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낳은 세계 일류…삼성전자 창립[그해 오늘]

전재욱 2022. 11. 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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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주식회사의 전신 삼성전자공업 주식회사는 1969년 1월13일 설립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취임(1987년 12월)하고 이듬해인 1988년 11월1일을 삼성전자 창립일로 지정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가 설득한 끝에 삼성전자공업은 설립에 성공했다.

이윽고 삼성전자는 1983년 11월 64K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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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창업 원년 1988년 11월1일을 삼성전자 창립일로 지정
무모하다던 전자산업 뛰어들어 반도체로 일군 세계 초일류
이익, 주주와 함께 누린 국민기업…한국인 열에 하나 '주주'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삼성전자 주식회사의 전신 삼성전자공업 주식회사는 1969년 1월13일 설립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취임(1987년 12월)하고 이듬해인 1988년 11월1일을 삼성전자 창립일로 지정했다. 그해를 제2 창업 원년으로 삼으면서 내린 조처였다. 주력 계열사 삼성전자가 새로이 탄생함으로써 도약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별세(1987년 11월19일)하고 1주기를 앞둔 시점이었다.

고 이병철(왼족 세번째) 삼성 창업주가 1985년 5월21일 삼성반도체통신 기흥 반도체 2라인 준공식에 참석한 모습. 오른쪽 두번째가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다.(사진=호암자전)
애초 삼성이 1969년 삼성전자공업을 세우려고 하니 반대가 심했다. 외부에서는 국회의원까지 나서 말릴 정도였다. 삼성이 진출하면 전자업계가 고사한다는 게 우려였다. 빗대자면 ‘대기업이 골목 상권을 침범하지 말라’는 식이었다. 당시 우리의 전자 산업 수준을 대변하는 반응이다. 외국 부품을 들여와 조립해 판매하는 정도였지 자체 완성품을 제조하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세계는 부가가치가 큰 전자 산업 주도권을 쥐고자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국내에서는 좁은 내수 시장을 두고 밥그릇 싸움이 한창이었던 것이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가 설득한 끝에 삼성전자공업은 설립에 성공했다.

후발주자로 합류한 삼성은 메기 효과를 낳았다. 삼성에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는 기존 사업자의 분발과 이들을 따라잡으려는 삼성의 분투는 한국 전자산업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주력인 삼성전자 흑백텔레비전은 회사 창립 10년 만에 일본과 미국의 경쟁사 생산량을 뛰어넘었다. 비디오테이프 레코드(VTR)도 세계 시장에서 히트했다.

이를 발판 삼아 삼성전자는 주력을 반도체로까지 확장한다. 전자산업에 뛰어든 지 8년 만인 1977년 12월30일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것이다. 반도체는 전자산업에서도 최고의 기술이 집약돼 있다. 이런 터에 반도체 시장 진출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기존 미국·일본과 기술격차를 좁힐 수 있을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가 관건이었다.

삼성전자의 목표는 확고했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었다. 이를 위해 삼성반도체를 흡수합병(1980년 3월3일)하고 삼성반도체통신을 발족(1982년 12월27일)시켰다. 이윽고 삼성전자는 1983년 11월 64K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과 일본이 양분하던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세 번째로 거둔 성공이었다.

삼성그룹 특유의 전공정주의(全工程主義)가 뿌린 내린 계기는 삼성전자 창업을 통해서였다. ‘삼성전자를 일으키면서 모래에서 브라운관까지를 모토로 생산품의 시작과 끝을 잇는 전공정주의를 채택했다’(호암자전) 현재 삼성전자 사업부가 DX(스마트폰·가전), DS(반도체), SDC(디스플레이)로 분화했지만 셋이 모두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삼성 반도체를 탑재하고 삼성 디스플레이를 덮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0월25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선영에서 치른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2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모습. 이 회장은 추모식 이틀 후에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했다.(사진=연합뉴스)
전자 그리고 반도체에 대한 무모에 가까운 도전은 삼성전자를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시켰다. TV 기술을 이전해준 일본 기업은 이미 20세기에 제쳤고, 반도체 기술이 집약된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글로벌 1위를 차지하고 있다. 1975년 기업 공개한 삼성전자는 그해 매출 목표를 250억원으로 삼았는데, 지난해 매출(연결기준) 279조6047억원을 기록했다. 당시 목표치와 비교해 1만1184배 성장했다.

삼성전자가 국민기업 칭호를 받은 것은 국민주식으로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성장하면서 거둔 이익을 주주 다수와 누렸다. 현재 소액주주 수는 592만명(2022년 상반기 기준)으로 한국인(5146만명) 열에 한 명 이상(11%)이 이 회사 주주다. 실적을 발표하는 날이면 공시를 보려는 사람이 몰려 사이트가 먹통이 되곤 한다. 이런 회사가 올해로 창립 53주년을 맞는다.

전재욱 (imfew@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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