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과 활기 넘치는 도시의 대명사 ‘이태원’…이젠 가슴 아픈 이름이 됐다[안명숙의 차이나는 부동산 클래스]

기자 2022. 10. 31.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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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숙 루센트블록 부동산 총괄이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중략).”

김춘수의 시 ‘꽃’의 일부 구절이다. 이름을 붙이고 불러준다는 것은 모든 것에 온기를 불어넣어 생명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도시도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붙여지면서 변화해 간다.

신사동 가로수길은 압구정로 12길과 도산대로 13길까지 양측에 가로수가 늘어선 번화가로 지명 유래는 분명치 않지만, 2020년부터 정식 도로명이 되었다. 가로수길의 영향을 받아 샤로수길, 망리단길, 경리단길 등 상권이 만들어지고 커지는 곳은 ‘○○길’로 부르며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서울 도심의 인쇄소와 철공소, 재래시장, 노포 등이 즐비한 고단한 생활의 터전이었던 을지로는 복고풍의 뉴트로한 감성을 즐기는 젊은이들에게는 ‘힙지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마켓가의 남쪽지역(South of maket street)은 소마(soma)라 하는데 지역 이름의 앞음절만을 따서 이름을 붙이는 움직임으로 최근 수십년간 미국의 모든 도시에서 유행했다. 미국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미국 뉴욕의 프로스펙트 하이츠와 크라운 하이츠 교차로 지역을 묶어 프로크로(procro)라고 부르면서 값이 싼 크라운 하이츠 부동산을 프로스펙트 하이츠 가격으로 팔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도시 이름 짓기 움직임은 새로운 상권을 만들고 상권 확대는 부동산 가치 상승으로 이어졌다.

<도시의 보이지 않는 99%>에 따르면 미국의 소호(SOHO) 역시 맨해튼 휴스턴가의 남쪽(South of Houston Street)을 줄인 것으로 체스터 랩킨이라는 도시계획가가 1962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이름을 붙인 랩킨도 이곳이 그렇게 인기가 높아질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가들이 소호의 공장을 임대해 스튜디오, 갤러리 등으로 사용하면서 1970년대 들어 이 지역은 예술인 지구가 되었다. 공장에서 공연을 하고 전시회를 열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면서 사람들이 모이고 즐거운 시간과 행복한 기억의 장소로 소호는 사람들 속에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이제 소호라는 이름은 세계에서 가장 볼거리 많고 감성 넘치는 핫한 곳의 대명사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는 변화하고 발전한다. 예전에는 오랜 시간을 걸쳐 자연스럽게 변화해 갔지만, 지금은 그동안의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목적을 가지고 변화를 주도해 가는 디벨로퍼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느 쪽이든 도시의 이름이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유입되고 도시에 온기가 퍼져가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의 전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도시가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은 그 지역과 연결된 사람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함께한 사람, 시간, 공간 등의 추억이 뒤섞여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도시가 어떤 이름으로 각인되어 기억될 것인지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다.

조선시대 남산 아래 동네 이태원은 배밭이 많은 곳이었다.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이태원은 외국인을 만날 수 있고 미제 물건을 구경할 수 있었던 낯선 곳이었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는 ‘이태원 프리덤’과 <이태원 클라쓰> 같은 노래와 드라마의 소재로 쓰일 만큼 우리나라에서 가장 글로벌하고 힙한 곳이다. 그래서 이태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다양성이 존중받고 활기 넘치는 도시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2022년 10월29일 이후 ‘이태원’은 한동안 우리 가슴속에 가장 가슴 아픈 이름이 될 것 같다. 적어도 지금 우리들에게는.

안명숙 루센트블록 부동산 총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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