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으로 돌아온 룰라, 중남미 ‘핑크 타이드’ 완성
“나 아닌 민주주의가 승리한 것”
브라질 현대사에서 가장 번영하는 시기를 이끌었던 룰라가 다시 대통령으로 복귀한다.
브라질 선거관리위원회는 30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77)가 50.9%를 얻어 49.1%를 득표한 자이르 보우소나루(67) 대통령을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승리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2003~2010년 4년 임기 대통령을 두차례 역임했던 룰라가 2023년 1월 다시 남미의 대국 브라질의 대통령으로 복귀하게 됐다. 룰라는 당선이 확정된 뒤 “오늘의 유일한 승자는 브라질 국민”이라며 “나와 노동자당의 승리가 아니라 정당, 개인적 이익, 이념을 넘어 형성된 민주운동의 승리다. 민주주의가 승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남미 진보좌파 정치인의 선두 주자였던 룰라의 복귀로 멕시코에서부터 아르헨티나까지 중남미의 주요 국가들에서 모두 진보 좌파가 집권하는 ‘핑크 타이드’가 완성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선거 결과가 확정된 뒤 성명을 내어 “자유롭고, 공정하고, 신뢰할 만한 선거”로 룰라가 당선됐다며 축하했다.
룰라는 개표 초반 보우소나루에게 뒤졌지만, 개표율이 60% 후반대로 접어들며 역전에 성공한 뒤 표차를 조금씩 넓혀갔다. 애초 여론조사에선 룰라가 10%포인트 이상 차이로 낙승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초접전 승부가 벌어졌다. 결선투표 득표율 1.8%포인트 차이는 브라질 대선 사상 최소 표차다.
이번 선거가 박빙으로 끝난 이유에 대해선 정치 양극화로 인해 보수 유권자들이 강하게 결집했고, 보우소나루가 막판에 빈곤층을 상대로 복지 혜택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한 게 효과가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보여주듯 인구가 밀집한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 등 남부 도심 지역에서 보우소나루의 표가 예상보다 많이 나왔다.
룰라는 이번 선거에서 △빈곤층 지출 확대 △부유층 과세 강화 △최저임금 인상 △한달 소득 950달러(135만원) 이하 소득세 면제 △외국 정부와 관계 재정립 △아마존 유역 채벌 억제 등을 공약했다.
브라질 노동조합을 이끌던 룰라는 퇴임 무렵 지지율이 87%까지 치솟았을 만큼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임기를 마친 2010년엔 2500만명 이상의 국민이 빈곤선에서 탈출했고, 많은 이들이 처음으로 자기 집을 갖게 됐다. 중국발 수요 증가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경제도 호조였다. 재임 중이던 2007년 경제성장률은 6.1%를 기록했다.
하지만 12년 전 ‘마법’이 이번에도 통할지 알 수 없다. 브라질의 내년 경제성장률은 0.6%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또 최대 교역국인 중국 경제가 주춤하면서 원자재 수출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또 호전적인 보수 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의회와 상대해야 하는 등 보우소나루 정부 아래에서 강화된 정치 양극화와 맞서야 한다.
룰라는 퇴임 뒤 검찰이 주도하는 이른바 ‘세차 작전’이라 불린 권력부패 사건에 휘말리며 뇌물 수수 및 돈세탁 혐의를 받고 무려 580일 동안이나 수감됐었다. 하지만 2019년 11월 브라질 대법원은 유죄를 선고한 하급심 재판부가 검찰과 공모해 편향된 판결을 내렸다며, 최종 무죄 판결을 내렸다. 룰라의 후계자였던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 역시 이 소동에 휘말려 두번째 임기 도중이던 2016년 8월 탄핵된 바 있다.
보우소나루는 2019년 1월 집권 이후 △소수자를 향한 혐오 발언 △70만명이 사망한 코로나19 방역 실패 △아마존 열대우림 훼손 등 갖은 논란에 휩싸였다. 부유층 감세와 민영화를 추진해 빈곤층 역시 크게 늘었다. 하지만 ‘브라질의 트럼프’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증오 정치’로 보수의 아이콘을 자처하며 강력한 지지 기반을 구축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도 전자투표의 부정 가능성을 제기하며 선거 결과에 불복할 수 있다는 의사를 거듭 밝힌 바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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