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간 게 잘못이냐" 이태원 유가족, 행안장관 향해 울분

CBS노컷뉴스 윤철원 기자 2022. 10. 3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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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명 신원 확인…장례 절차 개시
빈소마다 유가족 통곡과 오열
"2차 가해 하지 말아달라" 호소
"행안부 장관 발언 부적절" 비판
핵심요약
CBS 정다운의 뉴스톡 530
■ 방송 : CBS 라디오 '정다운의 뉴스톡 530'
■ 채널 : 표준FM 98.1 (17:30~18:00)
■ 진행 : 정다운 앵커
■ 패널 : 윤철원 기자

[앵커]
이태원 참사로 숨진 모든 희생자들의 신원이 확인되면서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장례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장례식장을 찾은 유가족들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비보에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흐느끼거나 오열했습니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안치됐던 동국대학교 일산병원에 취재 기자가 나가 있습니다. 윤철원 기자! 그곳 분위기는 어떤가요?

[기자]
이태원 참사 직후 이곳 동국대학교 일산병원에는 수도권 병원들 가운데 가장 많은 14구의 시신이 이송됐었습니다. 어제부터 희생자들의 신원이 확인되면서 유가족들은 연고지 인근에 빈소를 마련하기 위해 시신을 인계해 갔고, 현재는 3구만이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이 중 오늘 오후 40대 남성의 유족들이 고향인 광주에 빈소를 차리기 위해 영안실을 찾았습니다.

시신을 확인하고 나온 노모는 믿겨 지지 않는다는 듯 오열했고, 경찰의 부축을 받아 차량에 탑승했습니다.

이곳에는 20대 여성 두 명의 빈소가 꾸려져 장례가 진행중입니다.

아직 유족을 기다리고 시신 중 한 구는 오스트리아와 한국 이중국적자로 오스트리아에서 연락을 받은 유족이 빈소를 어디에 마련할 지 논의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른 한 구는 호주 국적으로, 유족이 내일 오후 입국해 이곳에 도착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곳은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취재진과의 접촉을 차단한 채 엄숙한 분위기 속에 간간히 시민들의 추모 발길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참사 희생자는 대부분 2~30대로 예상치 못한 죽음에 유족들이 망연자실하며 침통한 상황인데요.

경기도 수원 성빈센트병원 장례식장에서는 하나 뿐인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울분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아들을 잃은 A씨]
하나뿐인 아들이다. 제 자신보다 더 잘하는 아들이었다. 평소에 안부, 아빠 별일 없지, 너 뭐하냐 톡 주고받고… 내가 60이 넘었고 걔가 31살인데 여자문제도 다 터놓고 얘기할 정도였다.

[앵커]
갑작스럽게 자식을 잃은 슬픔도 감당하기 힘들텐데요. "책임이 놀러 간 희생자들에게 있다"는 둥 어처구니없는 2차 가해 때문에 힘들어하는 유가족들도 있었다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경기도 성남의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B씨는 이번 참사로 10대 조카를 잃었습니다. 그는 이번 참사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비판을 멈춰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B씨는 참사 이후 "이태원 관련 기사 댓글을 보고, 마음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는데요. "자식을 잃은 부모는 혼이 없는 채로 살아가게 된다"며 2차 가해가 유가족에 비수가 될 수도 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조카를 잃은 유가족 B씨]
내 일로 닥치니까, 그 글들이 더 뼈때리는 말들처럼 느껴지고 그런 말들을 안 했으면 좋겠고. 상황 판단을 하는 것보다 숨진 아이들이나 20~30대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만 빌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당사자가 되니까 (그런 말들이) 저희를 더 힘들게 합니다.

[기자]
또 다른 빈소에서 만난 한 유가족은 취재진을 향해 "힘들게 하지 말고 가라. 그냥 놀러갔다가 죽었다고 써라"라고 소리치기도 했는데요. 2차 가해가 유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분노가 되는지 잘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와 관련해서 세월호 유가족인 유경근씨도 어제 SNS에 '이태원 참사,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는데요. 유씨는 "악몽보다 더 끔직한 짓들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며 희생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비판했습니다.

31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앵커]
이번 참사에서는 이례적으로 외국인들의 피해도 컸던 것 같습니다. 타국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애끓는 사연도 전해주시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이번 참사에서는 14개국, 26명의 외국 국적자가 숨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접한 한 미국인 아버지는 수억 번을 동시에 찔린 것 같다는 말로 고통을 토로했는데요. 아들을 잃은 미국인 아버지 스티브 블레시씨가 트위터에 올린 글입니다.

블레시씨는 아들이 현장에 있었는데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글을 올린 지 3시간 뒤 사망 확인을 통보받았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미국인 사망자 2명 가운데 한 명이 그의 아들이었던 겁니다.

그의 아들은 한국 유학중 중간고사를 마치고 토요일 밤 친구들과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이태원을 찾았다가 참변을 당했습니다.

외국인 희생자 중에는 일본인 2명도 포함됐는데, 유족들의 상실감도 현지 언론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26살 딸을 떠나보낸 일본인 아버지 도미카와 아유무 씨는 딸이 정말 한국을 좋아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고, 홋카이도 출신 다른 희생자의 가족 역시 사망자가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고 싶어했다면서 슬픔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할로윈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애도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앵커]
정부 대응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습니까?

[기자]
문제가 된 건 어제 정부 합동브리핑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한 말이었습니다. 이 장관은 지난 주말 이태원에 찾은 인파가 예년에 비해 그리 많지 않았고, 경찰과 소방인력을 배치했어도 막지 못했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요.

경기도 평택의 한 빈소에서 만난 한 유가족은 이 장관의 발언을 겨냥해 "그럼 놀러간 게 잘못이냐. 대한민국이 그런 나라밖에 안 되는 거냐"며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이 장관의 발언이 부적절했음을 지적하는 성명을 내고,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습니다.

민변 서채완 변호사의 말을 들어보시죠.

[민변 서채완 변호사]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은 마땅히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경찰이 져야 될 책임을 회피하는 식의 발언일 수도 있고, 그런 식의 발언은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부적절하다.

지금까지 동국대학교 일산병원에서 CBS뉴스 윤철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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