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日 시장 개입에도 끝 모를 초(超)엔저 그늘…日 경제 앞날은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릴 만큼 저성장 늪에 빠져있던 일본 경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올해 초 달러당 115엔(약 1127원) 수준이던 엔화 가치는 약 10개월 만에 30%가량 추락하면서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기던 ‘1달러=150엔’마저 깨졌다. 일본의 지난 9월 소비자물가는 3% 올라 1991년 이후 3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엔화 약세 현상의 지속이 ‘원자재 비용 상승→생산비 증가→물가 상승’이란 결과로 나타났다. 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전 세계는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를 따라가고 있지만, 막대한 부채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 입장에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2021년 기준으로 미국이 132.6%인 반면 일본은 263.1%에 달한다. 이미 일본 정부는 현재 1년 예산의 25%를 국채 원리금을 갚는 데 쓰고 있는데, 만약 여기서 금리가 1%만 올라도 2025년도 원리금 부담은 3조7000억엔(약 36조3000억원)가량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본은행이 쉽게 금리 인상을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다. 결국 일본은 지난 9월에 이어 10월도 외환보유액을 이용해 엔화를 사들이는 방식의 ‘복면개입(覆面介入·비공식 개입)’을 통한 환율 방어로 엔저를 버티고 있다. 하지만 효과는 일시적일 뿐이다. 필자는 “환율을 안정화하는 것은 일본 재무성의 권한이지 일본은행의 권한이 아니다”라며 “일본은행은 국내 경제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엔화 가치 하락을 늦추는 데 도움 될 정책 금리와 장기 금리 인상을 시작할 때가 됐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지난 2016년 재무성 차관보 시절, 엔화 가치 적정 수준을 달러당 120~125엔으로 제시한 바 있다.
9월 22일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BOJ)은 엔화 가치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1998년 이후 24년 만에 처음으로 외환 시장에서 달러를 팔아 엔화를 구매했다. 엔저 현상을 막기 위한 일본 재무성의 개입 효과는 한동안 나타나는 듯 보였다. 개입 이후 146엔 가까이 치솟았던 엔·달러 환율이 같은 날 141엔에 근접하게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엔저 공포는 다시 일본을 급습하고 있다. 개입 당시 3주 동안 엔·달러 환율은 146엔 아래를 유지했지만, 10월 20일에는 심리적 지지선인 150엔대까지 흔들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과연 ① ‘엔저 현상’이 나쁘기만 할까,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보통 환율 약세는 수출 업자들에게 이익을 가져오고 경제를 빠르게 성장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문제가 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이어졌던 엔저 현상으로 인해 일본 제조 업체가 생산 시설을 해외로 이전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회사 제품 원재료를 수입하는 일본 기업이라면,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그만큼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때 엔화 약세에 힘입어 수출 대국으로 우뚝 섰던 일본은 지금 엔저 현상 때문에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 커지고 있다. 엔화 가치 하락은 일본 회사의 해외 계열사 관련 이익이나 배당금을 부풀리기도 하는 반면 일본의 수출 물량이나 국내 고용률을 즉각적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엔화 가치 하락은 사실상 거의 이익을 가져오지 않을 뿐 아니라 수입 인플레이션 형태의 높은 비용도 수반한다.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지난 9월 소비자물가 지수는 지난해 동월 대비 3% 상승했다. 2014년 소비세율 인상에 따른 상승을 제외하면 1991년 8월(3%) 이후 31년 1개월 만에 최고치다.
지난해 말 대비 환율이 30% 넘게 급등하면서 수입 가격이 상승해 식료품 가격, 전기 요금, 가스 요금 등이 일제히 오른 영향이 컸다. 이 같은 경제 상황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國葬)을 마무리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국민 실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주는 전기 요금 인상을 막는 등 인플레이션 퇴치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엔화 가치 하락 제한 시도는 어찌 보면 당연한 조치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최근의 외환 시장 개입은 정치적으로도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G7(주요 7개국)의 환율 변동은 시장 원리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데, 과도한 환율 변동성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끝 모르고 추락하는 엔화 가치의 하락 추세는 우려스러운 점을 보인다. 급격한 엔화 가치 하락에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9월 22일 약 24년 만에 약 2조8400억엔(약 27조8320억원)을 투입해 달러를 매도하고 엔화를 매입하는 시장 개입에 나섰다. 일시적으로 엔·달러 환율은 심리적 저지선인 150엔대에서 144엔대 중반까지 약 7엔가량 내렸지만, 그 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엔화 가치 하락을 막지 못하는 이유를 일본은행 탓이라고 보고 있다. 글로벌 흐름과는 다르게 여전히 ② 초저금리(ultra-low interest rates)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아직도 대규모 금융 완화를 고수하며 전 세계 다른 국가들의 초긴축 기조와 맞서고 있다. 일본은행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단기 금리를 -0.1%로 유지하고, 장기 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의 상한선을 0.25%로 유도하고 있는데, 이 같은 결정에 자본은 일본에서 미국 같은 경제로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엔화 약세에 대한 일본 안팎의 우려는 크지만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을 수정하진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구로다 총재는 10월 18일 엔화 가치 하락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야당의 지적에 대해 “(2013년 4월 아베 2차 내각 때부터 시작된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은) 디플레이션을 해소하고 성장 회복과 고용 증가라는 의미에서 효과가 있었다”면서 “달러가 엔화를 비롯한 모든 통화를 상대로 강세인 상황이고, 일본 경제는 여전히 회복 모드에 있으며 3%의 ‘높은’ 물가 상승률은 일시적이다”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환율을 안정화하는 것은 일본 재무성의 권한이지 일본은행의 권한이 아니다. 환율 변동성을 억제하기 위해 재무성이 환율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일본은행이 가격 안정화를 위해 금리를 조정하는 것처럼 재무성이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각 기관은 상호보완적인 책임 분담을 구현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서든 현재 엔저 현상의 주요 원인은 재무성과 일본은행 통제 밖에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았고, ③ 오펙플러스(OPEC+)가 원유 감산을 결정했다. 미국 달러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재정에 따라 다른 주요국 통화 대비 가치가 치솟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불특정 투기 행위로 인해 달러 대비 엔저 현상이 갑작스럽게 일어난다면 일본 재무성은 다시 개입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일본의 경제적 펀더멘털과 외부의 정세가 지속한다면 엔화는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일본의 인플레이션 고통을 덜어줄 방법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다국적 기업이 엔화 약세 덕분에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일본 내 노동자들에게 분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기적으로 일본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목표한 2%까지 끌어내릴 수 있다. 결국 국내 경제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엔화 하락을 늦추는 데 도움 될 정책 금리와 장기 금리 인상을 시작할 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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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① 엔·달러 환율이 오르며 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엔저(円低) 현상은 일본 제품의 달러 표시 가격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으므로 일본 상품 수출 확대에 큰 도움이 된다. 반면 일본 내 수입 물가의 상승을 불러 서민 생활을 압박해 소비심리를 떨어뜨린다. 일반적으로 엔저 현상은 일본산 제품의 해외 가격 경쟁력을 높이므로 일본과 수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기타 아시아 각국은 불리해질 수도 있다.
② 단기 금리를 사실상 0%에 가깝게 유도하는 것으로 ‘제로금리 정책’이라고도 한다. 일본은행은 1999년 2월 콜금리를 0.25~0.15% 전후로 인하한 데 이어 3월 콜 시장에 다시 대규모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금리를 0.02%까지 떨어뜨렸다. 이후 일본의 제로금리 정책은 내수 자극을 통한 경기 회복, 엔화 강세 저지, 기업의 채무 부담 경감, 금융 회사들의 부실 채권 부담 완화 등의 효과를 냈다.
③ 오펙플러스(OPEC+)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란, 이라크, 베네수엘라 5개국을 중심으로 결성된 석유수출국기구 OPEC에 대응해 러시아, 멕시코 등 OPEC에 속하지 않은 주요 산유국들이 만든 협의체를 말한다. 석유 수출국들의 이익 도모를 위해 주기적으로 회원국들의 석유 공급량과 유가를 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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