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K온, 한투그룹 투자로 한숨 돌린다···1조 조달 눈앞
3년간 15조 투자 구상에 청신호
SK(034730)그룹의 2차전지 제조사 SK온에서 1년 가까이 추진해온 상장 전 투자 유치가 한국투자금융그룹의 투자 덕에 1조 원 이상 조달을 눈앞에 뒀다. 한국투자금융그룹 계열사가 3500억 원 가까이 투자 문을 열면서 얼어붙었던 기관투자가들의 투자심리를 녹인 셈이다. 앞으로 3년간 15조 원을 투자하려는 SK온의 계획에도 한층 더 힘이 실렸다.
3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온 투자 유치를 주도해온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한투PE) 컨소시엄과 MBK파트너스는 각각 국내와 해외투자가를 중심으로 약 6000억 원과 4000억 원 수준의 투자 유치를 잠정 확정했다. 12월 중순 1차로 투자확약서(LOC)를 받고 내년 1월 초 나머지 투자가들도 투자확약서를 낼 계획이다. 이번 투자에 참여하는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21일 충남 서산시에 위치한 SK온 배터리 생산 공장을 찾아 현장 실사를 마쳤다.
한투PE를 중심으로 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와 스텔라인베스트먼트가 참여한 한투 컨소시엄은 6000억 원에 가까운 공동 운용 펀드를 조성한다. 한국투자증권과 한국투자캐피탈이 3500억 원가량 출자하고 동원그룹 계열사도 재무적투자자 자격으로 수백억 원을 출자한다.
MBK파트너스는 본래 보유했던 스페셜시추에이션펀드(특수 상황을 맞은 기업의 소수 지분에 투자하는 펀드)와 해외 기관투자가의 공동 투자 형태로 4000억 원 이상 규모의 투자펀드를 조성한다. SK온 관계자는 “연말까지 투자 유치 작업이 일단락되면 2024년 이후 완전한 흑자는 물론 더 큰 성장도 바라볼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SK온이 악화된 시장 상황에서도 31일 1조 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한 것은 기업가치를 처음의 절반 수준인 22조 원으로 낮추는 등 투자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말 처음 투자 유치를 논의할 때 SK의 기업가치는 40조 원에서 출발했고 본격적인 투자 유치 절차에 들어가서도 30조 원 이상을 유지했다. SK온은 투자 형식도 투자자가 위험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보통주만 허용했지만 이후 최소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전환우선주(CPS) 형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최대 3조 원을 기대했던 투자 유치 규모도 1조 원을 약간 넘는 수준이 됐고 최소 보장 수익률은 5.5%에서 7.5%로 올랐다.
이번 투자는 SK온이 발행하는 CPS를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PE) 컨소시엄과 MBK 조성 펀드가 매입하는 방식이다. 투자자들은 배당 가능 이익이 있을 때 우선주 주주로서 배당을 갖고 나중에는 보통주로 전환해 상장 과정에서 추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SK온 입장에서는 지분이 희석되지 않고, 주당 단가가 고정된 상태에서 적자가 나면 배당을 주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다.
통상 투자 유치 규모를 높이고 수익률을 최대화하기 위해 활용하는 주식담보대출인 인수금융은 이번에 쓰지 않았다. 현재 인수금융 금리는 8~9% 선으로 올라 있어 SK온 측이 제공하는 최소 보장 수익률보다 높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2조 원을 계획했던 투자 유치 규모는 1조 원을 약간 넘는 수준으로 마무리됐다.
SK온은 유동성이 풍부했던 지난해 말부터 JP모건과 도이치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해 칼라일 등 해외 사모펀드와 국부펀드를 중심으로 유치 활동을 벌였다. 국내에서는 새마을금고가 가장 많은 2500억 원의 출자를 검토했고 국민연금도 1000억 원 안팎의 투자를 논의했다.
SK온은 2019년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부이던 시절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9위에 불과했지만 2020년 말 5위로 뛰어오른 뒤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SK온은 올해 8월 누적 기준 사용량 18.4GWh, 점유율 6.4%를 기록했다. 사용량은 전년 동기 대비 99.2% 늘었고 점유율도 이 기간 0.7%포인트 증가했다.
다만 재무적투자자(FI)들의 시각은 기업과 다소 달랐다. SK온 사업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제시한 기업가치가 수천억 원의 적자 기업 치고는 높다는 비판이 일었고 비상장사 투자 등 대체투자 자체에 보수적 기조가 확산하면서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지갑을 닫았다. SK온에 따르면 올해 매출은 7조 40억 원에 달하지만 영업손실은 6860억 원, 당기순손실은 849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SK온 배터리 사업 자체의 전망성은 밝지만 현재 시장 유동성이 줄어든 상태에서 영업이익 없이 현금 투자로 경쟁하는 ‘캐시버닝’에 투자할 FI는 많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SK온은 최근 금융사 단기차입금 한도를 기존보다 2배 가까이 늘려 3조 4600억 원으로 잡았고 무역보험공사 등의 보증을 받아 유럽에서 총 20억 달러(약 2조 6200억 원) 규모의 대출을 확보했다. 무보의 보증을 받아 확보한 대출은 비교적 안정적인 자금 조달로 평가받았지만 단기차입금을 늘린 점은 투자 유치 불발에 대비한 미봉책 아니냐는 해석이 일었다.
이후 SK온이 조건을 낮추면서 한투그룹 등이 나섰고 국내 전기차 업계가 ‘재앙’으로 여긴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SK온에는 수혜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외부 투자자 중에서는 농협중앙회가 가장 큰 금액을 베팅했고 군인공제회도 참여한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도 나란히 동참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행정부는 IRA 통과 이후 중국산 소재를 배제하고 미국 전역에 배터리 생산 시설을 갖추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한다. SK온 등은 호주 등 자원 부국에서 광물을 채취,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가공해 미국의 지원을 받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
SK온은 호주의 천연 흑연 공급 업체 시라와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는데 시라는 이번 미국 보조금 수혜 기업 목록에 올라 있다. 그 밖에 SK온은 호주 레이크리소스 지분 10%에 투자하고 친환경 고순도 리튬 23만 톤을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SK온이 이 리튬을 중국이 아닌 미국과 FTA 체결 국가에서 제련하면 보조금을 기대할 수 있다.
IB 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가장 침체한 국면은 오히려 낮은 가격에 투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면서 “투자를 받는 기업 역시 너무 높은 가치로 투자를 받으면 투자금 회수를 위한 상장 등에서 무리가 올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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