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내 고향은 부산입니더!

국제신문 2022. 11.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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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의 ‘내 고향은 부산입니더’와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을, 눈감고 광안리와 해운대를 떠올리며 유튜브로 감상한다. 2002년 2월 솔가해 부산역을 뒤로하며 서울로 떠나는 열차 좌측 창가에서 낙동강 물을 바라보며, 퇴직하는 2022년 8월에는 돌아간다고 다짐했건만, 여전히 서울에 산다. 부산 출신 두 가수 덕에 가끔 음악으로 고향의 그리움을 달래본다.

얼마 전 나림 이병주 선생의 타계 30주기 관련 기사를 에서 읽었다. 반가웠다. 나림 선생의 소설을 얼마나 많이 읽었던가. 마지막으로 읽은 선생의 소설은, 10여 년 전 속으로 키득키득하다 한숨지으며 읽었던 ‘돌아보지 마라’였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갔다. 1982년께 어느 날 나의 대학원 지도교수께서 고 이병주 선생의 ‘잊지 못할 사람’이란 칼럼을 보여주며 “박 군! 이 잡지 자네 부친에게 우송하게”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해방 전 10여 명 남짓한 한국인 수재가 입학한 ‘동경외국어전문학교’ 출신으로, 중국어·일어는 네이티브 수준에 영어도 능통한 분이셨다. 부산 서면에서 가친과 함께 대포 한 잔 거나하게 하시곤 했다. 아마 칼럼 ‘잊지 못할 사람’에 등장한 분에 대해 말씀도 나누셨나보다 생각했다. 이미 두 분 모두 고 박희연이라는 분과 교류를 했었다.

와세다대학 불문과를 중퇴한 나림 선생의 그 칼럼은 내 지도교수와 1930년대의 동경외전 입학 동기생인 ‘박희연’이라는 분에 대한 글이었다. 나의 아버지가 고교 선배인 이분과 이분 집안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해주셔서 지금도 기억한다. 그 칼럼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불문학도였지만 중도 하차한 필자(이병주)가 일본 최고 외국어교육기관에서 수학한 박희연의 우수성(영어·불어는 정말 출중)을 회고하고, 이분의 부산제2상업학교(뒷날 부산상고, 현재 개성고) 학생 시절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당시 부산2상 교장실을 학생 당번이 청소했는데, 어느 날 일본인 교장이 출근하니 교장실 새장의 앵무새가 “바카야로, 바카야로!” 중얼거렸다. 화가 난 교장이 조사한 결과, 박희연 선생이 앵무새를 그렇게 교육시킨 것이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가친께서 부산상고 출신이며 나는 그 학교가 있었던 부산 서면 출신이다. 그 칼럼을 읽으며 배를 잡고 웃으면서 통쾌해했다.

아! 이런 분이 계셨구나. 박희연 선생은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냈고, ‘나의 투암기’ 등 칼럼을 부산의 신문에 자주 투고했으며, 한국외대와 인하대의 교수로 재직했다. 당시 국제무역을 전공하던 나는 이런 생각도 했다. 부산에서 도쿄까지 어떻게 갔을까? 원산 출신인 내 지도교수님은 어떻게 도쿄까지 갔지? 기차로 원산에서 경성, 경성 1박, 기차로 경성에서 부산, 부산 1박, 관부연락선으로 1박 2일, 시모노세키에서 하선하고 1박, 여기서 도쿄행 기차. 도어 투 도어로 4박 5일 걸릴 것 같다. 그야말로 해륙복합운송이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나간다. 아버지가 어린 나에게 자주 말씀해주셨던 또 한 분이 부산 서면 출신으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서울대 교수를 지낸 고 박옥줄 선생이다. 동래고 출신으로 1950년대 프랑스 정부 초청으로 유학한 그분은 내 가친의 멘토이셨다고 생각한다. 수년 전 아버지는 살아 마지막으로 이분을 만나시러 상경하셨다. 아버지의 그 모습이 뇌리에 남아있다. 부산에 불어 하는 사람이 없어 당시 대구 성당 신부님이 프랑스 출신이라 불어로 대화해보려고 1박 2일로 대구로 갔다는 얘기를 가끔 해주셨다.

나의 아버지는 부산에서 태어나 6·25 참전과 미국 유학 시절을 빼고 부산에서만 살아오셨다. 구순이 지난 아버지는 1960년대에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오셨고 경남고 부산고 부산대 등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나림 이병주 선생의 기사를 계기로 부산의 출중한 외국어문학 전공자 3인에 대해 쓰면서, 부산은 역시 글로벌 DNA가 넘치는 사람들을 낳은 도시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지난 10월 15일 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BTS(방탄소년단) 콘서트가 부산에서 열렸다. 정말 대단했다. BTS의 성원과 열정, 부산 시민과 국민의 바람에 힘입어 2030 월드엑스포가 부산에서 개최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박명섭 성균관대 명예교수·㈔한국해양통상무역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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