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좌파 대부’ 룰라가 돌아왔다
현직 보우소나루 ‘승복’ 여부 관심
‘남미 좌파의 대부’로 불리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77·사진)이 퇴임 후 약 12년 만에 대통령직에 복귀하게 됐다. 인구와 면적 모두 중남미 최대인 브라질의 대대적인 정책 변화가 예상된다. 선거에서 패배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67)의 승복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브라질 최고선거법원은 30일(현지시간) 치러진 브라질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노동당(PT) 후보 룰라 전 대통령이 50.9%를 득표해 49.1%를 얻은 자유당(PL) 후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누르고 승리했다고 밝혔다. 룰라 당선인은 2003~2010년 대통령직을 연임했으며, 브라질 역사에서 첫 3선 대통령이 됐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1985년 브라질 민주화 이후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첫 사례가 됐다.
룰라 당선인은 이날 개표 초반 보우소나루 대통령에게 뒤졌으나 개표율 67% 시점에서 역전한 뒤 불과 1.8%포인트 차이로 힘겹게 승리했다. 이는 1989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가장 작은 차이다.
룰라 당선인은 2018년 대선에서도 노동당 후보로 3선에 도전했으나 뇌물수수·돈세탁 혐의로 기소되면서 출마 자격을 박탈당했다. 580일 동안의 수감생활 후 2019년 11월 석방된 그는 지난해 3월 대법원의 1·2심 선고 무효 판결을 받고 세 번째 집권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그는 올해 초 여론조사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10~15%포인트 이상 앞섰으나 1차 투표에서 5.2%포인트 차이로 힘겹게 승리했다.
중남미 제2의 핑크 타이드 ‘정점’…좌파의 성공도 재현될까
브라질 대선, 룰라 당선 확정
“복지 강화·아마존 보호” 기조
사회 통합·경제 침체 돌파구
‘최다 의석’ 야당 상대가 과제
뉴욕타임스는 룰라 전 대통령의 당선은 선거 시스템 등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공격, 아마존 파괴,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실패 등으로 얼룩졌던 극우 보우소나루 정권과 단절하고 브라질이 다시 한 번 좌파적 가치를 향해 선회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내년 1월1일 취임하는 룰라 당선인은 선거 기간 중 극도로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고 팬데믹과 인플레이션으로 침체에 빠진 경제를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는 당선 확정 후 연설에서 “오늘 선거에서 누구에게 표를 주었는가와 별개로 다시 모두가 꿈꿀 수 있고, 그 꿈이 실현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며 통합을 강조했다. 정책적으로는 빈곤층 지원 강화, 부자 증세, 최저임금 인상, 공공지출 강화, 녹색경제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아마존 보호와 관련해선 지난 4년간 전 세계의 우려를 자아낸 불법 벌목과 무분별한 개발을 근절할 방침이다. 그는 “기후위기 대응, 특히 아마존 문제에서 (브라질의) 역할을 다시 맡을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룰라 당선인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로이터통신은 “집권 3기 룰라는 침체된 경제, 빠듯한 예산, 적대적인 의회를 상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일 치러진 연방의회 선거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자유당은 하원에서 기존보다 22석이 늘어난 99석을 차지해 최다 의석 정당 지위를 유지했다. 상원에서도 전체 27석 중 13석을 차지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선거 결과 발표 후 선거 패배 승복 여부를 밝히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전자투표 시스템의 신뢰성을 거듭 공격하며 불복 가능성을 시사해왔다. 이 때문에 선거 전부터 브라질에서는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처럼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폭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
포린어페어스는 보우소나루의 측근들이 브라질에서 가장 큰 3개주 지사로 당선됐고 자유당의 의회 지배력도 커졌다면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지더라도 그의 극우 정치 운동의 미래는 보장돼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퇴임 후 팬데믹 부실 대처 등과 관련해 100여건의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변수다.
룰라의 승리로 중남미 주요 6개국(브라질·멕시코·아르헨티나·콜롬비아·칠레·페루)에 모두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 지역의 두 번째 ‘핑크 타이드’(좌파 물결)는 정점에 달했다. 그러나 원자재 가격 상승과 미국 금리 인하가 맞물렸던 1차 핑크 타이드와 달리 미국 기준금리 인상, 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19에 따른 재정 압박 등 대내외 여건이 불리해 1차 때보다 지속 기간이 짧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일원인 중국과 브라질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중국의 브라질 투자액은 60억달러(약 8조원)로 2017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향후 중남미를 자신들의 ‘뒷마당’으로 여겨온 미국이 룰라의 복귀를 계기로 영향력 확대를 놓고 중국과 치열한 기싸움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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