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은 어떤 형태였을까?
극장이라고 하면 우리는 대부분 한쪽에 단상무대가 있고 그 맞은편에 경사객석이 있는, 강당처럼 또는 영화관처럼 생긴 모습을 떠올린다. 이러한 극장을 액자틀극장, 혹은 프로시니엄극장이라고 한다. 객석에서 본 무대가 마치 액자틀 속의 그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장의 시작은 그렇지 않았다.
서기전 6세기 무렵부터 고대 그리스인들은 매년 봄 디오니소스 신전 앞에서 한 해의 풍요를 기원하는 디오니시아 제전을 열었다. 그 제전에서 공연될 연극을 위해 언덕을 깎아 반원형의 객석을 만든 것이 고대 그리스의 극장들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극장들이다. 그들은 무대를 오케스트라, 객석을 테아트론이라 불렀다. 그것이 극장(theatre)의 어원이다. 무대를 180도 감싸는 반원형 객석은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활짝 편 부채와도 같았다. 그리스의 극장을 이어받은 고대 로마인들은 건축적으로 더 완성도를 높이는 한편 그들만의 독창적인 극장을 발명했다. 반원형극장 2개를 서로 마주 보게 붙이면 원형극장(amphi-theatre)이 된다. 콜로세움이 바로 그것이다. 그 무대 바닥에 모래(arena)를 깔았기 때문에 아레나라고도 부른다.
그후 유럽은 약 1000년 동안의 공백기를 거쳐 문예부흥(르네상스)을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유랑극단들이 대도시에 정착해 극장을 지었다. 여관 안마당처럼 생긴 이 중정극장들에서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다. 3면이 객석으로 둘러싸인 무대였다. 스페인도 그와 유사한 극장들을 만들었다. 인도와 중국, 일본 극장들도 비슷한 형태였다.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고대 로마의 반원형극장을 실내에 부활하고자 했다. 당시 드라마의 주소재는 고대 신화였고 그것을 진짜처럼 재현하기 위해 액자틀 무대를 만들었다. 이 프로시니엄극장은 원근화법을 이용한 실감 나는 무대를 배경으로 그들의 또다른 발명품인 오페라와 함께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오늘날 세계적인 극장건축의 주류가 됐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극장 형태다. 이 2가지 서로 다른 극장들은 표현양식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셰익스피어극장에서는 "파도가 치는구나!"라고 배우가 외치거나 파란색 천을 양쪽에서 잡고 흔들면 관객들은 파도 치는 바다를 상상했다. 연극적이고 비재현적 표현이다. 그러나 프로시니엄극장에서는 진짜 바다처럼 그림을 그려 관객들에게 보여줬다. 재현적 표현이다.
동양의 연극 전통은 셰익스피어 극과 마찬가지로 연극적, 비재현적 표현을 수단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것은 한국의 전통공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일까. 1902년 고종황제의 즉위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할 세계 각국의 사절단에게 한국의 공연을 보여주기 위해 지은 한국 최초 극장건물인 '협률사 희대'는 셰익스피어극장과 마찬가지로 원형 건물 속에 3면이 객석으로 둘러싸인 비재현적 무대를 가진 극장이었다. 후일 '원각사'로도 불린 우리나라 최초 국립극장은 일제강점기 시절 불분명한 이유로 사라지고 지금은 한 장의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1970년대에 영국은 그들의 국립극장을 신축하면서 3개 극장 중 대극장과 소극장으로 각각 셰익스피어 시대의 대중극장과 사설극장의 본질을 살린 극장 형태를 택했다. 중극장에만 프로시니엄 형태를 채용했다. 오늘날 한국의 공공극장들은 어떤 형태일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달오름극장, 국립명동예술극장,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토월극장 등은 모두 프로시니엄극장이다. 한국 전통공연을 위해 지어진 국립국악원 예악당과 소리문화의전당 대극장도 그렇다. 심지어 '원각사 복원'을 목적으로 지은 국립정동극장도 프로시니엄극장이다.
국립정동극장 재건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지하에는 프로시니엄극장을 짓더라도 지상에는 '협률사 희대'를 복원해 한국적 공연예술의 DNA를 품은 극장 하나쯤은 가질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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