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과 함께하는 ‘국숫집 일일 점장’ 100명 돌파했어요”

오윤주 2022. 11. 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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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담쟁이 장애인 보호작업장 김윤경 시설장
김윤경(왼쪽 둘째) 시설장을 비롯한 청주 ‘담쟁이 국수 이야기’에서 일하는 이들이 함께했다. 담쟁이 국수 이야기 제공

끝내 벽을 넘는 담쟁이처럼 장애의 벽을 넘으려는 국숫집이 있다. 충북 청주 청원구 향군로(우암동)에 있는 ‘담쟁이의 국수 이야기’다. 지난 10월 27일 오전 10시40분부터 2시간 동안 유난히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102번째 일일 점장인 윤건영 충북교육감이 앞치마를 두른 채 분주하게 서빙을 했다. 넥타이를 맨 공무원, 직장인 등이 줄을 이었다. 윤 교육감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며 국수를 만드는 분들을 격려하고, 고통받는 분들과 함께하려는 뜻에서 일일 점장을 맡았다”고 했다.

식당은 50㎡ 남짓 공간에 식탁 10개가 전부다. 맑은 국물 어묵국수, 비빔 국수, 어묵꼬치 등이 주메뉴다. 국수는 장애인들이 만들고, 삶고, 말아서 판다. 가끔 지역의 뜻있는 이들이 일일 점장으로 나서 돕는데, 최근 100대, 101대, 102대 점장을 잇따라 배출했다.

국숫집은 2016년 8월 충북시민재단 사회적경제기금 500만원을 지원받아 열었다. 국숫집 개점과 일일 점장제의 처음 아이디어를 낸 담쟁이 장애인 보호작업장 김윤경(51) 시설장을 지난주 전화로 만났다.

청주 청원 ‘담쟁이의 국수 이야기’
2016년 충북시민재단 지원해 개업
장애인들 ‘권오길 국수 비법’ 전수

지역 이웃·명사들 식당 서빙 봉사
지인 손님들 몰고와 수백그릇 ‘대박’
“매상보다 따뜻한 마음 모아 뜻깊어”

윤건영(뒷줄 가운데) 충북교육감이 지난 10월 27일 102번째 일일 점장으로 봉사하면서 담쟁이 국수 이야기 직원들, 도우미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충북교육청 제공

“일일 점장은 국숫집에 사랑을 채우는 화수분이죠.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날만해도 손님이 200~300명 정도 다녀가신 듯하네요. 대박이죠. 이런 날이 이어지면 좋겠어요.”

김 시설장은 “벌써 100대 점장을 넘겼다는 게 놀랍다. 장애인들이 만든 국수를 보다 안정적으로, 의미 있게 판매할 공간이 필요했고. 식당이 잘되면 국수도 잘 나가고, 장애인 일자리도 늘릴 수 있어 여러가지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담쟁이 국수 이야기 식당에선 이아무개(62)·박아무개(64)·이아무개(52)씨 등이 오전 2명, 오후 1명씩 번갈아 일한다. 장애인이다. 이들을 근로 지원 비장애인 4명이 번갈아 돕는다. 평일 점심이나 저녁 때 국수를 파는 데 대체로 한산한 편이다.

김 시설장은 “날씨·요일 등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하루 평균 30그릇 정도 파는 편이다. 100그릇 정도 안정적으로 파는 게 목표인데 아직 월급도 벅차다”고 말했다.

첫 일일 점장 송재봉 전 충북엔지오센터장부터 윤 교육감까지 지역의 각양각색 인물들이 기꺼이 동참했다. 100번째 일일 점장인 김시진(38) 크렉션 대표는 “식당이 텅텅 비면 어쩌나 걱정돼 지인들에게 문자 보내고 초조했다. 다행히 손님이 들어오면서 마음이 놓였고, 대기 줄이 길어질 땐 웃음도 났다. 국수 한 그릇 먹으러 오는 걸음의 고마움을 절절히 느낀 하루였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송승호 충북보건과학대 총장(82번째), 윤갑근 전 대구지검장(87번째), 박완희 청주시의원(88번째),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90번째), 이무석 우리들기업 대표(101번째) 등 이름 난 이들이 담쟁이 국숫집 일일 점장을 했다. 일일 점장의 위력은 인맥·관계 등을 동원해 주변을 식당으로 이끄는 힘이다. 조 회장은 지인 등을 국숫집으로 끌었고, 송 총장은 총학생회와 함께 점장에 나섰으며, 윤 전 지검장은 도우미 등과 일일 점장을 함께 했는데 손님이 200명 안팎이었다.

김 시설장은 “담쟁이 국수 이야기 일일 점장의 수익금은 장애인 직원들의 급여로 쓴다. 진보나 보수, 소속 정당, 남녀노소, 더 가지고 덜 가지고 등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했다.

박연수(맨오른쪽) 전 충북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이 담쟁이 국숫집 일일 점장으로 국수를 나르고 있다.

실제로 주변 이웃, 장삼이사들도 일일 점장으로 나섰다. 청주교대 부설초등학교 5학년 10명(14번째), 김상윤 청주 수암골 하늘다방 대표(81번째), 발달 장애인 인권단체 충북피플퍼스트센터 센터장과 활동가(96번째) 등도 참여했다.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은 사고를 당한 동료를 돕는 일일 국숫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김 시설장은 “모두 소중했지만 발달 장애인, 초등학교 학생 등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손님을 많이 모아 주는 것도 고맙지만, 따듯하고 소중한 마음과 마음이 모이는 게 더 뜻있다”고 말했다.

식당에서 파는 마른 국수도 사연이 있다. 국수는 청주시 미원면 담쟁이 장애인 보호작업장에서 장애인 30여명이 만든다. 이곳에서 만든 국수는 담쟁이 국수 이야기 식당과 시설·단체 등에 판다. 국수는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에도 나오는 국수 명인 권오길 선생이 비법을 전수했다. 2015년 1월 권 선생이 3박 4일 동안 담쟁이 작업장에서 손수 국수를 만들면서 반죽 배합, 건조법 등을 일일이 전수했다.

김 시설장은 “권 선생의 비법에다 질 좋은 밀가루를 쓰기 때문에 국수 맛 하니만큼은 자부한다. 가끔 권 선생께서 ‘맛 잘 지키라’는 당부와 응원도 전해온다”고 귀띔했다. 담쟁이 작업장은 최근 미원 지역에서 생산한 우리 밀로 빚은 칼국수 시제품을 만들었으며, 식품안전관리 인증을 받아 시판할 준비도 하고 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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