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 칼럼] 보수 정부의 가장 큰 위험
벌써 세 번째이다. 보수 정부에서 위험이 핵심적인 사회현상으로 등장하는 것 말이다. 박정희, 노태우, 김영삼 정부 때에도 위험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지만 지금과는 양상이 달랐다.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던 수많은 사고는 회유 혹은 탄압의 대상이 되었고, 취약한 사회 인프라로 인한 일상의 위험은 숙명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명박 정부 때의 광우병 사태와 4대강 사업, 박근혜 정부 때의 세월호 참사, 그리고 윤석열 정부 들어 일어난 이태원 참사는 이제 고질화해가는 보수 정부의 패턴처럼 느껴져서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박근혜 정부 때의 세월호 참사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훨씬 더 큰 비극이었지만, 과정은 아주 단순했다. 낡은 배를 타고 다닐 수 있도록 과도한 규제완화가 이루어졌고, 그나마 지켜야 할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았고, 그것을 감독해야 할 관료들이 사업자와 결탁해 이익공동체가 되었고, 머리를 올리느라 7시간 지나서야 나타난 대통령은 “구명조끼 입었다는데 그렇게 찾기 어렵습니까”라는 한가한 소리를 했다는 것이 그 내막이다. 복잡한 현상과 맞물린 광우병 사태에 비하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사건의 전개이다. 그러나 국민을 지킬 의지가 없다는 점에서는 똑같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지난 8월9일자 이 칼럼에서 나는 “지지율에 갇힌 채 좀 더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면 국민들은 삶이 위태롭게 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중략) 닥쳐 있는 문제들은 하나같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국민 생존의 문제이다. 이명박 정부 때 보았듯이 보수 정부의 가장 큰 위험은 정부가 국민들의 삶을 지키는 데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마치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고 해석될 수 있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은 보수 정부의 가장 큰 위험의 뇌관을 건드릴 수 있어서 부적절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즉각적인 정쟁화 대신 애도와 적극 협조를 택한 더불어민주당은 오랜만에 좋은 선택을 했다. 두고봐야 알겠지만, 이태원 참사가 정치화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광우병과는 달리 위험의 경계선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예고한 여러 정책 중에는 사회적 위험을 증폭시킬 수 있는 것들이 다수 섞여 있다. 보수 정부의 개혁이 국민의 삶을 세심하게 지키면서 진행된다는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정치적 위험이 곳곳에 도사릴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진짜 리스크는 낮은 지지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높아지는 사회적 위험을 관리하는 데 실패하는 것에 있다. 인파로 가득 찬 축제의 골목길에서 느닷없이 맞이한 억울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여러 정책의 변화가 가져올 혹시 모를 사회적 위험을 수없이 사전에 다듬어야 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공군 대령, ‘딸뻘’ 소위 강간미수···“유혹당했다” 2차 가해
- 김재섭, 윤 대통령-명태균 통화 “부끄럽고 참담···해명 누가 믿냐”
- [스경X이슈] ‘나는 솔로’ 23기 정숙, 하다하다 범죄전과자까지 출연…검증 하긴 하나?
- 친윤 강명구 “윤 대통령, 박절하지 못한 분···사적 얘기”
- 70대 아버지 살해한 30대 아들, 경찰에 자수…“어머니 괴롭혀와서” 진술
- [한국갤럽]윤 대통령, 역대 최저 19% 지지율…TK선 18% ‘지지층 붕괴’
- [단독] ‘김건희 일가 특혜 의혹’ 일었던 양평고속도로 용역 업체도 관급 공사 수주↑
- 김용민 “임기 단축 개헌하면 내년 5월 끝···탄핵보다 더 빨라”
- 미 “북한군 8000명 러시아서 훈련 받아…곧 전투 투입 예상”
- “선수들 생각, 다르지 않았다”···안세영 손 100% 들어준 문체부, 협회엔 김택규 회장 해임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