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바로크 시대 걸작들 만나 … 서울에 온 유럽미술관

김신성 2022. 10. 3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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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합스부르크 600년展'
韓·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 기념전
15∼20세기 초까지 유럽 패권 장악한
합스부르크왕가 모은 예술품들 전시
루벤스·벨라스케스作 등 96점 만나
마리 앙투아네트 그림 앞 셀카 명소
고종이 준 조선 갑옷과 투구도 눈길

온몸에 중세 유럽의 갑옷을 착용한 채 재빨리 바닥에 쭈욱 엎드렸다가 단번에 벌떡 일어날 수 있을까.

그렇다. 혼자서도 제법 수월하게 해낼 수 있다. 심지어 앞구르기, 팔굽혀펴기, 팔 벌려 뛰기, 한쪽 무릎 꿇고 팔꿈치 올려 예 갖추기 등 모든 행동을 유연하게 할 수 있다. 흉부, 어깨, 팔, 팔꿈치, 팔뚝, 팔목, 손등, 허리, 치마, 다리, 무릎, 정강이, 발등덮개, 투구 등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르브룅이 그린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앙투아네트의 패션 감각을 펼쳐 보인다.
당시 갑옷은 남성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값비싼 물건 중 하나였다. 전쟁에서 신체를 보호하는 기능뿐 아니라 정치권력과 귀족 신분 이상이라는 사회 지위를 나타내기도 했다. 통치자는 대관식이나 결혼식, 제국의회 등 특정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종종 갑옷을 입었다.

갑옷이 빛을 발한 때는 사실 전투보다 마상시합이다. 종목에 따라 특화된 부분이 필요해 부품을 조립 제작하는 방식으로 갑옷을 만들었다. 부품의 수가 많을수록 비싸고 기능이 다양해서 더 높은 신분의 갑옷으로 여겼다. 가늘지만 질긴 줄로 묶거나 혁대처럼 구멍이 뚫린 가죽끈으로 몸에 맞게 조여서 입었다.

막시밀리안 1세는 마상시합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형식을 갖춘 황제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갑옷 장인 로렌츠 헬름슈미트가 그의 갑옷을 만들었다. 1470년부터 합스부르크 가문을 위해 일한 그는 1491년 황실갑옷장이 되었고, 그의 아들 콜만도 황제 카를 5세의 사랑을 받았다. 손자 데시데리우스 또한 황제 페르디난트 1세와 스페인국왕 펠리페 2세 등의 갑옷을 제작했다.
중세 유럽의 갑옷은 권력과 사회 지위를 나타냈다. 울리히 공작의 ‘세로 홈 장식 갑옷’은 빛을 반사하여 표면이 더욱 번쩍거렸다.
울리히 공작이 입었던 ‘세로 홈 장식 갑옷’은 그 시절 유행하던 주름장식을 모방한 것이다. 홈 장식은 빛을 반사하여 표면을 더욱 번쩍거리게 한다. 또 구조적으로 갑옷의 강도를 높임으로써 보호기능을 강화했다. 그의 투구는 축제의 가면극 영향을 받아 표정이 있는 형태다.

이들의 갑옷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직접 볼 수 있다.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이 열리고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한 1273년부터 1918년 왕정이 몰락한 카를 1세 때까지 645년 동안 유럽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총 96점의 걸작들이 관객을 반긴다. 르네상스와 루벤스, 벨라스케스, 반 다이크 등 걸출한 화가들이 포진한 바로크 시기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15세기 막시밀리안 1세부터 20세기 초까지 황제나 대공 등 주요 수집가들의 역할을 시대별로 구분해 살펴본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프라하, 브뤼셀, 스페인 전역 등 유럽 각지에서 수집한 예술품을 수도 빈으로 옮겨놓았다. 600년에 걸쳐 모은 예술품들이 빈미술사박물관으로 집대성되는 과정을 조명한다.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에서는 이야기의 극적인 순간을 포착해 그리는 루벤스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루벤스가 그린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는 이야기의 극적인 순간을 포착해 그리는 바로크 미술의 특징을 제대로 드러낸다.

주피터와 머큐리가 신분을 숨기고 작은 마을을 방문했지만 집집마다 문전박대를 당한다. 노부부 필레몬과 바우키스만이 누추한 집에서 그들을 대접했다. 소박하지만 포도, 견과류, 무화과, 사과 등을 내놓고 포도주를 따랐다.

화면 왼쪽에 주피터가 앉아 있고 붉은 옷을 입은 머큐리가 옆에 앉은 필레몬을 바라보고 있다. 잔이 비워지자마자 저절로 채워졌다. 이를 본 필레몬이 신성한 손님들의 정체를 깨달으며 놀란 가슴에 손을 대고 있다. 오른쪽 바우키스가 신들이 자신의 집을 찾아 준 사실을 영광스러워하며 단 한 마리 남아 있던 거위마저 잡으려 하자 주피터가 오른손을 들어 이를 말리고 있다. 기름 등잔의 빛이 머큐리의 눈과 필레몬의 이마에 반사되어 긴장감을 자아낸다. 루벤스 특유의 인물 표현이 인상 깊다.

관람객들이 기념 ‘셀카’를 가장 많이 찍는 곳은 마리 앙투아네트 그림 앞이다.

오스트리아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인 마리아 안토니아(마리 앙투아네트)는 1755년 빈에서 태어났다. 오랜 기간 적대관계이던 프랑스와의 조약에 따라 1770년 15세 나이에 프랑스 왕위 계승자와 결혼했다. 그의 남편은 4년 뒤 루이 16세로 즉위했다. 프랑스대혁명은 이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다. 루이 16세는 1793년 1월 21일 처형당했고, 마리 앙투아네트도 같은 해 10월 16일 처형대에 올랐다.

‘정치에 간섭하는 오스트리아 여자’ ‘낭비녀’ 등 악평만 남았지만 오늘날 그는 패션 선구자로 재평가받는다. 비제 르브룅이 그린 이 그림에서 왕비는 전통적인 프랑스 드레스를 입고 있다. 거창한 이 의상은 창백한 빛깔의 실크로 만들어졌다. 화려한 레이스를 여러 층으로 장식한 반소매와 길고 풍성한 옷자락이 특징이다.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아우어바흐)은 18세기 궁정 축하연의 장대한 모습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벨라스케스의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와 반 다이크가 그린 초상화 ‘야코모 데 카시오핀’ 등의 명품도 놓칠 수 없다.
‘야자열매 주전자’. 16세기 유럽인들은 큰 야자열매를 경이로운 물건으로 여겨 수집했다.
‘십자가 모양 해시계’와 ‘누금 장식 바구니’ ‘마노 그릇’ ‘연수정 꽃병’ ‘조가비 모양 그릇’ ‘셔벗용 식탁 장식’ ‘아폴로와 다프네 이야기가 있는 술잔’ 그리고 ‘야자열매 주전자’ 등 공예품들도 눈길을 끈다.
전시의 마지막은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한 조선의 갑옷과 투구가 장식한다. 1892년 조선과 오스트리아는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청과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교다변화 정책을 펼치던 고종은 타개책으로 오스트리아를 선택했다. 오스트리아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동아시아 진출을 꾀했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셈이다. 빈미술사박물관은 이를 1894년 요제프 1세의 수집품으로 등록하고 지금까지 양호한 상태로 보관해왔다.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수교 선물로 보낸 조선의 갑옷과 투구.
관람시간은 적어도 3시간 이상 넉넉하게 잡을수록 좋다. 특별전은 2023년 3월 1일까지 열린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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