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기댈 곳 돼주고파” 보호종료아동 위해 선배들이 차린 카페

조윤화 기자 2022. 10. 31.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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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요일 출근길은 어쩐지 평소보다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바로 무엇을 취재할지 선정하는 아이템 회의가 있기 때문이에요. 나름 자신감을 가지고 들고 간 주제도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질문에 탈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 이번 주 와이라노는 라노의 무수한 실패담 중 하나를 꺼내보며 시작해 볼까 합니다.

지난 8월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죠. 광주 소재 한 대학에서 보육원 출신 새내기 대학생이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라는 쪽지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보육원을 나오며 받은 자립정착금 대부분은 등록금·기숙사비에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은 시설을 나오면서 500만~1000만 원의 자립정착금과 5년간 월 35만 원의 자립지원수당을 받는데요. 사고 소식이 알려진 이후 정치권에선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지난 7일 열린 부산시의회 임시회에선 전국 7대 특광역시 중 부산의 자립정착금 지급액이 꼴찌라는 사실이 알려졌는데요.

지난 1일 이진희(30). 박진솔(29), 구한영(29)씨는 금정구 부산도시철도 부산대역 인근에 ‘몽실커피’를 개업했다.


해당 소식들을 접하며, 부산은 유독 자립준비청년들이 살기 힘든 도시가 아닐까?, 이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더욱 두텁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의문이 일었습니다. 그렇게 준비해 간 아이템은 “그렇다면 얼마를, 얼마 동안 지원해야 적당한 것일까?”라는 질문에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하면서 다음을 기약하게 되는데요.

자립준비청년들에 관한 안타까운 소식이 더는 들리지 않으려면, 제도적 지원들이 강화돼야 하는 건 분명한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돼야 할지에 대해선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산대 거리를 걷고 있을 때 어느 한 카페에서 내놓은 입간판이 라노의 발걸음을 멈춰세웠습니다. ‘이 카페는 자립준비청년과 함께합니다.’

몽실커피 앞에 놓여있는 입간판을 바라보고 있는 라노.


질문에 대한 힌트를 이곳에서 얻을 수 있겠단 강한 예감이 들어 2층에 위치한 카페로 향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픈 준비에 한창이던 세 명의 직원들의 시선이 라노에게로 향했습니다. 입간판 얘기부터 시작해 자초지종을 털어놓으며 인터뷰를 요청하니, 흔쾌히 응해줬는데요.

이진희(30). 박진솔(29), 구한영(29)씨는 지난 10월 1일 ‘몽실커피’라는 이름으로 카페를 개업했습니다. 夢(꿈몽) 자와 實(열매실)자를 합쳐, ‘꿈과 소망이 자라 많은 열매를 맺길 바란다’는 뜻을 담았다고 해요. 셋은 같은 보육원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진희 씨와 진솔 씨는 부부 사이. 셋의 인연은 18세 이후 시설을 나오고 난 이후에도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시설 후배들에게 기댈 수 있는 어른이 돼주고자 했단 점이 같았습니다. 원래부터 후배들과 종종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지난해부턴 본격적으로 같은 모임에 속한 사회복지사 친구의 제의를 받아들여 보육원에서 지내는 고등학생과 ‘1대1 멘토링’ 프로그램도 시작했는데요. 함께 영화를 보고, 나들이를 가고, 선배의 집에서 1박2일 함께 지내는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하며 추억이 쌓일수록 후배들은 전보다 더욱 밝아지고, 미래를 더욱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가기 시작했다고. 진희 씨는 “후배들의 변화를 옆에서 지켜보며 ‘멘토링 프로그램을 좀 더 집중적으로 지속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가 하는 활동이 일이되면 좋겠다’고 줄곧 생각했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러던 와중 ‘사회적 기업’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해요. 사회적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영리기업들과 달리 사회적 목적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을 말하는데요.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되기 위해 갖춰야 할 요건과 통과해야 할 관문은 상당하지만,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되면 세제 혜택, 재정 지원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들은 자립준비청년을 돕는 사회적기업을 만들어보겠다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힘을 합치는데요. 원래 가장 처음 생각했던 사업 아이템은 공간대여업이었습니다. 지금껏 멘토링 활동을 해오면서 만나서 교류할 수 있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보육원 상담실을 이용하거나 집에서 만나곤 했기 때문인데요. 그러다 ‘공간에서 계속해서 수익이 날 수 있는 구조였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언제든 마음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몇 가지 조건이 추가되면서 최종적으로 카페를 창업하기로 결심했다고 해요.

이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대부분의 인테리어 공사를 대부분 직접 했다.


카페를 창업하기 까지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육아를 하던 진희 씨와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하던 한영 씨는 바리스타 공부를 시작했고, 택배기사로 일했던 진솔 씨는 각종 디저트를 굽기 시작했습니다. 카페를 차릴 공간도 도무지 찾아지지 않아 기일을 정해놓고, ‘이날까지 안 찾아지면 없던 일로 하자’는 얘기까지 나왔을 시점 겨우 만족스러운 매물을 찾아 계약할 수 있었습니다. 창업 자금도 문제. 다행히 올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창업팀에 선정되면서 4000만 원가량을 확보했는데요. 비용 절감을 위해 인테리어 공사도 웬만하면 직접 다 했다 보니 카페 구석구석 세 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렇게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문을 연 카페는 벌써 많은 후배들이 이곳을 다녀갔습니다. 진솔 씨는 “후배들은 아무래도 자기랑 친하게 지내던 선배들이 카페를 한다고 하니 신기한가 봐요. 제가 만든 타르트를 먹고 ‘정말 형이 만든 거 맞냐고, 어디 납품받은 거 아니냐고’ 놀리기도 하고 다들 좋아하죠”라고 말했어요.

매달 네 번째 주 토요일은 쉬어가는 날. 이 날 만큼은 하루 종일 시간을 비워놓고 후배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내부에서 약간의 언쟁도 있었다고. 아무래도 주말은 카페 대목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다시 합치게 한 질문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일을 지금껏 벌여왔느냐는 것’. 한영 씨는 “여러 갈등 상황에 놓일 때마다, 애초 이 일의 본질이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닌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는 걸 셋이서 되새기고 그걸 기준 삼아 모든 결정을 내리려고 했습니다”라고 설명했어요.

진희, 진솔, 한영씨는 시설을 나오고난 이후에도 꾸준히 후배들과 시간을 함께보낸다. 이들은 후배들에게 힘들 때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어른의 존재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


대화가 여기까지 이르고 나니,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보육원 출신이라고 해서 후배들에게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줘야 하는 ‘의무’는 없음에도 후배들을 위한 활동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진희 씨는 말했습니다. “제가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무언가 베풀 수 있을 때, 그게 진정한 자립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제 경우는 아이를 키우다 보니까 아이들이 자라면서 당연히 받아야 되는 것들을 보육원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못 받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와요. 후배들에게 많은 경험을 시켜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뭐든 더 해주고 싶은 거죠”.

이들은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계속해서 강조했어요. “경제적 지원 중요하죠. 하지만 그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애는 10% 채 될까 말까예요. 시설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내던 아이들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몇 백만 원 돈 들고 나오면 나쁜 손길들이 정말 많이 뻗쳐요. 제대로 써보기도 전에 사기당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시설에 있을 때부터 자립정착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관한 교육을 내부적으로 진행하기도 하지만, 어릴 적부터 형식적인 교육을 반복적으로 받는 탓에 진지하게 듣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고.

한영 씨는 아이들이 아직 시설에 있을 때 약 한 달간 홀로 생활해 보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거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지금도 일부 시설에선 일주일간 시설 밖에서 생활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지만, 7일은 시설을 졸업하고 난 뒤의 일상을 미리 그려보기엔 너무 짧으니까요.

멘토링 프로그램 진행 당시 찍은 사진을 넣어 만든 달력. 달력 밑에 문구는 세명이 고심해 직접 골랐다.


몽실커피는 부산지역 최초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이제 막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세 명의 창업가의 바람처럼 후배들이 언제든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공간으로 지속 가능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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