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만 하는 정부·지자체…미안함은 시민들의 몫

강연주·이성희·강은 기자 2022. 10. 31.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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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파’ 대비 소홀에도 책임 회피에 급급
이상민 장관 발언 비판 확산…‘국민 안전 못 지킨 국가’ 책임론 커져
시민 발길 이어지는 이태원 추모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발생 사흘째인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은 청년과 시민들이 국화꽃 등을 놓으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이태원 핼러윈 참사’ 책임론이 공공 안전을 지키지 못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향하고 있다. “10만 인파”를 거론하며 핼러윈 참석자들에게 책임을 미루거나 “경찰·소방 인력으로 막을 수 없었다”는 식으로 사태를 모면하려는 태도가 성난 여론에 불을 지폈다.

서울 용산구는 ‘이태원 지구촌축제’를 치르면서 “안전 문제가 우려된다”고 수차례 평가했으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행사에는 크게 개입하지 않아 ‘행정참사’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을 지켜야 할 정부가 국가의 기본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31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경찰은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지난 29일 밤 용산구 이태원역 일대에서 시민 통행 안내 등 최소한의 조치만 수행했다. 이태원역 주변에는 안전 지도는커녕 시민들의 차도 진입을 통제하는 인력도 배치되지 않았다.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발간한 매뉴얼은 지역 축제가 열리면 안전요원을 우선 배치하도록 하고 있다.

참사 현장에 배치된 경찰 인력은 기존 계획보다 적었다. 참사 당일 이태원 일대에는 용산경찰서가 기존에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한 경력 200명보다 훨씬 적은 137명만 투입됐다. 그마저도 질서유지보다 마약단속을 노린 사복경찰이 절반 이상이었다. 압사 발생 후 심폐소생술(CPR)을 시행할 때 소방·경찰 인력이 현저히 부족해 시민들이 대거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은 지난 15~16일 이태원 일대에서 열린 ‘지구촌축제’ 때와도 대비된다. 이틀간 열린 축제에는 100만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당시 경찰은 인파가 몰릴 것을 고려해 일정 시간 일부 도로에서 일방통행이 가능하도록 제한 조치를 취했다. 현장에서는 용산구청 직원까지 총 1078명이 나와 교통안내와 안전관리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10여일 뒤 열린 핼러윈 축제는 상황이 달랐다. 용산구 관계자는 31일 통화에서 “그간 관이 주최하는 행사도 아니고 옥외행사로 봤기 때문에 구청이 인파나 이동을 제재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번 핼러윈 축제 안전관리가 미진했다는 지적에 “주최 측이 없는 행사”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참사 원인에 대한 ‘공적 책임’을 부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지자체는 초동조치, 행안부는 관리·감독 책임 있어”

행안부가 주관한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는 대다수 정부 관계자들이 앵무새처럼 “잘 모른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과거에 하던 대로 했는데도 참사가 발생했다’는 경찰 측 태도, ‘경찰이 참사 방지를 위해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취지의 이상민 장관 발언은 ‘국민 안전’이라는 국가의 기본적 책무를 도외시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 한복판에서 3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참사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거나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천재지변이라면 대체 국가의 역할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재난안전관리기본법을 보면 모든 초동조치는 특정 지역의 지리·환경적 특성을 잘 알고 있는 기초지자체가 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경찰의 첫 번째 사명이 공공안녕과 질서유지다. 주최 측 여하를 떠나 인파가 지나치게 몰리면 통행을 정리했어야 했다”며 “이 장관의 발언도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행안부도 참사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강연주·이성희·강은 기자 pla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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