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몸속 아몬드

국제신문 2022. 11.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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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몸에 아몬드 모양의 구조물들이 있다. 아몬드 산지와 거리가 먼 동양인에게 이는 편평한 복숭아씨로 보여 ‘편도’라는 이름을 얻었다. 목구멍에 존재하는 아몬드 모양의 림프조직 덩어리는 편도선이라 불린다. 위치에 따라 구개편도선 혀편도선이라 불린다. 뇌 깊은 부분인 변연계에 있는 아몬드 모양 신경조직 덩어리는 편도체라 불린다.

그림= 서상균 기자


내 몸에는 지금 이들 아몬드 중 하나가 없다. 잦은 편도선염과 농양으로 고생하던 나는 27년 지녔던 구개편도선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기능이 과해 제거된 구개편도선 대신 소화기나 호흡기 입구에서 감염을 예방하는 임무는 목구멍 주위 다른 편도선이 담당한다. 구개편도선과 달리 내 뇌 속의 아몬드는 64년째 내 몸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과하게 기능했다. 뇌의 변연계에 속하는 편도체는 감정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여러 감각은 각각의 감각중추에 신호가 전달되기 전에 편도체에서 감정을 생성한다. 어두침침함 혹은 낙숫물 소리 같은 객관적 감각이 편도체로 전달되면 두렵다는 감정을 생성한다. 생성된 감정은 이웃 해마로 전달돼 기억으로 남겨진다. 감각을 느껴 감정을 생성하며 이 감정을 기억으로 남기니 편도체는 감정의 중추라 불린다.

편도체는 특히 공포와 두려움에서 큰 역할을 한다. 두려움은 본능적 공포이자 학습된 감정이다. 실험동물에서 편도체를 제거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쥐의 편도체를 제거하면 고양이도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려움이 없으니 공격성도 사라진다. 편도체는 공포에 대한 기억에도 관여한다.

이는 공포 조건화 시험을 통해 입증됐다. 실험동물에 전기 충격으로 공포를 유발한다. 반복적으로 전기 충격을 주면서 특정 소리를 동시에 들려주면 동물은 특정 소리만 들어도 공포 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나 편도체를 제거한 동물은 특정 소리에 대해 공포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 실험으로 편도의 기능이 공포의 기억 및 학습과 관계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사람의 편도체 기능은 편도체 기능에 이상이 있는 환자를 조사해 입증됐다. 편도체가 파괴된 한 여성은 타인의 화난 감정이나 두려운 표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심한 간질 때문에 편도체가 포함된 뇌의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남성은, 가족 모두를 잃은 뒤부터 시달렸던 죽음의 공포에서도 벗어나는 뜻밖의 행운을 얻었다.

불안증이라는 감정장애를 편도체의 지나친 활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편도체가 전전두엽 통제를 벗어나 과하게 활성화되면 불안을 강하게 느낀다. 편도체 기능이 밝혀지면서 편도체를 다스려 불안과 공포와 같은 감정을 조절하려는 시도가 이뤄졌다. 편도체 활성을 억제해 공포 기억을 제거하고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는 자극적인 보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를 적용하기는 단순하지 않다. 앞서 언급한 간질 남성의 경우 편도체 제거 수술 후 공포가 사라졌지만, 폭력배에 포위돼도 두려움이 없이 덤덤해 스스로 당황했다. 적당한 불안도 쓸모가 있다. 불안 제거가 순작용만 가져오지 않는다.

최근 신경심리학 연구는 정치성향이 뇌의 활성과 관계있다고 알려준다. 편도체는 보수적 태도와 깊게 관련이 있다. 편도체 용적이 클수록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이 크다는 보고가 나왔다. 정치적 보수성이란 기존의 사회 경제 및 정치적 상황을 공정하고 합리적이라 긍정하는 태도이며, 사회 상황의 급격한 변화를 부정하는 경향이다.


필자는 불안이라는 정신방어 기작에 매몰돼 살았다. 늘 걱정이 팔자였다. 불안은 위험을 감지해 내게 신호를 보냈다. 나는 항상 비상상황을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생활습관으로 무장했다. 늘 바빴다. 부지런했다. 이 부지런함으로 성취를 이뤘으니 불안은 내게 에너지가 되기도 했다. 내 불안은 편도체 활성과 관계있을 것이다. 필자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이유도 설명된다. 편도체가 심하게 활성화됐으니 나는 급격한 변화를 두려워한다. 내 뇌 속 아몬드는 지난 64년 과도하게 활성화됐다. 아마 내 편도체의 용적도 평균 이상이리라 추측한다.

유영현 동아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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