선 결선 투표 결과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누르고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후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상파울루=AP뉴시스
중남미 좌파의 대부로 불리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가 30일(현지시간) 실시된 브라질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승리한 것은 중남미 제2차 분홍 물결의 완성을 의미한다. 앞서 멕시코, 아르헨티나, 페루, 칠레 등에서 잇달아 좌파 정부가 탄생한 뒤 지난 6월 콜롬비아에서도 사상 첫 좌파 대통령이 선출됐다. 중남미의 빅6라 불리는 이들 국가에서 좌파가 동시에 집권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극우 포퓰리스트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은 이웃 좌파 정부와의 관계를 냉각시켰는데 룰라의 승리로 좌파의 중심축이 공고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국토 면적 세계 5위, 인구 세계 7위, 경제규모 세계 12위 대국 브라질을 다시 이끌게 된 룰라가 과거 8년간의 집권 경험을 토대로 좌파 블록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룰라 집권은 미·중 대립이 격화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될 수 있다. 중국과 브라질 관계는 룰라 정부 시절이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회복에 신흥국가 역할이 강조되던 상황에서 브릭스를 매개로 급속히 접근했다. 미국으로선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뒷마당을 지키기 위해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브릭스의 친중 성향도 한층 강화될 수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과 중남미, 카리브해 국가와의 교역은 2000년 100억달러(약 14조2080억원)에서 지난해 4510억달러(약 640조7808억원)로 대폭 늘었다. 중국은 에콰도르, 우루과이, 파나마, 콜롬비아, 니카라과 5개국과 새로운 무역협정 체결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31일 성명에서 “중국은 룰라 당선인이 이끄는 새 브라질 정부와 협력, 양국의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중남미 좌파 정권은 2000년을 전후한 1차 분홍 물결 당시와는 달리 보다 개방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을 할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등 경제위기를 헤쳐나가려면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1차 분홍 물결 때는 우고 차베스 당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풍부한 석유자원을 무기로 좌파 진영을 이끌며 미국과의 대립을 마다하지 않았다.
브라질 대선 후보인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30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거리에서 결선투표 개표 상황을 지켜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상파울루=AFP연합뉴스
미국 등 서방은 극우 바람이 일단 멈추고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를 중단할 것이라는 측면에서는 새 정권의 탄생을 반기는 모습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룰라가) 자유롭고 공정하고 믿을 만한 선거를 거쳐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축하한다”고 밝혔다. 보우소나루 측이 선거불복을 외치며 2020년 미국 대선 직후 나타났던 혼란상이 브라질에서 재연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독일, 프랑스, 캐나다, 스페인 등 서방 주요국 정상들도 민주주의와 환경 보호 등에서 룰라 정권과 협력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비리의혹 딛고 세 번째 집권 ‘화려한 부활’

초등학교 중퇴 학력의 금속공장 노동자가 브라질 역사상 첫 3선 대통령으로 우뚝 섰다. 중남미 좌파의 대부로 불리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당선인의 생애는 파란만장한 드라마 같다.
30일 밤(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 파울리스타 대로에서 시민들이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시우바(77)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거리 행진을 하며 환호하고 있다. 상파울루=연합뉴스
룰라는 1945년 10월27일 가난한 농부의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궁핍한 가정환경에 7세 때부터 땅콩 장사와 구두닦이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찢어지는 가난에 학업은 사치였다. 10살 때까지 글을 깨우치지 못했고, 초등학교도 그만둬야 했다.

14세에 선반공으로 취직하면서 본격적인 노동자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잇따른 비극을 겪었다. 19세 때 프레스 기기에 눌려 왼쪽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26세에는 같은 공장에서 만난 첫 부인이 임신한 채로 간염에 걸려 뱃속 아기와 함께 사망했다.

이는 룰라가 노동운동에 뛰어드는 계기가 됐다. 금속노조 대의원 등을 거쳐 1975년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당선됐다. 잇따른 파업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개혁성향 지도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0년 좌파 지식인 등을 규합해 브라질 노동자당(PT)을 창당하고, 1986년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원내에 진출했다. 이후 대권의 꿈을 꾸며 1989년, 1994년, 1998년 세 차례 대선에 도전했지만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2002년 대선에서 3전 4기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당선증을 받고 “내 인생 첫 증서”라며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이 주목받기도 했다. 룰라 정부는 빈곤층 해소를 위한 분배 정책을 펼치며 호응을 얻었고, 2006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집권 기간 연평균 4%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브라질의 성장을 일궈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날 당시 지지율은 80%대에 달할 정도였다.

비리 의혹은 룰라의 성공 신화에 흠결이 됐다. 룰라는 재임시절 뇌물수수와 돈세탁 혐의로 1·2심에서 징역형을 받고 2018년 수감됐다. 지난해 초 대법원이 기존 유죄판결을 무효화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유태영·이병훈 기자, 워싱턴·베이징=박영준·이귀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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