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떠난 것처럼 공허” “피해자들 잘못 아님을 말해주고파”

윤기은·권정혁 기자 2022. 10. 31.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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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추모 발길
눈물 흘리는 시민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서울광장에서 31일 조문을 마친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문재원 기자 mjw@kyunghyang.com
전국 곳곳 합동분향소 마련
참사 전 현장 빠져나온 학생
잠 못 이루다 서울광장 찾아
세월호 유족도 이태원 방문
“같은 아픔 겪은 아빠로 비통”

“제 친구가 하늘나라에 간 것처럼 공허해요.” 신지아양(18)은 3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대입 수시에 합격한 신양은 사고 당일인 지난 29일 친구들과 함께 이태원의 한 식당에 갔다. 사고가 발생한 골목 인근을 거닐기도 했다. 신양이 이태원을 빠져나온 것은 오후 10시쯤이다. 사고가 발생하기 불과 10여분 전이었다.

신양은 지난 이틀 동안 네 시간밖에 못 잤다.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경기 시흥시에서 분향소까지 온 신양은 “희생자들이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참사 발생 이틀이 지난 이날 서울광장과 이태원광장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민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다. 시민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분향소를 방문해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과잠’(대학교 학과 점퍼) 차림으로 분향소를 찾은 김모씨(21)는 10여분간 광장에 서 있었다. 키가 150㎝인 김씨도 인파에 몸이 짓눌리는 경험을 종종 겪었다고 했다. 김씨는 “내게도 같은 일이 일어났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무서웠다”며 “피해자들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외국인들도 분향소를 찾았다. 스페인에서 온 교환학생 로리나 토레스(20)는 사고 후 메신저 단체방에 다른 학생 사진과 함께 ‘이 사람을 봤냐’는 메시지가 연신 올라왔다고 했다. 그는 “사고 당시 구급차 앞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대학은 휴강하지 않고 ‘없었던 일처럼’ 수업을 그대로 했다”며 “한국 사회가 생각보다 차갑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사고 발생 지점 인근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과 녹사평역 이태원광장에도 추모객들이 몰렸다.

이날 녹사평역 합동분향소에는 문을 열기 40분 전인 오전 9시50분부터 시민 10여명이 도착해 있었다. “희생자 중 지인이 있다”는 한 여성은 맥주 한 병과 장미꽃 한 송이를 부스 한쪽에 두더니 이내 길바닥에 쓰러졌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는 꽃다발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편지와 소주병, 맥주캔 등도 놓여 있었다. 편지에는 “더 많이 즐기고 더 꿈을 꾸고 더 사랑해야 하는데 미안합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더 맘껏 더 자유롭게 평화를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이번 사고는 명백한 인재입니다. 다시는 이런 슬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남아서 심폐소생술이라도 했어야 하는 건데….” 이태원역 1번 출구 쪽 바닥에 놓인 꽃다발을 바라보던 육군 상병 김모씨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사고 당일 오후 10시15분 이태원에서 강남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는 그는 사람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렸다며 인터뷰 내내 흐느꼈다.

세월호 참사 유족 30명도 오후 3시 이태원에 차려진 분향소를 찾아 고인들의 넋을 기렸다.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같은 아픔을 먼저 겪은 아빠로서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며 “이번 참사는 막을 수 없는 사고가 아니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된 상황에서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 대비하면 막을 수 있던 인재”라고 말했다.

전국 각지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는 시민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아,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자.” 전남 무안군 삼향읍 전남도청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은 방명록에 애절한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분향소를 지키던 관계자들은 “이태원 참사로 친구를 잃은 한 시민이 한참을 흐느끼다가 이런 마지막 인사를 적었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부터 전남도청과 도의회 사이 만남의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공무원과 시민들의 발길이 계속됐다. 전북도청에 설치된 합동분향소도 이날 오후 2시부터 조문객을 받기 시작했다. 조문을 기다리던 송영미씨(55)는 “세월호 참사 때도 이런 원시적인 재난은 더 이상 나와선 안 된다는 국민들의 절규가 있었는데 이번에 또 황당한 참변이 발생해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윤기은·권정혁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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