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진의 수학 인문학 산책] 판단력과 분별력
현대인들에게 판단력과 분별력은 개개인의 행복 지수, 건강(수명), 경제 상황 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사회 전체의 안녕과 발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흔히 “한국 사람들은 뛰어나다”라고 한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방법으로 일을 되게 하는 능력, 가시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또는 승부에서 이기는) 능력, 뛰어난 예술적 창의성 등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약점이 있다. 그것은 아주 기초적인 것에 대해서조차도 합리적인 판단이나 분별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판단과 분별은 의미가 살짝 다르다. 분별은 어떤 것들의 차이를 인지하거나,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것을 뜻한다.
좋은 판단력을 갖기 위해서는 당연히 논리적인 사고력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더 필요한 것은 ‘판단력이 창의력 등 다른 그 어떤 능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는 유형을 다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틀리거나 적합하지 않은 정보에 의존해서 판단하여 생기는 유형이다. 좋은 판단력은 좋은 정보력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좋은 정보’가 부족한 경우는, 정보나 지식 자체가 부족할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믿고 싶은 정보만 믿는 심리’ 때문에 왜곡된 정보를 토대로 판단을 하는 것이 문제이다. 인간은 합리적이고 올바른 사실보다는 더 쉽게 믿을 수 있는 사실을 마음에 품는다. 일단 어떤 생각을 품게 되면 그것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한국인 합리적 판단과 분별에 약점
자신의 생각이나 믿음을 점점 더 확신하는 것, 그로 인하여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 심리를 ‘확증편향성’이라고 한다. 스켑틱 시리즈의 한국판인 <우리는 모두 조금은 이상한 것을 믿는다>의 서문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여러분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우기는 지구평면론자, UFO가 지구에 방문한 외계인의 증거라는 외계인신봉자, 자기가 누구인지 혈액형에 묻는 혈액형 성격론자, 종말이 온다고 재산을 모두 탕진한 밀레니엄 종말론자, 사후세계를 경험하고 왔다는 임사체험자 등 우리 인간의 가장 대표적인 이상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단순한 재미와 웃음을 넘어 이들은 우리가 가진 믿음 엔진의 정체가 무엇이고, 우리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힌트를 제공한다. 이상한 믿음에 대한 이해는 우리 인간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해줄 것이다.”
둘째, 인정할 것을 인정하지 않아 생기는 유형이다. 전문가의 말이나 객관적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우열의 차이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이러한 사람들의 판단 착오는 자신이나 가족이 병에 걸렸거나 다쳤을 경우에 흔히 발생한다. 전문가인 의사의 과학적이고 양심적인 판단을 인정하지 않고 이상한 치료법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
셋째,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판단하지 않고 그저 느낌에만 의존하여 판단하는 유형이다. 농구 경기 중계방송에서 “자유투 던지는 저 선수는 자유투 성공 확률이 80%인데 지난 세 번 연속 실패하였으니 이번에는 넣을 확률이 높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해설자들이 종종 있다. 이러한 종류의 오류를 ‘도박꾼의 오류’라고 부른다. 총선에서도,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로서 국회에 나가서 국가의 외교, 국방, 복지, 경제, 교육 등에 대해 논하고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인데, 그들의 자질보다는 어느 지역 출신이냐가 당선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수학교육의 목표는 그 능력 키우기
넷째, 좋은 판단의 중요성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유형이다. 어떤 판단을 하더라도, 그 결과는 별 차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일례로 위원회 같은 곳에서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종합적 정보와 상식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주관적 판단을 통해 결정하지 말고 그저 간단한 수치만 보고 결정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관적 판단이 필요없다면 왜 전문가들로 위원을 구성했나 싶을 때가 있다. 좋은 판단의 필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정부나 회사의 인사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중요한 자리에는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을 임명해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 그냥 아무나 그 자리에 앉혀도 괜찮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수학교육의 기본적인 목표는 학생들의 논리적 사고력, 문제 해결 능력 등을 키우는 것이지만, 나는 그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판단력과 분별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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