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닦이·선반공 출신 대통령…재선 퇴임 전 지지율 87%

정원식 기자 2022. 10. 3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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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투쟁 이끌고 정계 진출
재임 때 중산층 53%로 늘려
퇴임 후 측근 비리 등 기소
무효 판결로 기사회생 재기

지난 30일(현지시간) 치러진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해 브라질 사상 첫 3선 대통령을 예약해 놓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당선인(77)의 삶은 숱한 도전과 극복의 연속으로 채워진 한 편의 드라마다.

룰라 당선인은 1945년 브라질 북동부 페르남부쿠주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7세 때 땅콩 장사와 구두닦이 일을 시작했고 14세 때부터는 한 금속업체에서 선반공으로 일하다가 왼쪽 새끼손가락 일부를 잃었다.

룰라 당선인은 첫 아내를 결혼 2년 만인 1971년 산업재해성 질병으로 잃은 뒤 노동조합 활동에 투신했다. 그는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여러 차례 파업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주목받았다. 특히 1980년 상파울루시 인근 3개 지역 노조가 참여한 사상 최대 규모의 파업을 주도하면서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다.

룰라 당선인은 1980년 초 노동자당(PT)을 창당해 1989년, 1994년, 1998년 세 차례 대선에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2002년 대선에서 기업인 출신 조카를 부통령 후보로 영입하는 등 ‘강성 좌파’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절치부심한 끝에 당선됐다. 2006년에는 재선에 성공했다.

두 차례 대통령 재임 기간 중 브라질 경제성장률은 2.7%에서 7.5%로 올랐다. 중산층 인구는 전체의 42%에서 53%로 늘었고, 35%였던 빈곤층 규모는 저소득층 가정에 생계비와 교육비를 지급하는 복지 프로그램 ‘보우사 파밀리아’를 통해 2009년 22.6%로 줄었다. 두 번째 임기 종료 직전인 2010년 12월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87%에 달했다.

그러나 그의 퇴임 후 측근들이 비리에 얽히고 그 자신도 뇌물수수·돈세탁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그의 성과는 빛이 바랬다. 2018년 연방대법원 판결로 그해 대선 후보 자격을 박탈당하면서 그의 정치 생명도 끝난 듯했다.

룰라 당선인은 2심 재판 유죄 판결만으로 피고인을 수감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수감 580일 만인 2019년 석방됐다. 이어 대법원이 지난해 3월 1·2심 무효 판결을 내놓으면서 기사회생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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