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값 폭락해도, SK하이닉스·마이크론과 다른 길 가는 삼성
10월 D램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전월 대비 22.5% 폭락했다. 작년 9월 4.1달러로 고점(高點)을 찍었던 가격은 줄곧 내리막을 이어가며 반 토막 수준인 2.2달러까지 떨어졌다. 31일 대만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뿐 아니라 10월 낸드플래시 반도체 가격도 전월 대비 3.7% 하락하며 5개월 연속 빠졌다. 작년 9월 4.8달러였던 가격은 현재 4.1달러 수준으로 14% 떨어졌다. 이 가격은 범용 제품으로 통하는 D램 8Gb(기가비트), 낸드 128Gb 용량의 평균 고정거래가(기업 간 거래 가격)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이 같은 가격 하락세가 최소 내년 상반기까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격 하락 폭이 원가 절감 폭을 추월하며 점차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으로 접어들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키옥시아 등 주요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일제히 투자 축소와 감산(減産)을 선언하고 생존 전략에 돌입했다. 하지만 D램·낸드 반도체 시장 모두 1위인 삼성전자는 “계획된 투자를 지속하는 것은 물론 인위적 감산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D램 반도체 시장에 벌어졌던 ‘치킨게임(chicken game·상대가 무너질 때까지 출혈 경쟁을 하는 것)’이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잇따르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재고 털기 위해 가격 서로 낮춰”
10월 메모리 반도체 가격의 대폭락은 주요 메모리 업체들이 줄줄이 감산을 선언한 가운데 벌어졌다. 그만큼 주 수요처인 IT 기업들의 반도체 구매 수요가 꽁꽁 얼어붙었다는 뜻이다.
대만 시장조사업체인 트렌드포스는 “수요 부진에 직면한 3개의 D램 업체들이 더 많은 양의 PC용 D램을 출하하기 위해, 10월 초부터 PC 업체들에 공격적으로 가격을 낮춘 견적서를 내밀고 있다”며 “이 때문에 4분기 가격 하락 폭이 3분기보다 더 커졌다”고 했다. 또 미 상무부가 대중(對中) 반도체 제재를 강화한 것도 반도체 업계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선 PC, 스마트폰 등 전방 산업의 수요 위축이 지속되는 데다, 금리 인상으로 그나마 믿었던 ‘큰손’ 빅테크 기업들의 서버 투자마저 주춤하면서 최소 내년 상반기까진 가격 반등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면서 계속 구매를 미루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수익성 낮은 낸드서 구조조정 가능성”
이런 위기 속에서도 삼성전자는 인위적 감산을 거부하는 ‘나 홀로 행보’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쟁사들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반도체를 생산할수록 손해지만 삼성은 원가경쟁력을 바탕으로 탄탄한 흑자 구조를 유지하며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불황기에 경쟁사와 점유율 격차를 벌려 반도체 경기가 회복되면 더 큰 수익을 내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유진투자증권 이승우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공격적인 출하 계획으로 점유율은 회복되겠지만, 단기적으로 반도체 가격 하락 폭은 더 커지고 시장이 받을 충격의 강도도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경쟁사를 죽이는 ‘치킨게임’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치킨게임을 할 의도도 없고, 지금은 그럴 때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이 각국의 핵심 안보자산이 된 상황에서, 과거처럼 특정 기업을 죽여서 매물로 만들고 이를 인수하는 것이 쉽지 않아졌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막강한 자금력을 지닌 삼성의 과감한 행보(行步)에 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업계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의 ‘빅3′가 시장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D램 시장보다는, 5~6개 업체가 남아있는 낸드 시장에서 지각변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시장에선 현재 삼성전자의 낸드 영업 마진을 10%,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각각 마이너스 10%로 보고 있다. NH투자증권 도현우 애널리스트는 “2023년 낸드 시장에서 대부분의 회사들이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를 통해 일부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생존한 업체는 2024년 대규모 실적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치킨게임(chicken game)
어느 한쪽이 이길 때까지 피해를 감수하고 경쟁을 벌이는 것. 치킨(chicken)은 ‘겁쟁이’를 뜻한다. 기업들끼리 저가 출혈 경쟁을 벌여, 경쟁자가 떨어져 나가면 남은 기업들이 시장을 차지한다. 2000년대 이후 D램 반도체 시장에 두 차례의 ‘치킨게임’이 벌어지며 독일 키몬다, 일본 엘피다가 파산해 현재의 ‘3강 체제’가 갖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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