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동치미를 들고 다닌 사신들
오랜만에 맛있는 동치미를 먹었다. 너무 맛나 아껴서 먹고 있을 정도다. 소싯적에는 피자와 햄버거로도 삼시 세끼를 먹을 수 있었고 외국의 진미가 훨씬 좋았던 때도 있었는데, 점점 나이가 들면서 입맛이 부모님과 닮아가고 있다. 특히 김치를 꼭 챙겨 먹게 되었는데 총각김치도 갓김치도 좋지만, 동치미가 제일이다. 기름지고 매운 식사 하고 난 뒤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그리도 달게 느껴지니.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닌 듯하다. 조선 시대에 중국을 다녀오는 조선 사신들도 그렇게 여행길에 동치미를 찾아댔다고 한다. 산 다르고 물 다르며 음식 다른 곳을 여행하노라니, 고향 음식이 그리운 것은 당연하고, 중국의 요리는 대체로 느끼하니 입안을 개운하게 씻어줄 동치미가 구미에 당겼을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 사신들의 여행길에 있는 중국의 여관 주인들은 직접 동치미를 담갔다.
맛은 어땠을까? 조선 후기 학자 김창업은 숙종 때 중국을 다녀오며 연행일기를 썼는데, 중국 곳곳의 동치미를 맛보고 기록했다. 이해응, 김경선 등 다른 사신들도 굳이 중국에 가서 동치미를 먹어보고 조선 동치미와의 차이를 평가했다. 여러 사람의 평을 모아보면 지금의 중국 허베이(河北)성에 있는 풍윤현의 동치미 맛이 조선 것이랑 가장 비슷했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조선 사신들은 중국에 가면서 쌀이나 반찬, 심지어 소금까지 싸들고 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정조는 “비용도 들고 귀찮은데, 음식이라면 그 나라에서 사 먹으면 되지 않냐”고 꾸중을 했다. 하지만 신하들은 이렇게 변명을 했다. “소금이나 장은 저 나라 것이 입에 맞지 않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옳거니! 나라말이 중국과 다르듯 나라 입맛도 달랐던 것이다. 그렇지만 정조는 야단을 쳤다. “아무리 그래도 먹지 못할 정도겠냐, 다 사치를 부려서 그런 거다!” 하며 이후로 사신들이 잡다한 물건들을 가져가는 것을 일절 금지하게 했다.
여행길 양식을 바리바리 싸 짊어진 채 먼 길을 떠난 조선 시대의 사신들을 생각하면, 그 모습이 좀 유난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나도 튀기고 구운 이국의 음식보다 익숙한 음식을 찾고 있으니 옛날 조상님들 입맛이 내 몸 안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 아닐까. 언젠가 나도 여행 가방에 동치미 한 그릇 싸들고 떠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11월 일사일언은 이한 작가를 포함해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 소장, 김선오 시인, 이미란 롯데문화재단 홍보책임이 번갈아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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