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리건 탓’했던 영국의 반면교사…“사과와 투명한 정보 공개를”

1989년 힐즈버러 축구 참사
20여년 뒤 ‘국가 책임’ 결론
피해자에 책임 돌리기보단
구조적 원인 찾기 집중해야

영국 리버풀에 있는 힐즈버러 참사 추모비. 위키미디어 커먼스

지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인근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를 두고 일부 누리꾼들은 ‘이태원에 간 게 잘못’이라며 피해자들을 비난하고 있다. 이를 두고 1989년 영국 셰필드의 힐즈버러 경기장에서 벌어진 압사 사고 때 책임을 훌리건(극렬 축구팬)에게 돌렸다가 20여년간의 조사 끝에 국가 책임을 밝혀낸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사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기보다는 구조적 원인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2016년 ‘안전사회 실현과제 보고서’에서 힐즈버러 참사를 분석했다. 이 참사는 1989년 4월15일 영국 셰필드의 힐즈버러 경기장에서 열린 축구경기에서 리버풀 팬 96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경기장 입장 터널과 테라스에 너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참사가 발생했다.

참사 직후 경찰의 미숙한 입장 관리와 구조 대응이 논란이 됐지만, 초점은 금세 술에 취한 훌리건 관중으로 쏠렸다. 훌리건 난동을 비판하는 여론이 일었고, 1991년 3월 조사위원회는 이 압사 사고를 단순 사고사로 결론내렸다.

유가족들의 끊임없는 요구 끝에 2010년 새 조사위원회가 재조사를 하면서 이 결론이 바뀌게 된다. 새 조사위는 군중의 통제와 관리, 안전의 관계에 초점을 뒀다.

새 조사위는 경기장 회전식 개찰구의 구조적 결함과 그에 따른 위험을 꾸준히 지적받고도 사고 당시까지 개선하지 않은 점, 1981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해 지방 경찰과 시가 개선책을 제시했으나 반영되지 않은 점을 짚어냈다. 경찰이 대규모 사상자 발생을 늦게 인지하고 주요 계획을 정확하게 이행하지 못한 사실도 지적했다. 한마디로 ‘지도력의 실패와 응급구조의 공조 실패’라는 게 새 조사위의 결론이었다.

힐즈버러 참사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지원 변호사는 31일 “피해자들이 무질서하고 술에 취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는 제도 개선의 가능성을 막고 유가족들의 억울함과 불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지양해야 한다”며 “경찰과 용산구가 안전회의를 했는지 등에 관한 정보를 조기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조사해야 유가족과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상은 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은 정부가 참사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는 게 치유의 시작이라고 했다. 박 전 조사관은 “한국 사회는 재난이 일어나면 여러 책임자들이 남에게 책임을 돌리는데, 이번 사건에서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발언 등) 경찰 책임이 아니라고 밀어내고 있다”며 “그런 방어적 반응은 피해자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 ‘어떻게 했으면 우리가 이 사고를 안 일어나게 할 수 있었을까’의 관점에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혜리·김송이 기자 lh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