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늙어갈 수 있을까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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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걸 끊임없이 배우는 할머니, 안 괴팍하고 친절한 할머니, 술짱 친구짱 할머니, 멋대로 살지만 그럭저럭 호감인 할머니, 바다 수영을 잘하는 할머니, 솔직하고 용감한 할머니, 배우고 성장하는 호기심 많은 할머니, 잘 돌봄 받고 돌보는 할머니, 좋아하는 일에 대해 다양한 세대와 소통하는 할머니, 웃길 수 있는 할머니, 친구랑 옆집 살며 고양이 키우는 할머니, 가난해도 떳떳하고 행복한 할머니, 소설 쓰는 할머니, 록페 즐기는 할머니, 여전히 처음 해 보는 것들에 도전하는 할머니, 혼카페를 즐기는 할머니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 새삼 이 답변 하나하나를 다시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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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트라우마가 걱정되니 영상 보도나 뉴스를 반복해서 보지 말라는 경고도 있었지만, 이 시간까지 뉴스 보기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어이없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생겨버려서다.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어서다. 참담하다는 말도 비통하다는 말도 너무나 부족하다. 어떤 위로나 애도의 말도 적합하지 않다고 느낀다. 믿을 만한 단체가 낸 성명서에 가까스로 기대어, 고인과 유가족과 고인을 아끼고 사랑한 이들의 슬픔에 깊이 고개 숙일 뿐이다.
이태원 참사가 난 날은 우리 지역의 1인 가구 여성 청년들과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북토크를 하고 온 날이다. 잠들기 전까지 북토크 때 나눴던 이야기를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참사 소식을 들은 거다. 믿을 수가 없어 뉴스를 보고 또 보았다. 북토크에 함께 자리했던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 무사히 할머니가 되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살해당하고, 일하다 기계에 끼어 죽고, 해방의 시간을 맛보겠다고 나선 곳에서 질식해 죽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히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고 해도 이렇게 억울한 죽음이 만연하다니, 도대체 우리 사회는 어떤 해명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으신가요, 미리 제시된 질문에 그들은 다양하고 신선한 답변을 들려주었다. 좋아하는 걸 끊임없이 배우는 할머니, 안 괴팍하고 친절한 할머니, 술짱 친구짱 할머니, 멋대로 살지만 그럭저럭 호감인 할머니, 바다 수영을 잘하는 할머니, 솔직하고 용감한 할머니, 배우고 성장하는 호기심 많은 할머니, 잘 돌봄 받고 돌보는 할머니, 좋아하는 일에 대해 다양한 세대와 소통하는 할머니, 웃길 수 있는 할머니, 친구랑 옆집 살며 고양이 키우는 할머니, 가난해도 떳떳하고 행복한 할머니, 소설 쓰는 할머니, 록페 즐기는 할머니, 여전히 처음 해 보는 것들에 도전하는 할머니, 혼카페를 즐기는 할머니…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 새삼 이 답변 하나하나를 다시 들여다본다. 희생된 사람들도 이렇게 자기만의 미래를 꿈꾸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내게 속삭이듯 들려준 적이 있는 것처럼, 그들이 품었을 그 미래 하나하나가 아프도록 소중하다. 오롯이 기억하고 싶다. 무엇보다 올바르게 기억하는 방법을 제대로 찾아내야 할 것이다. 우선은 말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말 아닌 말을 주장하는 이들의 그 말 아닌 말을 채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고…, 그래서 그것을 통상과 달리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또 어제 잘 아시다시피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여러 가지 소요와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긴급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행안부 이상민 장관이 한 말이다. "잘 아시다시피"라니. 그가 아는 사실과 국민이 아는 사실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 외에도, 154명의 원통한 죽음을 앞에 두고 행안부 장관이 하는 말이 이게 다라니! 상시적 재난의 사회에 살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 사회에서 무사히 늙어가기란 점점 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가 되고 있다. 무사히 늙어가고 싶은 사람들의 말이 되는 말과 행동이 귀하다.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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