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16] 줄곧 괜찮다보니 나는 사고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2022. 11.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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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월 28일, 이례적으로 쌀쌀한 기온 속에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직후 폭발했다. 이 사고로 우주인 7명이 모두 사망했고, 3조원이 넘는 경제적 손실이 났다. 이후 조사에서 로켓 부스터의 오링(O-Ring) 두 개가 추운 날씨에 탄력을 잃고 부식하면서 연료가 새어 나갔고, 이 연료에 불이 붙어 순식간에 우주선 전체가 폭발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참사 이전 시험 비행에서도 오링은 항상 골칫거리였다. 시험 비행 24번 중 7번이나 오링의 부식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오링 두 개가 다 부식해 큰 사고를 일으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나가 부식해도 다른 하나가 이음새를 지탱해 주었다. 처음에는 오링의 부식이 심각한 일탈 같았지만, 하나는 유지되다 보니 우주선 제조사와 NASA의 엔지니어들이 이를 수용 가능한 정상적 위험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일탈이 정상화되었을 때, 챌린저호는 두 오링이 모두 부식하면서 폭발했다.

청해진 해운은 세월호를 무리하게 증·개축해서 복원성을 떨어뜨린 뒤에 평형수를 줄이고 화물을 늘려 싣고 운항했다. 선원들은 나쁜 복원성 때문에 타각을 5도 이상 쓰면 안 될 정도로 배가 엉망임을 알고 있었다. 이 정도로 열악했지만, 조심해서 운항하면 될 줄 알았다. 작은 사고는 있었지만 큰 사고는 없었다. 그러다가 2014년 4월 16일 아침에 잔잔한 바다를 운항하던 배가 크게 선회하면서 급하게 기울어져서 침몰했고, 300명이 넘는 승객이 사망한 참사를 낳았다.

이태원의 핼러윈 축제에는 2014년쯤부터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2019년 기사를 보면 사람이 너무 많아 휴대폰이 잘 터지지 않았다고 한다. 작년 코로나 팬데믹 중에도 10만명 이상이 북적거렸다. 세계음식거리와 해밀톤호텔 옆길은 매년 사람들이 둥둥 떠다닐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뤘지만, 사람이 죽거나 크게 다친 사고는 없었다. 계속 괜찮다 보니, 질서 유지를 맡은 관계자들은 올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올해에는 괜찮지 않았다. 일탈이 정상화되고, 위험이 수용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재난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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