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지켜지는 산업안전보건법…‘규정 따로 현실 따로’ 타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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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환경의학전문의인 필자가 몇년 전 열병합발전소에 출장 특수건강진단(납이나 수은 등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에 특화된 건강검진)을 갔을 때 일이다.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206조)에서는 사업주의 의무사항인 특수건강검진의 검사 항목과 실시방법, 대상 등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교육을 강화하고 위험한 업무는 노동자 스스로 거부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위계가 강한 우리나라 사업장 분위기를 고려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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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왜냐면] 김철주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집행위원장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인 필자가 몇년 전 열병합발전소에 출장 특수건강진단(납이나 수은 등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에 특화된 건강검진)을 갔을 때 일이다. 당시 검진물질 선정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폐기물 소각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기계장치룸에서 근무하다 문제점이 발생하거나 재를 수거하러 소각현장으로 내려오는데, 이를 고려하면 포함돼야 할 물질(유해인자)이 검사 항목에서 누락돼 있었다.
관리자를 찾아 시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려 했지만, 하청 사업장이라 관리자를 찾을 수 없었다. 물질 선정을 주도한 작업환경측정기관을 찾아 담당자와 통화를 요청했지만, 나중에 연결해준다더니 끝내 연락은 오지 않았다. 원청기관에도 얘기 해봤으나 안타깝지만 자기 일이 아니라는 태도였다. 실제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시정을 요청해보라고 했지만, 감히 사장님에게 그런 말을 어떻게 하냐는 분위기였다. 최후의 방법으로 근로감독관에게 신고하는 방법까지 고민했지만, 을에 가까운 검진기관 처지인지라 결국 사업장 사후보고서에 기록을 남겨 시정을 권고하는 식으로 마무리했다.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206조)에서는 사업주의 의무사항인 특수건강검진의 검사 항목과 실시방법, 대상 등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또 노동부 예규인 근로자건강진단 관리규정(3조 2항)에서는 검사항목 누락과 관련해 지방고용노동청장이 필요한 조처를 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적절하게 특수건강진단이 진행되고 있는지 감독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법규 미비가 문제가 아니라, 법규대로 적용, 집행되지 않는 게 문제인 셈이다.
지난 15일 파리바게뜨 공장에서 23살 노동자가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에 끼여 숨졌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이런 사고사망을 막기 위한 조치들이 여럿 나열돼 있다. 노동자의 신체적 피로를 줄이는 작업환경을 만들어야 하고(제5조 2항), 안전보건교육을 해야 하며(제29조), 공정안전보고서도 작성 제출해야(제44조) 한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혼합기에 덮개를 설치하도록 한 규정(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규칙’ 87조 8항)도 마찬가지다.
결국 노동자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이유도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다. 대다수 근로감독관은 임금체불 업무에 매달리고, 안전관리자의 의견은 업무 효율을 강조하는 목소리에 밀리고, 노조를 통한 문제제기도 어렵다.(조직률은 10%대에 불과하다) 산업안전보건교육을 강화하고 위험한 업무는 노동자 스스로 거부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위계가 강한 우리나라 사업장 분위기를 고려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런 현실에서 많은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은 어떻게 하면 사업장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이 지켜질 수 있을지 오랜 기간 고민하고 토론했다. 그 결과 사업주가 법을 준수하도록 노력하게 하고 만약 이를 어겨 사고가 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무려 20년에 걸친 논의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법이 제정됐지만, 최근에 완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기본에만 충실했으면 막을 수 있었을 원시적인 사고를 경험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절대 완화하거나 폐지돼서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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