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인사이트] 청정에너지로 가는 길, '수소경제'가 시작된다
[IT동아]
모빌리티(mobility). 최근 몇 년간 많이 들려오는 단어입니다. 한국어로는 '이동성'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동차도 모빌리티, 킥보드도 모빌리티, 심지어 드론도 모빌리티라고 말합니다. 대체 기준이 뭘까요? 무슨 뜻인지조차 헛갈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몇 년간 전 세계에서 큰 성공을 거둔 스타 벤처 중 상당수는 모빌리티 기업이었습니다. '유행어처럼 여기저기에서 쓰이고 있지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어디부터 어디까지 모빌리티라고 부르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통해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다양한 모빌리티 기업과 서비스를 소개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차량호출 서비스부터 아직은 낯선 '마이크로 모빌리티', 'MaaS', 모빌리티 산업의 꽃이라는 '자율주행' 등 국내외 사례 취합 분석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나씩 알려 드립니다.
수소경제, 새로운 시대의 서막
몇 해 전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뉴스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를 뽑으라고 한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친환경’이라고 답하겠습니다. 그만큼 범세계적으로 함께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이 바로 환경문제입니다.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는 오랜 시간 동안 인류의 삶을 편안하고 윤택하게 만들어 주었는데요. 하지만, 화석연료 사용이 크게 늘면서 환경오염 문제가 대두됐고, 지구는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전 세계적으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약 43% 감축해야, 지구의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할 때 1.5도 상승 수준으로 억제할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IPCC는 그만큼 긴급하고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대안으로 친환경 에너지가 주목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친환경 에너지가 필요한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대체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석연료는 유한한 자원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모두 소진됩니다. 에디슨 전력연구소(EEI)는 현재의 소비 추세가 지속되면 2040년에는 석유가 모두 고갈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인류의 과제는 환경을 보호하면서, 고갈될 에너지의 대체재가 될 친환경 에너지를 발굴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느냐 아니냐’의 갈림길이라고 할 만큼 무척 중요하죠. 지금 세계는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수소가 주요 연료가 되는 ‘수소 경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내용인가요?
수소 에너지에 대해 쉽게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전기와 수소의 관계입니다. 전기와 수소를 별개로 보는 사람이 많거든요. 수소자동차는 전기자동차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수소 에너지는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물과 전기에너지를 얻는 것인데요. 수소를 기반으로 전기에너지, 혹은 열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수소를 활용한다면 온실가스 감축, 미세먼지 저감, 대기 정화 등 다양한 부수 효과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포괄적인 관점에서 수소경제는 화석연료가 주원료인 현재 시스템에서 수소가 주 에너지원인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수소를 활용하는 자동차·배·기차나 수소를 통한 전기 발전과 열 생산을 늘리고, 수소를 생산·저장·운송하는 과정에 필요한 산업 및 시장을 새롭게 창출하는 경제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친환경차가 주목을 받고 있지만, 유독 수소전기차의 판매량은 증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연평균 성장률 기준으로는 가장 높은 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절대적인 차량대수를 보면 수소전기차의 비중은 아주 미미한 수준이에요. 지난 7월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2022년 2분기 자동차 누적등록 대수에 따르면, 전체자동차 중 수소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0.09%에 불과하죠.
친환경차 비중은 대체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수소전기차는 그만큼 늘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네요.
수소전기차는 전기차와 비교하면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기차는 빠르게 충전(급속충전)하더라도 약 20분 정도가 소요되고, 1회 충전으로 약 383km(‘22년 테슬라 model3 기준) 주행이 가능합니다. 반면, 수소차 충전은 약 3~5분 정도가 소요되며, 1회 충전으로 609km(‘21년 현대 넥쏘)를 주행할 수 있습니다. 충전 시간과 주행거리만 고려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수소전기차가 친환경자동차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수소전기차가 가장 처음 직면한 질문은 ‘안전성’이었습니다. 수소탱크를 싣고 다니기 때문에 혹시 모를 폭발사고를 걱정하는 운전자들이 있었는데요.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인프라 부분입니다.
전기차 급속충전기를 1대 설치할 경우 약 3500만 원이 들어갑니다. 수소충전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약 30억 원이 필요한데, 무려 85.7배가 차이나는 셈이죠. 우리 정부는 2025년에 약 51만 대까지 전기차 충전기를 늘릴 계획이지만, 2025년까지 도입될 수소충전소는 450기에 불과합니다. 오는 2022년 말까지 310기의 수소충전소를 구축한다는 방침인데요. 현재 국내 등록된 수소전기차가 2만 4119대임을 고려한다면 310기의 수소충전소는 턱없이 부족해 보입니다.
해외에서는 수소충전소 구축을 위해 어떤 노력을 보이고 있나요?
아직 수소전기차는 친환경자동차 산업에서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장점인 장거리 주행 성능 덕분에 상용차 업계에선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운행하는 상용트럭 중 35%가 하루 평균 약 500km 이상을 달린다고 하는데요. 친환경화가 지속되고 있는 자동차 업계에서는 주행거리가 짧은 전기트럭보다는 수소트럭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최근 유럽연합은 수소차 충전소를 공격적으로 늘리는 법안을 의결했습니다. 기존 법안은 2030년까지 유럽 주요 도로에 150km 간격으로 수소 충전소를 의무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했는데, 이 기간을 2027년까지로 단축했습니다. 충전소 간격도 100km로 더욱 좁게 수정했습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유럽 내 위치한 150개의 수소 충전소가 2030년까지 10배 이상 증가해 1500개 이상이 될 전망입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Allied Market Research’은 2025년 전 세계 수소충전소 시장의 가치는 11억 달러(한화 약 1조 5,600억 원)로 평가했고, 이 시장이 매년 약 35.4%로 성장해 2035년에는 220억 달러(한화 약 31조 1,80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미국과 중국 등 모빌리티 선진국도 수소전기차 성장 촉진을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수소전기차가 미래 모빌리티의 성장을 견인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수소전기차 기술이 발전할수록, 수소 충전소에 대한 수요도 커질 것 같습니다. 이에 빠른 대응이 필요할 것 같은데 혹시 수소 충전소 기술을 대표하는 기업이 있을까요?
수소에너지의 미래 가치를 예측하고 수소 충전 시설 사업에 투자를 확대하는 기업이 있는데요. 독일에 본사를 둔 H2Mobility입니다. H2Mobility는 2015년 1월에 석유기업과 가스/설비기업, 자동차 기업 등 6개 기업이 힘을 모아 설립한 범유럽 합작 특수목적법인(SPC)이예요. 독일의 수소충전 인프라 네트워크 확장을 목표로 만들어진 기업입니다. 독일 정부의 강력한 독려와 유럽연합의 수소전지차량 및 인프라 보급 전략인 ‘H2ME(Hydrogen Mobility Europe)’ 프로젝트 지원을 받아 적극적으로 수소 인프라를 확장하고 있어요.
H2Mobility는 수소충전소의 구성 설비를 다섯 가지 단위의 기능 모듈로 구분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튜브 트레일러로 운송된 수소를 수소 충전소 내부에 공급하는 ‘수소저장모듈’, 공급된 수소를 900bar 이상으로 압축해 저장에 적합한 형태로 변환하는 ‘수소압축모듈’, 압축 수소를 중압(400~500bar)~고압(900~1,000bar)으로 저장하는 ‘압축수소저장모듈’, 충전할 때 수소의 온도가 높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저온(-40℃~-33℃)으로 냉각하는 ‘수소냉각모듈’, 마지막으로 수소가스의 압력을 낮추고 차량과 통신하면서 순차적으로 수소를 공급하는 ‘수소충전모듈’입니다.
H2Mobility는 가스가 아니라 액체 형태인 액화수소를 사용하는 것에도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회사의 주요 주주 중 한 곳인 ‘다임러 트럭’은 예전부터 액화수소연료의 적용을 연구해 왔는데, 섭씨 -253도까지 냉각된 액화수소를 사용하는 대형 트럭 ‘GenH2’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액체 형태의 수소는 고압의 기체수소와 달리 대기압에서 저장이 가능해 안전성 측면에서 장점이 있죠. 수소 운송이나 부지 면적, 사용량 등에서 기존 설비를 사용할 수 있고 경제성이 높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수소전기차 강국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하는데 충전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인가요?
201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 규모는 세계 11위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전기차는 8위, 수소차는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친환경자동차 시장 선점의 가능성이 높은 국가 중 하나이죠.
하지만, 수소 충전소 관련 기술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조금은 뒤처진 상황입니다. 특허청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수소 충전소에 관한 세계 주요국의 특허출원은 연평균 15.6%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세계 5대 특허청에 제출된 수소 충전소 기술은 총 1352건으로, 중국이 504건, 일본이 282건, 미국이 257건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한국은 특허청에 제출된 기술이 171건에 불과하고, 관련 기술 특허 출원의 연평균 증가율은 5.5%로 다소 낮은 편입니다. 앞으로 수소 충전소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할 것을 고려할 때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수소 충전소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현대자동차인데요. 현대자동차는 10월 27일 ‘이동형 수소충전소 H 광진 무빙 스테이션 (Moving Station)’ 개소식을 개최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이동형 수소 충전소’인데, 수소자동차 운전자의 편의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 기관, 지자체, 민간 기업이 함께 협업한 결과입니다. 국토교통부는 수소충전 차량 자기인증 특례지원, 환경부는 수소 인프라 구축 인허가 지원, 산업통상자원부는 수소 산업 정책 지원, 서울시와 광진구는 지자체 행정 지원,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수소충전소 안전 검증, 현대차는 이동형 수소충전소의 기획, 투자, 설계 총괄을 담당하죠.
이동형 수소충전소 ‘H 광진 무빙 스테이션’은 25톤 대형 수소트럭 '엑시언트'에 수소압축기, 저장용기, 냉각기, 충전기 등의 수소 충전 핵심 설비를 탑재해, 수소충전소 역할을 수행합니다. 하루에 최대 50대까지 충전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세계 1위의 우리나라 수소전기차 시장처럼 수소 충전소 기술도 함께 성장해 수소 경제 전반을 선도하는 국가로 도약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국내에서도 수소경제의 가능성을 보고 수소충전소 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핵심 모듈에 대한 국산화 노력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아직 선진국 대비 내구성과 신뢰성 측면에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특히, 수소저장모듈이나 수소충전모듈의 일부 부품은 기술을 보유한 국내 업체를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주요 부품에 대한 국산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기체 수소를 계측하는 기술 개발도 필요합니다. 액체 상태의 가솔린이나 디젤, LPG 차량과는 다르게 기체 상태의 수소를 사용하며, 저장 탱크 환경에 따라 밀도가 크게 변화한다는 특징 때문이죠. 충전되는 수소 양을 정확하게 계측하는 것은 연료 비용이나 주행거리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으니, 소비자 신뢰를 얻기 위해서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소충전소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아쉬운 점들을 보완하고 기술을 개발해 나간다면 전 세계에서 한국 기술로 수소를 충전하는 날이 오는 것도 꿈은 아닐 것입니다. 조만간 도로에서 수소경제 시대의 문을 여는 장소, 수소충전소를 자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글 / 한국인사이트연구소 이경현 소장
시장 환경과 기술, 정책, 소비자 측면에서 체계적인 방법론과 경험을 통해 다양한 민간기업과 공공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컨설팅 전문 기업. 최근에서야 핫해진 ‘모빌리티’ 사업의 가능성을 먼저 파악하고 몇 년 전부터 모빌리티 DB 구축 및 고도화, 자동차 서비스 신사업 발굴, 자율주행 자동차 동향 연구 등 모빌리티 산업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연구를 진행해 왔다. 작년에 ‘모빌리티 인사이트 데이’라는 이름으로 전문 콘퍼런스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모빌리티 전문 리서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모빌리티 분야의 정보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웹서비스인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정리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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