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슬픔의 연대를
사안 자체에 압도당할 때가 있다. 이번이 그런 경우이다. 이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이여, 부디 좋은 곳에 가시길. 모든 고통을 잊고 자유롭고 평온하시기를.”
2022년 가을, 서울이란 대도시 한복판에서는 믿어지지 않는 참사가 이어졌다. 굵은 빗줄기 속에서는 지하에 있는 집이, 선선한 가을밤에는 인파가 몰린 이태원 거리가 그런 일이 벌어지는 장소가 되었다. 그다지 위험하다고 여겨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파도가 거친 새벽 바다도 아니었으니까. 어느 누구든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특히 그 거리에는 많은 이들이 가고 싶어 했고, 수시로 찾아가기도 했다. 어떤 이들에게 그곳은 삶의 터전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사람들이 혼신의 힘을 다한 그 밤이 지났고, 응급실 주변에는 눈물이 뿌려졌다. 황망한 가운데 그 거리의 노란색 폴리스라인 뒤로 책임 있는 사람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장관의 언급이나 주최 측이 없으므로 책임을 묻기 힘들다는 얘기를 듣고도 믿어지지는 않았다. 공공의 책임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지 않는 것은 의아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대책이 발표되었다. 심리지원단을 만들었다고 하고,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하였다. 사실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 한다.
애도기간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이 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에게 아픔을 남길 것이다. 그러나 슬픔의 연대를 만들어내고 남은 이들을 오래도록 진심으로 위로하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다. 수년 전 바다에서 많은 아이들을 잃은 이후에 고통은 사람들을 연결시키기도 하지만 서로를 배척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한 바 있다. 사회연대에 관한 논의는 그 핵심으로 사람들끼리는 서로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에 기초하여 서로에 대한 책임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서로의 의존과 책임을 이어주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 바로 고마움, 미안함, 혹은 고통에 대한 공감과 안쓰러움이다. 이러한 무거운 마음을 외면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타인에 대한 책임 또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지금 우리는 젊은이들을 잃었다. 이미 태어나 예쁘게 꽃핀 생명도 지키지 못한 사회이다. 이런 공동체를 만들어 온 사람으로서 마땅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이런 마음을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지금 이 사회의 운영을 구체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 역시 이러한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미안함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것이 마땅하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온전한 책임감으로 나아갈 수 있다.
미안함과 슬픔과 같은 온갖 마음의 짐이 각자의 몫으로만 남지 않게 조금 더 서로 의지할 수 있길 바라본다. 그날 밤 희생자에 대한 애도에 더해 그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존경이 당연한 첫걸음이겠다. 나아가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포괄적인 책임을 가지는 공적 주체의 사과가 필요하다. 공공의 책임 뒤로 각자가 숨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나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서로 연결되기 위해서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각자의 지옥에 갇히지 않도록 우리 공동체가 희생자에게는 조금 더 따뜻하게, 책임을 물을 곳에는 조금 더 엄정하게 대하길 바라본다. 아마 사회복지를 비롯한 각 분야가 책임 있게 해야 할 일들이 있을 것이다.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위로가 되지만 그럼에도 가슴이 꼭 막힌다. 어쩔 수 없이 당분간 이 체기는 안고 갈 수밖에 없겠다. 슬픔의 연대가 만들어진다면 언젠가 회복의 연대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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