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대부’ 룰라 12년만에 컴백… 중남미 2차 ‘핑크 타이드’

뉴욕/정시행 특파원 2022. 11. 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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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대선 1.8%p 차 승리
브라질 대선 후보인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30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거리에서 룰라가 앞서는 결선투표 개표 상황을 지켜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룰라 후보는 결선 투표에서 개표율 98.71% 기준 50.83% 득표율을 기록하며 49.17%를 득표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에게 승리를 거뒀다. /AFP 연합뉴스
룰라 “두개의 브라질은 더는 없다” -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 30일(현지 시각) 대선 결선투표에서 당선을 확정한 뒤 상파울루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룰라는 유효 투표 중 과반인 50.9%를 득표,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을 1.8%포인트 차로 앞섰다. 퇴임 12년 만에 복귀한 그는 내년 1월 브라질 사상 첫 3선 대통령에 오른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실시된 브라질 대통령 선거 결선에서 노동자당(PT) 소속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77) 전 대통령이 자유당(PL)의 자이르 보우소나루(67) 현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됐다. 지난 2003년부터 대통령직을 8년간 연임하며 중남미 최대 국가인 브라질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룰라는 퇴임 12년 만에 복귀, 2023년 1월 1일 브라질 사상 첫 3선(選) 대통령에 오르게 된다.

초유의 전·현직 대통령 간 대결로 치러진 이번 브라질 대선 결선에서 룰라 전 대통령은 접전 끝에 유효투표 중 과반인 50.9%를 득표, 49.1%를 득표한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1.8%포인트 차로 앞서 승리했다. 1989년 브라질 대선 직선제 실시 이래 역대 최소 득표 차로 승부가 났다. 지난 2일 8명의 후보가 나선 1차 투표에서 룰라가 48.4%로 43.2%를 얻은 보우소나루를 5.2%포인트 앞섰던 것보다 격차가 더 줄었다. 극심한 이념 대결과 정치 분열 속에서 진보·보수 유권자가 각각 총결집했다는 평가다.

지난 10월30일 브라질 대선 결선에서 최종 승리한 룰라 전 대통령이 러닝메이트인 페르난도 하다드 부통령 후보와 함께 상파울루 거리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00년대 브라질을 이끌며 ‘중남미 좌파 대부(代父)’ ‘라틴 아메리카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룰라의 복귀는 중남미 정치 지형 변화에도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그의 당선은 최근 수년간 중남미에 속속 들어서고 있는 중도 좌파 정부 수립 물결, 즉 ‘2차 중남미 핑크 타이드(pink tide)’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퍼즐을 채워 넣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018년 미국과 국경을 접한 멕시코에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아르헨티나와 페루, 칠레, 콜롬비아 국민이 잇따라 좌파 지도자를 택했다. 특히 우파가 정권을 놓친 적 없었던 ‘중남미 우파의 보루’ 콜롬비아에선 지난 6월 반미 게릴라 출신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이 당선되기도 했다.

지난 8월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열린 신임 정·부통령 취임식에서 참석자들이 신임 정·부통령인 구스타보 페트로(오른쪽)와 프란시아 마르케스가 포옹하는 모습을 담은 대형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페트로 대통령은 이날 콜롬비아의 첫 좌파 대통령으로, 마르케스는 콜롬비아 첫 흑인 부통령으로 취임했다. /연합뉴스

이제 브라질 룰라의 복귀가 확정, 사상 최초로 중남미 주요 6국에 모두 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됐다. 지난 4년간 보수 우파 보우소나루 정부는 이웃의 좌파 정권들과 외교 갈등을 빚으며 고립돼 있었다. 룰라는 이번에 중남미 좌파 연대를 외교 공약으로 내세웠다. 룰라는 2000년대 집권 당시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과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를 이끌면서 단일 화폐 창설까지 추진한 바 있다. 룰라 정부는 앞으로 아마존 난개발 규제를 통한 기후변화 공동 대응, 여성·인권·불평등 이슈를 고리로 주변국과의 관계를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중남미 2차 핑크 타이드’는 전통적으로 중남미를 ‘뒷마당’으로 여기고 국내 문제에 준해 다뤄온 미국에도 큰 도전이 될 전망이다. 지난 6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개최한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 쿠바·니카라과·베네수엘라 3국을 반미 독재라는 이유로 초청 대상에서 제외하자, 멕시코 대통령 등이 보이콧을 선언해 반쪽 행사로 만들기도 했다.

중남미 순방에 나선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1일(현지시간) 칠레 산티아고 대통령궁에서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학생운동 리더 출신인 보리치는 지난 3월 36세의 나이에 세계 최연소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연합뉴스

특히 미·중 경제·안보 갈등이 첨예해진 상황과 맞물린 상황에서 중남미 좌파 정권들이 블록화해 미국과 대립할 경우 국제 질서 구도에도 큰 변수가 될 수 있다고 포린폴리시 등 미국 외교 매체들은 전망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를 휩쓴 중남미 ‘1차 핑크 타이드’는 미국이 9·11 테러 이후 중동에서의 대테러 전쟁에 집중하느라 중남미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이에 중국이 중남미와 이념적 동질성을 강조하며 대규모 인프라 투자로 힘의 공백을 파고들어 생긴 측면도 있다.

이번에도 중남미에선 코로나 팬데믹 등 국내 문제에 몰두한 미국을 대신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의 백신 지원과 경제 투자가 이뤄졌다. 특히 중국과 브라질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회복에 신흥국(BRICS) 역할이 강조될 당시 급속히 가까워져 우파 보우소나루 정부에서도 내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다만 룰라 대통령 당선자 등 현재 주요국 지도자들은 극단적 반미(反美)와는 거리가 있는 데다, 환경·성평등·성소수자 인권 등 분야에선 바이든 행정부와 협력할 여지가 있는 것이 변수다. 미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은 “아르헨티나 등 좌파 정권들 역시 팬데믹 이후 보건 체계 붕괴,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따른 민생 악화로 정국 혼란을 겪고 있어 핑크 타이드가 과거처럼 10년씩 지속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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