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태원 참사, 국가 책임 분명히 하는 게 진정한 애도
307명의 사상자를 낸 이태원 참사의 슬픔이 온 나라를 덮고 있다. 사고 사흘째인 31일 전국 17개 시·도 합동분향소엔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장례·치료 지원이 시작됐고, 지자체들은 인파가 몰리는 행사 특별점검에 나섰다. 국가적으로 사태를 수습하고 위로·치유하는 시간을 맞고 있다. 그러나 서울 한복판에서 155명이나 죽은 사고 후에도 누구 하나 사과하는 사람이 없다. 애도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지고 있다.
말 그대로 ‘행정 참사’였다. 관할 용산구는 안전관리 계획을 세우지 않고, 경찰·소방당국에 도로 통제나 보행동선 관리를 요청하지 않았다. 서울시도 특별대책은커녕 상황실도 운영하지 않았다. 137명만 사고 현장에 배치한 경찰은 마약·풍기 단속을 하는 사복경찰이 더 많았다. 행정안전부는 주최자가 없어 재난안전법을 적용받는 축제가 아니라고 한발 떨어져 있었다. 원래 인파가 몰리는 행사이고 행정지원 요청도 없었다며 모두 손놓은 것이다. 전날부터 인산인해를 이룬 3년 만의 핼러윈 축제 현장에 책임 있는 당국자 한 명만이라도 나와 안전 문제를 짚었더라면 막을 수 있던 ‘인재’였다. 탁상행정 사각지대에서 터진 사고인데도 중앙·지방 정부는 책임회피에 급급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슬픔과 책임감만 언급할 뿐, 국정 책임자로서 사과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용산구청장은 “영혼 없는 사과”를 하지 않겠다며 일방적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닫아버렸다.
‘돈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운 세월호 사고가 터진 지 8년이 됐다. 그런데도 행정·교육 당국은 이태원이 ‘위험 취약지역’이 될 수 있다고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 폭우로 반지하 참변이 잇따랐고, 중대재해도 속출하고 있다. 안전불감증이 부른 뼈아픈 역사를 잊고 우발적 사고로 보려는 나라엔 미래가 없다.
시민들은 이태원 참사의 위험을 일상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 떠밀리듯 오르내리는 지하철 환승역 계단이 그렇고, 거대한 인파가 몰리는 공연장도 아슬아슬하다. 용산구가 2019년 작성한 ‘이태원 지구촌 축제’ 개선 방안으로 보행 불편·안전 문제가 첫번째로 꼽혔다고 한다. 2020년 서울연구원은 신종·대형 도시재난에 ‘압사 사고’를 포함시켰다. 군중의 압사가 더 이상 후진국형 사고가 아닌 걸 알고도 대처하지 못한 셈이다.
이번 참사 희생자는 중·고생도 6명 있고, 1020세대가 다수다. 또다시 사고로 세상을 뜬 어린 꽃들에게 기성세대는 뭐라 할 건가. 시민은 안전한 나라에서 살 권리가 있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행정은 없어야 한다. 참사 진상과 책임소재를 명확히 가리고, ‘군중의 안전 통제’ 법·매뉴얼을 시급히 재정립해야 한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지금은 추궁할 시간이 아니라 애도할 시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공공의 책임과 시민들의 문제제기를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진정한 애도는 국가의 존재이유와 책임을 분명히 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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