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단 말 보이스피싱이면” “간호사인데 친구 못 구해” 빈소마다 오열
“제가 간호사인데 친구 하나 못 구했다는 게 너무…. 정신만 제대로 차렸어도....”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다음 날인 지난 30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삼육서울병원 장례식장. 서울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김모씨는 사고 당시 바로 옆에 있다가 결국 목숨을 잃은 친구 A씨를 떠올리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초등학교 동창인 김씨와 A씨는 지난 29일 밤 참사가 일어난 골목 인근 편의점에 야식거리를 사러 갔다가 인파에 휩쓸렸다. 두 사람 다 의식을 잃었지만 그들의 생사는 엇갈렸다. 김씨는 시민들 도움으로 깨어났지만, A씨는 회생하지 못했다. 김씨는 “골목길에 갇혔을 때 옆에서 계속 ‘정신 잃지 마’ 하고 소리쳤는데 어느 순간 친구가 ‘나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다’고 했다”며 “어느 순간 대답도 들리지 않고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했다.
A씨는 최근 대기업 취업에 성공하고 남자 친구도 생겨 들떠 있었다고 한다. A씨의 아버지는 “처음 딸이 죽었다는 전화를 듣고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며 “차라리 그거였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했다. 그는 “딸은 공부도 잘했고 자라면서 부모 속 한번 썩인 적이 없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후 이틀이 지났지만 31일에도 빈소가 마련된 장례식장은 유족들의 슬픔이 가득했다. 핼러윈을 즐기려다 연인이나 친구,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책망했고,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함께 슬픔에 잠겼다.
국내 한 대학원에 유학을 온 두 명의 이란 국적 30대 남녀가 이태원에 함께 갔다가 숨지는 안타까운 사연도 알려졌다. 한 시신은 순천향대병원에, 다른 시신은 안양 샘병원 등에 각각 안치돼 있다. 이들의 지도를 맡았던 중앙대 공과대학 전모 교수는 “아직도 두 제자의 죽음이 믿기지 않아 심장이 벌렁거린다”고 했다. 그는 “서른 여섯의 남자 제자는 현지에서 AI 관련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우리 대학 토목과로 왔다”며 “본인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의욕이 넘치던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서른셋의 여성 대학원생 B씨에 대해서는 “내 논문을 보고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직접 메일까지 보내줬다”며 “힘들 때마다 바이올린을 켜며 향수병을 달래던 모습이 생각난다”고 했다.
이란 현지 사정으로 현재 두 사람의 부모는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대학원 연구실 직원들이 이들의 상주 역할을 검토할 계획이며, 학내에 두 사람을 위한 추모 시설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31일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심모(27)씨의 빈소에서도 한탄이 이어졌다. 심씨는 핼러윈을 즐기러 친구 5명이 같이 이태원을 찾았는데 현장에서 그중 두 사람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중 한 사람은 빈소에서 “사고 당시 옆에서 친구가 계속 ‘살려 달라’고 외쳤는데 옴짝달싹 못 한 채 그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울먹였다.
10대 중학생과, 40대 어머니, 50대 이모가 같은 날 참사로 목숨을 잃은 사례도 있었다. 이날 낮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는 윤모(15)양과 어머니 정모(46)씨의 빈소가 함께 차려졌다. 윤양의 이모 정모(52)씨의 빈소는 고려대 구로병원에 마련됐다. 세 사람은 사고 당일 이태원을 함께 찾았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양이 다니던 중학교의 반 친구들은 이날 빈소를 찾아 조문하며 함께 슬퍼했다. 윤양의 친구들은 그에 대해 “평소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라고 했다. 아내와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윤양의 아버지는 한때 쓰러져 응급실에 다녀오기도 했다고 한다.
K팝을 사랑해 한국을 찾았다가 숨진 30대 중국인 여성도 있었다. 중국 교포인 부모를 둔 조명화(35)씨는 중국에서 재무학을 전공하고 10년 전 한국에 들어왔다. 성형외과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조씨는 BTS 등 한국 아이돌 가수가 좋아 한국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의 고모 조창련(54)씨는 “사고 나기 사흘 전에 천호동 식당에서 조카를 만나 밥 먹으며 셀카를 찍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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