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기업도 휘청하는데...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제동 걸린 퀵커머스
포기하고 축소하는 업체 속출하는데, 정치권선 “규제 논의”
유통업계의 신(新) 먹거리로 낙점된 퀵커머스(즉시 배송)가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 규제의 필요성이 논의되면서 관련 업체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소비자가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등에서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주문하면 1시간 내로 배송하는 퀵커머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수요가 증가하면서 주목받았으나, 높은 고정비 부담으로 인한 사업성 저하와 고금리로 인한 자금조달 한계에 봉착해 포기하는 사업자가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 규제까지 논의되자 시장이 제대로 만들어지기도 전에 성장에 제동이 걸렸다는 우려가 나온다.
◇B마트가 골목상권 침해한다... 정치권, 유통법으로 규제해야
지난달 24일 국회 산자위 중소벤처기업부·특허청 종합감사에서는 우아한형제들의 초고속 배달 서비스인 ‘B마트’의 골목상권 침해 문제가 지적됐다.
이날 이동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B마트가 통신판매법으로 분류돼 지점별 매출이 공개되지 않아 지역 소상공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파악할 수 없다며, B마트를 소매업으로 등록하고 정확한 매출액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김범주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이에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겠다”라며 “신사업에 맞는 법적 제도 및 규제 등을 마련해 준다면 국내 사업자로서 따르겠다”라고 답했다.
퀵커머스 규제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정부 연구 결과 B마트의 도심형 창고인 마이크로풀필먼트센터(MFC, 일명 다크 스토어) 인근 편의점과 기업형슈퍼마켓(SSM)의 매출이 각각 8%, 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면서다.
산업통산자원부 산하 산업연구원은 지난 5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퀵커머스의 골목상권 영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B마트의 주력 상품이 가정간편식(HMR)과 도시락 등 소포장, 신선식품인 점을 고려했을 때 유사 상품군이 주력 상품인 업태의 매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코로나19 끝나자 시들해진 퀵커머스
국내 퀵커머스 시장은 코로나19를 전후해 급격히 성장했다. 그러나 초장기 이커머스 시장처럼 MFC 설치와 배송 기사 관리,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한 할인 쿠폰 발급 등 투자금이 많이 드는 비즈니스 모델이란 인식이 커졌다.
우아한형제들이 2018년 출시한 ‘B마트’는 현재 연 매출 3500억원 정도를 내고 있지만, 아직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7월 퀵커머스를 시작한 쿠팡이츠마켓은 출범 1년이 지났지만, 서울 송파·강남·서초·성동 등 일부 지역에서만 운영 중이다.
신선식품 장보기 업체 오아시스마켓이 메쉬코리아와 함께 작년에 퀵커머스 ‘브이 마트’를 출범하려 했지만, 계속 출시일을 연기하다 최근 자금난을 겪는 메쉬코리아의 브이 주식을 전량 인수해 연말에 출범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배달앱 요기요 인수와 ‘요마트’ 출시, 편의점 GS25와 SSM GS프레시의 배달 주문 앱 출시 등 퀵커머스 투자를 강화한 GS리테일은 적자 폭이 확대되고 있다.
사업을 포기하거나 축소하는 업체들도 속출하고 있다. 바로고는 작년 8월 출범한 퀵커머스 ‘텐고’를 올해 4월 중단했고, 롯데마트와 이마트 등도 주문 후 바로 배송하는 서비스를 축소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즉시 배송하면 빨리 망하고, 안 하면 천천히 망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비용이 많이 드는 구조라 퀵커머스를 시도했던 업체들도 가장 먼저 해당 서비스를 접고 있다”라고 했다.
◇독일 유니콘으로 떴던 고릴라스도 매각 수순
퀵커머스 시장의 몰락은 세계적인 추세다. 2020년 5월 출범한 독일 스타트업 고릴라스(Gorillas)는 생필품을 10분 내 배달해 주는 서비스로 출범 1년도 안 돼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기업)이 됐다.
그러나 지난 2년간 모금한 투자금 13억 달러(약 4283억원)를 모두 소진한 후 수백 명의 직원을 해고했고, 최근에는 터키 배달 퀵커머스 업체 게티르(Getir)에 회사를 매각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 중이다.
사업이 어려워진 이유는 거래액이 소액인 데다, 점유율 확보를 위한 고정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다. 영국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고릴라스는 올 상반기 단일 주문에 대한 마케팅 지출액이 평균 8유로(약 1만1340원)에 달했다.
여기에 높은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인해 전망도 밝지 않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KPMG는 “고릴라스의 인원 감축은 미래의 시장 형태와 씨름하고 있다는 신호”라며 “인플레이션은 수십 년간 최고 수준이고 생계비 위기가 악화하고 있어 퀵커머스 사용자의 구매 결정이 더 신중해질 것”이라고 봤다.
규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미국 뉴욕의 경우 15분 배달을 내세운 광고를 금지하는 법안이 제안됐고, 프랑스 파리에서는 다크 스토어를 창고로 등록하지 않은 걸 불법으로 보고 벌금을 부과했다.
다만 국내에서 규제 논의가 소상공인과의 상생에 주안점을 뒀다면, 해외에선 오토바이 소음과 주거 환경 오염 등으로 인한 주민들의 불만 해소에 초점을 둔 것이 차이점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엔데믹(풍토병화)과 고금리 등의 영향으로 불과 1년 사이 퀵커머스 산업이 발달하기 어려운 구조로 가고 있다”라며 “신사업의 경우 업황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정체성이 정립되지도 않은 퀵커머스 산업을 규제하는 건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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