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가면 안돼요" 말린 택시기사…'재난문자' 왜 늦었나

조아라 2022. 10. 3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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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난과 달리 '사회재난'은 별도 사전경보 시스템 없어"
"CCTV와 기지국 정보 활용하면 대규모 인파 감지 가능할 것"
핼러윈 축제가 열린 이태원 일대. / 사진=뉴스1


"이태원은 안 갑니다. 절대 가서는 안 됩니다."

지난 토요일(29일) 밤 인파로 미어터지는 이태원을 간신히 빠져나와 밤 11시45분께 용산역에 도착한 택시기사 A씨는 "이태원으로 가달라"는 여성 승객 2명의 요구에 이같이 말했다. A씨는 "핼러윈 분장을 한 승객 2명이 이태원역으로 데려가 달라고 하더라. 절대 안 된다고 했다"며 "영문을 모르고 황당해해 사람이 많아 위험하니 안 가는 게 좋다고 일러줬다"고 전했다.

A씨는 이태원 대규모 압사 참사 직후인 오후 10시30분께 이태원역 버스정류장 인근에서 여성 승객 한 명을 태웠다. 사고 지점 약 30m 거리에서 택시에 올라탄 이 여성은 숨을 헐떡이며 "빨리 이태원을 벗어나게 해달라. 다시는 (이태원에) 안 간다"고 연신 외쳤다고 한다. 당시 이태원역 1번 출구 해밀턴 호텔앞 도로를 통과하던 A씨는 "토요일 밤 주말이고 핼러윈이라 외국인들까지 인파가 어마어마했고 차도 많았다"며 "이태원을 빠져나가 용산역까지 도착하는 데만 한 시간 넘게걸렸다"고 혀를 내둘렀다.

인파 사고 전조증상…통신사 기지국은 알고 있었다

사진=뉴스1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대규모 인파로 사고가 예상됐던 만큼 이동통신 기지국 정보(CPS) 등을 활용한 재난사고 조기 경보 및 대응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는 최대 13만명(서울교통공사 지하철역 이용 기준)에 달하는 인파가 운집했다. 핼러윈을 앞두고 주말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이태원 일대는 최소 10만명(경찰 추산) 넘는 인구가 몰린 것으로 추정된다. 3년 만에 마스크 없이 핼러윈 축제를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이태원 일대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코스튬'으로 한껏 멋을 낸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당시 이태원에 방문했던 B씨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해골 가면부터 스파이더맨, 배트맨 등 화려하게 꾸민 젊은이들로 가득찼다"고 말했다. 이날 이태원에는 평소보다 5배가량 많은 유동인구가 몰린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스1


KT가 서울시와 함께 제공하는 '서울 실시간 도시데이터'에 따르면 이태원관광특구 일대는 31일 오후 5시30분께 약 1만명이 모여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실시간 도시데이터는 특정 지역 휴대폰 이용자(LTE·5G)들의 휴대폰과 기지국 교신을 5분 단위로 집계한 뒤 이동통신사 시장 점유율을 고려해 보정된 값을 인구 밀집 통계에 반영한다.

이 데이터에 따르면 주중 하루 1만~1만2000명 수준의 인구 밀집도를 보이는 이태원관광특구 일대는 참사 당일 오후 10시께 최대 5만8000명으로 '매우붐빔' 수준을 나타냈다. 실제로 압사 참사는 이날 오후 10시20분께 해당 구역에서 발생했다. 세계음식특화거리로 향하는 해밀톤호텔 인근 좁은 골목에 인파가 들어차면서 대규모 압사 사고로 이어졌다. 사고 이전 기지국 데이터 상으로도 이미 상당한 인파가 감지됐다.

뒤늦은 재난문자?…"사회재난 사전 알림은 어려워"

사진=뉴스1


전문가들은 보행이 어려울 정도로 인파에 갇히면 일단 해당 구역을 빠르게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경사로 같은 지형에서 제 의지대로 걷기 힘들 정도로 휩쓸리면 사고 위험이 커진다. 독일 베를린의 군중행동 연구원 메흐디 무사드는 지난 3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현장에)1m² 당 8~10명이 있었을 것인데 이 정도 밀도에선 숨 쉬기가 어려워 사람들이 기절한다. 상황이 지속되면 사람들이 충분한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 사망에 이른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지, 그들의 이동경로가 어떻게 될지 등을 미리 파악했다면 조금이나마 통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대규모 인파로 사건·사고가 예상됐던 만큼 사전에 기지국 정보(CPS)를 활용한 조기 경보 및 대응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CPS 시스템을 활용해 인구 밀집도를 실시간 파악해 '위험' 수준이 되면 사전에 위험 경보를 보내거나 긴급재난문자 등을 발송하는 방식으로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IT 업계 관계자는 "전국 곳곳에 설치된 CCTV와 CPS 정보를 활용하면 기술적으로 인파를 감지할 수 있다. 사전에 긴급재난문자를 보냈다면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안전디딤돌 앱 캡처


특히 이번 참사 이후에야 발송된 긴급재난문자는 사고 방지에는 큰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안전부 안전디딤돌 애플리케이션(앱)에 따르면 이번 이태원 참사 관련 최초의 긴급재난문자(용산구)는 29일 오후 11시55분께 발송됐다. 당시 서울특별시는 '용산구 이태원 해밀턴호텔 앞 긴급사고로 현재 교통통제중. 차량 우회바랍니다'는 내용의 재난문자를 보냈다.

사고 최초 신고 시간인 오후 10시15분에서 무려 한 시간 40분가량 지난 뒤에야 알림이 간 것이다. 이후 사태 수습이 한창이던 자정이 넘어서야 '인명사고 우려로 해당지역 접근자제를 부탁드린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사고 방지보다는 사실상 사고 후 수습을 위한 교통 통제 역할이 컸다. 재난 문자는 참사 이튿날인 지난 30일 오전 4시12분까지 9차례나 이어졌다.

기술적으로 인구 밀집도 예상이 가능한 상황에서 사전경보 시스템이 없다는 게 아쉬운 대목. 이와 관련, 마틴 에이머스 영국 노섬브리아대 교수는 "(대규모 행사가 진행될 때)높은 군중 밀도를 예측하고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관리 프로세스를 마련하지 않는 한 이런 사건은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연합뉴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번 이태원 참사는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재난'으로 분류된다. 재난문자 발송이 늦어진 데는 이 영향도 있었다.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에 따라 자연재난과 달리 사회재난은 별도의 사전 경보 시스템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행안부 관계자는 "태풍 등 기상특보는 예보가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미리 알고 재난문자를 보낼 수 있다. 이번 이태원 참사의 경우 미처 예측을 못해 재난문자 발송이 어려웠다"며 "참사 이후 용산구와 인접 지역 시민들이 재난문자를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지국 교신 문제로 경계지점에 있을 경우엔 받을 수도 있고 못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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