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이태원 참사 수습 우선' 한목소리…협치는 동상이몽?

박숙현 2022. 11. 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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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모처럼 '초당적 협력' 강조…애도 기간까지 휴전
예산 심사·대통령실 국감 등으로 대치 재개 전망

여야가 모처럼 머리를 맞대고 협치를 강조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관련 국가 애도기간이 선포된 가운데,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 태극기가 조기 게양돼 있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국정감사 기간 내내 상대를 향해 으르렁대던 정치권이 손을 맞잡았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에 여야는 한목소리로 '수습 우선'을 외치며 초당적 협력을 다짐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첫 본예산을 둘러싸고 견해차가 크고, 민감한 정쟁용 현안이 산적해 있어 협치 정국은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은 이태원 참사 여파로 모처럼 휴전 상태에 접어들었다. 사고 수습을 최우선으로 두고 초당적 협력에 대한 다짐을 주고 받았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사고 발생 사흘째인 지난달 31일 비상대책회의에서 "사고 수습과 유사한 사건 재발 방지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일체의 정치활동을 중단하고 정부의 사고 수습과 치유 대책에 전적으로 협조하기로 한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필요한 협력은 요청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만주당 대표도 "현재로서는 일단 수습과 위로에 총력을 다할 때"라고 화답했다.

민주당은 초당적 협력 태세로 전환하고 공세를 자중하는 분위기다. '김진태 발(發) 경제위기 진상조사단'은 이날 예정했던 강원도청 방문 일정을 취소했고, 당 '윤석열 정권 정치탄압대책위'도 대통령실 앞 1인 시위를 잠정 중단했다. 1일 정책의원총회에서 다루기로 했던 감사원 권한을 축소하는 감사원법 개정안 당론 추인 절차도 미루기로 했다. 당대표실 걸개(백드롭) 문구는 '야당 탄압 규탄! 보복수사 중단!'에서 '힘을 모읍시다 이태원참사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로 교체됐다.

여야는 당장 '초당적 협력'의 일환으로 대통령실 대상 국정감사를 오는 3일에서 8일로 미뤘다. 진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재난 수습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대통령실에 민주당이 사고 수습을 위해서 협력하기 위한 대승적 차원의 연기 제안이고, 이에 대해 국민의힘도 화답해준 결과"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이전 비용,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각종 의혹 등이 국감 검증대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대참사 상황에도 낯 뜨거운 정치 공방을 펼칠 경우 직면할 국민적 비판을 여야 모두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윤석열 정부 첫 감사기간 내내 고성과 파행이 오갔던 것에 비하면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국가적 참사에 정치 공방을 벌일 경우 여론 비난에 직면할 것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생대책위원장(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3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를 방문했다. /이동률·이선화 기자

여야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책임 회피성 발언'에도 일단 주파수를 같이 하고 있다. 앞서 이 장관은 사고 원인에 대해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당권주자인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한 라디오에서 "국민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또 국민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모습이 아닌 형태의 언행은 조심해야 한다"며 "사전에 안전을 위해서 통행을 제한하든지 현장에서 사람들이 밀집하지 않도록 소개할 수 있는 그런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고 쓴소리했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도 "조금 더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무겁게 이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좋겠다"고 지적했다.

다만 사태 수습을 바라보는 여야 시각차는 뚜렷하다. 국민의힘은 희생자 추모와 유가족 지원 등이 우선이라고 강조하는 반면, 민주당은 사태 수습 못지않게 원인 진상규명도 절실하다며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같은 날(31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이 장관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자 "지금은 '추궁의 시간'이라기보다는 '추모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이 장관의 발언이 윤석열 정부 책임론으로 번질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 당시 세월호 참사를 소환하며 '윤석열 정부 무능론'을 다시 부각하는 모습이다.

협치 정국은 짧게 끝날 것으로 보인다. 10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앞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며 묵념했다. /국회사진취재단

여야는 국가 애도기간인 5일까지 숨 고르기하고 다시 대치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등 감사원 공방, 대장동·김건희 특검, 레고랜드발 금융위기 등 풀지 못한 민감한 현안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 측근의 불법 정치자금 이슈를 둘러싼 민주당 중앙당사 압수수색과 헌정사 최초 대통령 시정연설 보이콧, 국회 부의장 선출 연기 등 여야는 이태원 참사 직전까지 극단적 대립 상태였다.

이와 더불어 여야는 내년도 예산심사를 두고도 대립 국면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오는 7~8일 종합정책질의를 시작으로 639조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심사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예정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재정운영이 방만했다며 지역화폐와 공공형 노인일자리, 청년 추가 고용장려금 등의 예산을 대폭 삭감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민주당은 대통령실 이전 비용을 집중해 들여다보고 법인세 인하 등 부자감세를 막겠다고 '송곳 심사'를 벼르고 있다. 정치권에선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법정 시한인 12월 2일을 넘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오는 8일 대통령실 국감에서도 여야 정면충돌이 예상된다. '정쟁을 자제하자는 기조가 대통령실 국감 때도 유지되겠나'라는 취재진 물음에 진 수석부대표는 "국감이 정쟁이라고 보지 않는다. 국감은 정부의 법집행 실태를 점검하는 것인 만큼 정쟁이 아니다. 정쟁 자제 차원에서 (대통령실) 국감을 연기하자는 게 아니라 재난 수습 컨트롤 타워가 대통령실이기 때문에 사고 수습에 전념하라는 뜻으로 연기한 것"이라며 대통령실 의혹에 대한 집중 공세를 예고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에 버금갈 정도의 충격적인 사태이니 정치권이 추모하고 애도하는 기간이 있어야 한다. 여야가 잠깐 휴전 중인 것"이라며 "다만 (야당 탄압은) 윤석열 정부가 시작한 거라 민주당이 끝내고 싶어도 끝낼 수 없을 것이다. 애도 기간이 어느 정도 끝난 다음에 (여야 대립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 책임론은) 책임 소재를 따져봐야겠지만 '앞으로 잘하자'는 분위기로 갈 것 같다. 이것보다는 지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당사 압수수색 문제,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구속 등을 애도 기간이 끝나고 (정부가) 다시 건들면 도화선이 돼서 (대여 투쟁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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