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의혹 딛고 세번째 집권 ‘화려한 부활’…남미좌파 대부 룰라는

이병훈 2022. 10. 3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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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중퇴 학력의 금속공장 노동자가 브라질 역사상 첫 3선 대통령으로 우뚝 섰다.

14세에 선반공으로 취직하면서 본격적인 노동자의 길로 들어섰다.

26세에는 같은 공장에서 만난 첫 부인이 임신한 채로 간염에 걸려 뱃속 아기와 함께 사망했다.

룰라는 재임시절 뇌물수수와 돈세탁 혐의로 1·2심에서 징역형을 받고 2018년 수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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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닦이·노동운동 등 파란만장
2002년 3전4기 끝 대통령 당선
2006년 재선… 집권 중 경제도약
물러날 당시 지지율 80% ‘인기’
초등학교 중퇴 학력의 금속공장 노동자가 브라질 역사상 첫 3선 대통령으로 우뚝 섰다. 중남미 좌파의 대부로 불리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당선인의 생애는 파란만장한 드라마 같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전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상파울루에서 대선 결선 투표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근소한 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AP뉴시스
룰라는 1945년 10월27일 가난한 농부의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궁핍한 가정환경에 7세 때부터 땅콩 장사와 구두닦이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찢어지는 가난에 학업은 사치였다. 10살 때까지 글을 깨우치지 못했고, 초등학교도 그만둬야 했다.

14세에 선반공으로 취직하면서 본격적인 노동자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잇따른 비극을 겪었다. 19세 때 프레스 기기에 눌려 왼쪽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26세에는 같은 공장에서 만난 첫 부인이 임신한 채로 간염에 걸려 뱃속 아기와 함께 사망했다.

이는 룰라가 노동운동에 뛰어드는 계기가 됐다. 금속노조 대의원 등을 거쳐 1975년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당선됐다. 잇따른 파업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개혁성향 지도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0년 좌파 지식인 등을 규합해 브라질 노동자당(PT)을 창당하고, 1986년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원내에 진출했다. 이후 대권의 꿈을 꾸며 1989년, 1994년, 1998년 세 차례 대선에 도전했지만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2002년 대선에서 3전 4기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당선증을 받고 “내 인생 첫 증서”라며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이 주목받기도 했다. 룰라 정부는 빈곤층 해소를 위한 분배 정책을 펼치며 호응을 얻었고, 2006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집권 기간 연평균 4%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브라질의 성장을 일궈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날 당시 지지율은 80%대에 달할 정도였다.

비리 의혹은 룰라의 성공 신화에 흠결이 됐다. 룰라는 재임시절 뇌물수수와 돈세탁 혐의로 1·2심에서 징역형을 받고 2018년 수감됐다. 지난해 초 대법원이 기존 유죄판결을 무효화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병훈 기자 bh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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