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세계관에 협업”… 순수문학 작가들, K팝과 잇단 ‘콜라보’
이호재 기자 2022. 11. 1. 03:03
기획사 손잡고 ‘스토리텔링’ 참여
SF소설 인기 작가 김초엽, 르세라핌의 ‘크림슨 하트’ 설정
‘보건교사 안은영’ 쓴 정세랑 작가, ‘아이브 서머 필름’ 내레이션 집필
“협업 신선” “글쓰기 스펙트럼확대” 작가들 긍정 반응… 진출 늘어날듯
SF소설 인기 작가 김초엽, 르세라핌의 ‘크림슨 하트’ 설정
‘보건교사 안은영’ 쓴 정세랑 작가, ‘아이브 서머 필름’ 내레이션 집필
“협업 신선” “글쓰기 스펙트럼확대” 작가들 긍정 반응… 진출 늘어날듯
“‘푸른 반딧불이 섬’의 저주를 풀어라.”
시대를 가늠하기 어려운 어느 미래. 외부의 위협을 막는 거대한 장막으로 둘러싸인 ‘레퓨지아’란 도시가 있다. 이곳에 사는 소녀들은 어느 날 도서관에서 낡은 책 한 권을 발견한다. 도시 밖 미지의 땅에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소녀들은 책에 나오는 ‘푸른 반딧불이 섬’을 찾아 떠난다. 갖은 모험 속에서 여러 역경을 극복하며 소녀들은 성장해 나가는데….
10월 17일 발매한 걸그룹 르세라핌의 2집 미니앨범 ‘안티프래자일’에는 자그마한 책자 하나가 들어있다. 공상과학(SF) 판타지 소설인 ‘크림슨 하트’의 프롤로그.
이 앨범 속 소설엔 다소 생경한 이름이 하나 등장한다.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소설가인 김초엽 작가(29)다. 실제 크림슨 하트의 설정은 지난해 8월 김 작가가 펴낸 SF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자이언트북스)에서 위험에 처한 지구에서 살아가는 소녀들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김 작가처럼 순수문학을 하는 작가들이 아이돌 그룹과 협업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웹소설·웹툰 출신 작가들의 참여가 낯설지 않은 가운데, 한류의 중심으로 꼽히는 가요 시장과 문학의 ‘콜라보’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받고 있다.
르세라핌과 김 작가의 만남은 이들의 소속사인 하이브의 요청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안인용 하이브 스토리사업본부 스토리텔링실장은 “한계에 도전하며 나아가는 여성 주인공이 나오는 김 작가의 작품과 크림슨 하트는 공통점이 적지 않다”며 “등장인물에 입체감을 더하고 싶어 협업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시대를 가늠하기 어려운 어느 미래. 외부의 위협을 막는 거대한 장막으로 둘러싸인 ‘레퓨지아’란 도시가 있다. 이곳에 사는 소녀들은 어느 날 도서관에서 낡은 책 한 권을 발견한다. 도시 밖 미지의 땅에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소녀들은 책에 나오는 ‘푸른 반딧불이 섬’을 찾아 떠난다. 갖은 모험 속에서 여러 역경을 극복하며 소녀들은 성장해 나가는데….
10월 17일 발매한 걸그룹 르세라핌의 2집 미니앨범 ‘안티프래자일’에는 자그마한 책자 하나가 들어있다. 공상과학(SF) 판타지 소설인 ‘크림슨 하트’의 프롤로그.
이 앨범 속 소설엔 다소 생경한 이름이 하나 등장한다.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소설가인 김초엽 작가(29)다. 실제 크림슨 하트의 설정은 지난해 8월 김 작가가 펴낸 SF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자이언트북스)에서 위험에 처한 지구에서 살아가는 소녀들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김 작가처럼 순수문학을 하는 작가들이 아이돌 그룹과 협업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웹소설·웹툰 출신 작가들의 참여가 낯설지 않은 가운데, 한류의 중심으로 꼽히는 가요 시장과 문학의 ‘콜라보’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받고 있다.
르세라핌과 김 작가의 만남은 이들의 소속사인 하이브의 요청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안인용 하이브 스토리사업본부 스토리텔링실장은 “한계에 도전하며 나아가는 여성 주인공이 나오는 김 작가의 작품과 크림슨 하트는 공통점이 적지 않다”며 “등장인물에 입체감을 더하고 싶어 협업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드라마로도 화제를 모은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을 쓴 정세랑 작가(38)도 걸그룹 아이브가 올 8월 발표한 영상 ‘아이브 서머 필름’ 작업에 참여했다. 2분 10초짜리 영상에서 멤버들의 내레이션을 정 작가가 집필했다. 영상을 제작한 노상윤 감독은 “소설에서 다정하면서도 용감한 여성 캐릭터를 그려낸 정 작가가 아이브 멤버들의 변화무쌍한 감정을 잘 표현할 것 같았다”고 했다.
작가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정 작가는 “아이브 팬이자 케이팝 마니아라 제안을 받아들였다”며 “다른 분야와의 협업이 신선했다. 앞으로도 비슷한 제안이 오면 계속 도전하겠다”고 했다. 김 작가도 최근 한 인터뷰에서 “새로운 도전이 제 스펙트럼을 넓혀주지 않을까 생각해 다양한 제안을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아이돌 그룹의 세계관을 만든다기보다 ‘스핀오프’ 같은 느낌을 소설로 쓰는 것”이라고 했다.
웹소설·웹툰 작가들의 협업은 아이돌 그룹에선 이미 꽤 익숙하다. 하이브는 올 1월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을 모티브로 한 ‘세븐페이츠: 착호’를 웹소설과 웹툰으로 공개했다. 이 작품은 웹툰 전문제작사 레드아이스 스튜디오가 만들었다. SM엔터테인먼트도 소속 가수들로 하나의 세계관을 만드는 ‘SMCU 프로젝트’를 준비하는데, 웹소설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정상희 SM엔터테인먼트 홍보수석은 “초기 단계라 지금은 공개하기 어렵지만, 세계관을 잘 구현할 수 있는 작가들을 섭외했다”고 전했다.
가요업계에 따르면 대형 기획사들이 웹소설·웹툰 작가들에게 협업을 의뢰하는 경우 1년에 작품 100∼200화를 기준으로 1억∼2억 원 정도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지명도가 있는 작가들은 이보다 더 높은 수익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협업이 늘며 잡음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웹소설 업계에 따르면 몇몇 기획사는 작가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집필만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웹소설 작가는 “유명 아이돌 기획사에서 웹소설 기획을 제안했는데 거절한 적이 있다”며 “작품을 검수하고 자극적인 내용을 다뤄 달라는 기획사의 요구가 무리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소설가들의 아이돌 시장 진입은 계속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아이돌이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대세로 자리 잡은 이상, 문학적 상상력이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작가들의 활동 영역이 영화, 드라마를 넘어 가요계까지 확대됐다”며 “지식재산권(IP)이 무궁무진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업계로 작가들이 진출하는 사례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작가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정 작가는 “아이브 팬이자 케이팝 마니아라 제안을 받아들였다”며 “다른 분야와의 협업이 신선했다. 앞으로도 비슷한 제안이 오면 계속 도전하겠다”고 했다. 김 작가도 최근 한 인터뷰에서 “새로운 도전이 제 스펙트럼을 넓혀주지 않을까 생각해 다양한 제안을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아이돌 그룹의 세계관을 만든다기보다 ‘스핀오프’ 같은 느낌을 소설로 쓰는 것”이라고 했다.
웹소설·웹툰 작가들의 협업은 아이돌 그룹에선 이미 꽤 익숙하다. 하이브는 올 1월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을 모티브로 한 ‘세븐페이츠: 착호’를 웹소설과 웹툰으로 공개했다. 이 작품은 웹툰 전문제작사 레드아이스 스튜디오가 만들었다. SM엔터테인먼트도 소속 가수들로 하나의 세계관을 만드는 ‘SMCU 프로젝트’를 준비하는데, 웹소설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정상희 SM엔터테인먼트 홍보수석은 “초기 단계라 지금은 공개하기 어렵지만, 세계관을 잘 구현할 수 있는 작가들을 섭외했다”고 전했다.
가요업계에 따르면 대형 기획사들이 웹소설·웹툰 작가들에게 협업을 의뢰하는 경우 1년에 작품 100∼200화를 기준으로 1억∼2억 원 정도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지명도가 있는 작가들은 이보다 더 높은 수익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협업이 늘며 잡음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웹소설 업계에 따르면 몇몇 기획사는 작가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집필만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웹소설 작가는 “유명 아이돌 기획사에서 웹소설 기획을 제안했는데 거절한 적이 있다”며 “작품을 검수하고 자극적인 내용을 다뤄 달라는 기획사의 요구가 무리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소설가들의 아이돌 시장 진입은 계속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아이돌이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대세로 자리 잡은 이상, 문학적 상상력이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작가들의 활동 영역이 영화, 드라마를 넘어 가요계까지 확대됐다”며 “지식재산권(IP)이 무궁무진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업계로 작가들이 진출하는 사례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최원영 인턴기자 고려대 미디어학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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