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이상한 비상경제민생회의
대통령 주재의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생중계하겠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몇몇 발언과 안건 내용을 공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정부의 대책회의를 국민에게 생중계하겠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신선했다. 자금 경색과 환율 불안 등으로 시중에서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우려까지 소환되는 상황이지 않은가. 불필요한 우려를 일부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부가 국민을 설득하고 안심시킬 직관적인 카드가 없는데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증이 더 컸다. 어두운 지표들과 불확실한 전망으로 80분을 보내고 나면, 정부에 대한 신뢰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커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장 자금시장 경색과 어두운 수출 전망, 본격화될 경기 후퇴에 대한 진단과 대책을 듣고 나면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번 생중계가 우리가 정말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리고 협조를 요청하기 위한 극약 처방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완전한 오판이었다. 우려했던 위기에 대한 설명은 짧았고, 희망찬 청사진이 가득했다.
회의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복합위기 상황으로 시작했지만, 이는 뒤이어 각 부처가 내놓을 장밋빛 미래를 장식하기 위한 포석처럼 보였다. 2차전지를 제2의 반도체로 키우겠다거나 스타트업을 1000개 발굴하고 자산가치 1조원짜리 유니콘 기업을 5개 육성하는가 하면, 바이오 파운드리를 구축해 바이오산업 시장점유율을 두 자릿수로 끌어올리겠다는 식의 미래 구상이 쏟아졌다.
당장 자금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채권시장 위기를 어떻게 해소할지 신호도 없었고, 한동안 이어질 고금리, 고물가 상황의 영향이나 전망, 대응 방향도 뚜렷하지 않았다.
어려운 대외 여건이 지속되는 가운데 무역수지는 6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생산과 소비, 투자가 동시에 줄어드는 ‘트리플 감소’ 상황이 한 달 걸러 반복되고 있다.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5%대를 유지하고 있고, 국제기구들은 내년도 한국 경제성장 전망을 앞다퉈 하향 조정하고 있다.
물론 정부가 강조했듯 이번 위기는 우리의 적극적인 대응만으로 해소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요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긴축, 전쟁이 부채질하는 인플레이션, 거대시장의 봉쇄와 한국 수출의 주력 반도체의 침체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해법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문제들임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국민들은 비상경제 상황을 논하러 모인 장관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장밋빛 청사진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장 뾰쪽한 답을 내놓지 못하더라도 위기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해법을 찾아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주는 안정감이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이번 비상경제민생회의는 11번째였다. 앞선 10번은 공개되지 않았다. 대통령은 이번 생중계를 앞두고 장관들에게 “절대로 쇼하지 말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고 한다. 돌려 생각하면 앞선 10번의 회의가 이번 회의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차라리 이번 회의는 생중계를 위한 쇼맨십이 가미됐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다.
이호준 경제부 차장 hj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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