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독점 권한’ 주겠다는 개정안, 견제 장치는 안 보인다
회원 감독·불법행위 단속권 부여…‘새대한’과 통합 조건 ‘공룡단체’로
플랫폼 업체 “제2 로톡 사태 우려”…정부와 중개료 줄다리기 가능성도
한국공인중개사협회(한공협)를 법정단체화하는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을 두고 한공협과 직방, 다방 등의 프롭테크 업계가 갈등을 빚고 있다. 이번 기회에 유일한 법정단체로 자리 잡으려는 한공협과, 한공협이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될 경우 시장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반대 목소리가 힘겨루기를 하는 양상이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4일 대표발의한 ‘공인중개사법 일부개정 법률안’은 한공협을 유일한 법정단체로 승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법이 통과될 경우 모든 개업공인중개사들은 한공협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개정법안은 나아가 회원에 대한 지도·감독권까지 부여한다. 즉 현재 정부(한국부동산원)와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고 있는 부동산 질서 교란행위 등 각종 불법행위 단속권을 한공협에 주겠다는 말이다. 개정법이 통과되면 앞으로 새로운 협회는 설립할 수 없다.
개정법안은 강력한 권한을 한공협에 부여하면서도 정작 한공협을 견제하고 관리·감독할 수 있는 규정은 명문화하지 않았다. 현재 개별 공인중개사에 대한 금지행위 및 처벌규정은 기존 공인중개사법에 담겨 있다. 이 때문에 부동산업계에서는 국회가 11만3000명(연회비 납부회원 기준 7만7000명)의 회원을 보유한 한공협의 눈치를 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중개수수료 등을 놓고 정부와 줄다리기를 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 개정법, 한공협에 지도·감독권 부여
부동산 업계에서는 개정안이 통과됐을 때 한공협이 독점적 지위를 얻게 되는 점을 우려한다. 특히 공공기관인 ‘한국부동산원’이 위탁수행하고 있는 ‘부동산거래질서 교란행위 신고센터’ 업무가 한공협에 넘어갈 경우 자칫 협회활동에 부정적인 회원을 표적조사하는 용도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5월 진성준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유사 법률개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통해 “특정 협회가 독점적 지위와 권한을 갖게 될 경우 구성 사업자들의 사업활동을 제한할 우려가 있고, 협회가입을 위한 등록비 등이 영세사업자들에게는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경쟁제한적 행위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출하기도 했다.
한공협에 이어 업계 2위 단체인 새대한공인중개사협회(새대한)와의 통합 문제도 숙제로 남아 있다. 한공협은 최근 대의원 임시총회에서 133명 중 81명 찬성으로 새대한과의 통합안건을 가결했다. 국회(국토교통위원회)와 정부(국토부)가 협회 단일화를 본회의 상정 전제조건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공협은 새대한이 한공협에 흡수되거나 자진해산하는 대가로 25억원을 지급할 계획이다. 이 자금은 현재 새대한이 갖고 있는 채무규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한공협이 새대한의 채무를 청산해줄 테니 자진해산하라는 요구다. 이렇게 지불된 돈은 한공협이 향후 법정단체로 승격됐을 때 회원들에게 전가될 수도 있는 비용이다.
새대한 전직 임원 A씨는 “한공협은 처음 회원가입할 때 가입비로 100만원을 받았었고, 공인중개사가 협회를 통하지 않고 서울보증보험에 공제가입을 하면 연간 9만원만 내면 되는 돈을 18만5000원이나 받았었다”면서 “새대한이 만들어진 뒤에야 한공협이 가입비를 50만원으로 낮췄는데 향후 단일법정단체가 되면 회원들에게 어떤 부담을 전가할지 누가 알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한공협은 회원이 7만7000명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가입하고 한 번 내지 두 번 정도 연회비를 납부한 회원을 다 포함한 인원이고, 정기적으로 연회비를 납부하는 회원은 3만명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양쪽 어디에도 가입하지 않은 개업공인중개사도 3만명이나 있다”고 덧붙였다. 새대한 회원은 현재 1만2000여명 수준이다.
■ 프롭테크 “제2의 로톡사태 일어날 것”
직방, 다방 등 부동산 플랫폼을 운영하는 ‘프롭테크(부동산과 정보기술의 합성어)’ 기업들도 이번 개정법률안이 ‘제2의 로톡’사태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개정안에 담긴 회원징계 권한 등을 이용해 프롭테크를 통해 중개영업을 하는 중개업자들을 처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프롭테크업체들은 의견서를 통해 “한공협 역시 부동산 플랫폼 ‘한방’을 운영하는 사업자로, 특정 사업자가 공인중개사에 대한 지도관리 및 행정처분, 부동산교란행위 단속 권한을 가지는 것 자체가 반시장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한공협은 그동안 네이버 부동산, 직방, 다원중개, 우대빵, 집토스, 홈스퀘어, 트러스트 부동산, 청집사 등 여러 프롭테크 업체들을 잇따라 고소·고발하면서 갈등을 빚어왔다.
한공협은 2019년부터 3차례에 걸쳐 ‘다원중개’를 공인중개사법 위반혐의로 고소했으나 검찰은 전부 혐의 없음 불기소 처분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직방이 3D매물 중개 등 간접 중개서비스를 시작하자 ‘대형 부동산 플랫폼의 중개업 진출 결사 반대’ 성명서를 낸 바 있다.
한국프롭테크포럼은 지난 26일 긴급 간담회를 열고 “특정 이익 단체의 독점화에 따라 공정경제 기반이 훼손되고, 프롭테크 신산업이 위축되며 소비자 편익 침해 등 부작용이 유발될 수 있다”면서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한공협이 그동안 프롭테크 기업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이어가고, 중개사들의 프롭테크 중개 플랫폼 사용을 막기 위해 압력을 행사해온 점을 고려했을 때 법정단체가 됐을 경우 더 큰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공협은 이 같은 우려를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이종혁 한공협 회장은 같은 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법정단체 추진의 근본 취지는 시장 교란 행위를 예방해 국민 피해를 막자는 것이지 플랫폼 영업활동과는 무관하다”면서 “협회와 플랫폼 업체는 상생·협력해야 할 동반자 관계”라고 말했다. 이어 “여러 프롭테크 업체에서 법안을 ‘제2의 타다 금지법’ ‘직방 죽이기’라고 하지만 절대 아니다”라며 “중개업계와 프롭테크 업체가 함께 부동산 중개시장 발전위원회를 구성해 상생할 수 있는 안을 찾고자 한다”고 밝혔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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