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근거도 없이 “수돗물에 독성”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는 지구 모양이 구(球)가 아니라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평면 지구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은 과학의 탈을 쓴 각종 근거를 제시해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한다. 가설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릴 ‘위성사진’을 제시하면 “나사(NASA)가 전 세계를 속이고 있다”는 식으로 받아친다. 위성사진을 제시할 수 없으니, 위성사진 자체를 문제 삼아 버리는 것이다.
‘지구평면설’은 최근 낙동강 권역 수돗물에서 독성을 가진 ‘남세균’이 검출됐다는 대구MBC와 이 보도를 근거로 4대강 보(洑)를 해체하자고 주장하는 반(反)4대강 세력의 선동과 닮아 있다. 오존·염소 처리 등을 거친 정수(淨水)에서 고도 정수 처리 시스템을 뚫고 남세균이 검출됐다는 주장인데, 핵심은 평면 지구인이 위성사진을 증거로 내놓지 못하듯, 대구MBC도 ‘살아있는 남세균’이 찍힌 ‘현미경 사진’은 근거로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구MBC는 대구·경북 지역 여러 가정집 물을 채수해 부경대 이승준 교수팀이 ‘효소면역분석법’에 따라 검사한 결과, 남세균 내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국립환경과학원은 이 교수팀 검사법은 정확도가 떨어지며, 공식 수질검사법인 ‘액체크로마토그래프-텐덤질량분석’에선 발견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 교수팀은 과학원이 검사한 6종의 마이크로시스틴 외에 다른 종이 존재할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과학원은 국내 수돗물의 재료가 되는 원수(原水)를 조사한 결과 다른 종이 존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일축했다.
이후 대구MBC는 수돗물에서 ‘남세균 DNA’가 검출됐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교수팀은 ‘PCR’, 경북대 신재호 교수팀은 ‘마이크로바이옴’이라는 유전자 분석 결과 남세균 DNA가 검출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구MBC는 이번에도 공인 시험 방법인 ‘현미경 관찰법’ 결과는 제시하지 못했다. 과학원은 “유전자 검사법은 정수 과정에서 죽은 남세균 세포의 DNA가 검출될 수 있어 현미경 결과를 통해 ‘살아있는 남세균’인지 여부가 함께 제시돼야 한다”고 했다.
대구MBC는 공인 시험 방법인 현미경 사진을 제시하지 못하자, 공인 시험 방법 자체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현미경 검사법으론 남세균이 잘 관찰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과학원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호주 등 전 세계에서 현미경으로 조류를 확인한다”면서 “명백한 허위 주장”이라고 했다. ‘지구 위성사진’ 자체를 강대국 공작으로 몰아가는 평면 지구인 주장과 다를 바 없는 논리인 셈이다.
식수(食水)는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수돗물 공포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주장을 펼 땐 근거가 정교해야 한다. 대구MBC는 ‘그래도 남세균은 검출됐다’ 식의 보도가 아니라, 살아있는 남세균이 찍힌 ‘현미경 사진’을 내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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