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의 골프 오디세이 <108> 경주 루나엑스 골프장] ‘6×4’ 골프장 실험 1년…“혁신이 새 표준 된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2022. 10. 3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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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루나엑스 골프장. 사진 블루원

“처음 도착해서 골프백 내려주는 거 외엔 다~~셀프. 골프채도 카트에 내가 실어야 하고, 거리도 내가 알아서, 볼도 내가 닦고 라이(볼이 지면에 놓여 있는 상태)도 내가 보고, 처음 6홀은 완전 정신없었는데, 그다음부턴 정신이 좀 돌아옴. 캐디가 없어서 비용적인 면에서 아주 합리적.”

“라운드 복장으로 와서 라운드 후 바로 집으로 가는 심플 골프 문화를 새롭게 선보이는 곳!! 노 캐디 라운드에 카트는 버튼만 누르면 가고 서는 자율주행 카트. 6홀 A·B·C·V 코스 중 세 개 코스 도는 재미있는 방식. 18홀 라운드에 그늘집 두 번 옵니다. 두 번째는 피자 테이크아웃!! ^^”

지난해 10월 15일 개장한 루나엑스(LUNA X) 골프장(경북 경주시 천북면)을 이용한 골퍼들이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 남겨 놓은 후기에는 다른 국내 골프장들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이색 체험에 대한 흥미로운 반응이 적지 않다.

루나엑스 골프장은 ‘‘6 곱하기 4’ 코스로 골프의 18홀 틀을 깨겠다’는 창조적 파괴 선언과 함께 등장했다. 중앙에 클럽하우스가 있고 6홀 네 개 코스 24홀로 운영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마치 네 잎 클로버 형태다. 6홀만 칠 수도 있고 12홀, 18홀, 24홀 등 원하는 방식으로 돌 수 있다.

그리고 ‘허례허식’이 많은 한국의 골프 문화를 심플하게 바꾸겠다는 생각과 함께, 캐디 없는 ‘노(NO) 캐디’, 골프 옷을 입고 와서 그대로 치고 가는 ‘노(NO) 환복(옷 갈아입기)’, 온라인 예약과 선결제를 통한 ‘노(NO) 프런트’ 시스템으로 변신했다.

지난 1년간 루나엑스의 파격적인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 루나엑스란 골프장 이름은 구글의 급진적 업무 방식인 문샷 싱킹(moon-shot thinking)’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달을 좀 더 잘 보기 위해 망원경 성능을 높이는 대신 달에 갈 수 있는 탐사선을 제작하겠다는 혁신적인 발상을 뜻하는 말로 ‘10%의 개선이 아닌 10배의 혁신’에 도전하는 구글의 급진적 업무 방식을 이른다. 자율주행자동차, 구글 글라스 등을 개발한 비밀연구소인 구글 X랩은 문샷 싱킹을 실천하는 핵심 조직으로 꼽힌다.

결국 루나엑스를 한국 골프의 혁신을 실천하는 핵심 실험실로 삼겠다는 의지다.

루나엑스 골프장을 운영하는 블루원리조트의 윤재연 대표는 “골프의 문턱을 낮춰 처음 골프 하는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 1981~2010년생)와 시니어 세대가 고루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허례허식이 많은 한국 골프 문화를 간편하고 재미있는 ‘심플 골프’로 바꿔 나가는 시도로 출발했는데, 예상보다 고객 반응이 좋아 기쁘다”고 돌아봤다.

그동안 세계 대부분 골프장은 클럽하우스를 중심으로 나가면서 도는 9홀 아웃코스와 다시 클럽하우스로 돌아가면서 경기하는 9홀 인코스로 18홀을 구성하는 게 코스 설계의 정석이었다. 이는 세계골프규칙을 관장하는 영국의 R&A(로열 앤드 에인션트 골프클럽)가 1858년 ‘한 라운드는 18홀을 의미하고 별다른 예외 조항이 없을 경우 이를 따른다’며 한 라운드 18홀 원칙을 정한 이후 관행이 됐다.

지난 1년간 골프장 이용 현황을 보니 18홀 이용이 가장 많았고 6·12·24홀을 선택 이용한 고객도 적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골프장 내에 있는 연습장에서 라운드 전에 한 시간 연습하고 6홀 라운드하는 플레이어의 만족도가 가장 높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시간과 비용은 적게 들면서 골프 실력 향상에 가장 도움 되더라는 의견이 많았다.

2011년 골프 레전드 잭 니클라우스가 “현대인의 바쁜 생활 리듬을 고려하면 18홀 골프는 너무 길다. 12홀 라운드가 적당하다”고 주장하고는 자신이 설계하고 운영하는 미국 오하이오주 더블린의 뮤어필드 빌리지 골프클럽의 스코어 카드를 18홀이 아닌 12홀만 인쇄해 만들어 놓기도 했다. 시대와 맞지 않는 게임의 법칙을 바꾸자는 주장이었다.

루나엑스 골프장 개장 1주년 기념라운드를 하는 윤재연(왼쪽 첫 번째) 대표와추첨을 통해 선정된 고객들. 사진 블루원

루나엑스의 ‘6 곱하기 4’ 코스는 짧은 홀을 경기하고 싶어 하는 골퍼들뿐만 아니라 18홀보다 더 많은 홀을 경기하려는 요구에도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또 그늘집이나 화장실이 필요하지 않고 개장 이후 이용객들이 코스에 들어차는 시간이 짧은 점 등 6홀 단위의 코스 설계엔 장점이 많다는 의견이다.

루나엑스 골프장에 들어가는 비용은 일반 골프장의 60~75% 선으로, 저렴하다. 골프장 이용료와 카트 사용료를 합해서 주중 6홀 기준 5만~8만원이다. 18홀 기준으로는 주중 12만5000~17만5000원, 주말 16만~21만원으로 구성돼 있다. 시간 선호도에 따라 같은 날에도 요금을 다르게 구성해 놓았다. 요금은 선결제 방식이어서 프런트를 이용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 클럽하우스는 1, 2층 라운지에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소형 로커룸이 있다. 1인 샤워장과 대형 로커룸을 유료로 운영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전면적으로 ‘노 캐디’ 시스템을 적용하면서 쌓은 노하우는 다른 골프장에도 참고가 될 만하다. 캐디 없이도 불편 없이 경기하고 홀 정보와 남은 거리 등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카트는 전 코스를 자동으로 주행하고, 코스 정보가 내장된 노트북을 지급한다.

셀프 라운드를 돕고 골프채 분실을 막기 위해 클럽 두세 개를 넣을 수 있는 소형 해프 캐디백을 무료로 빌려준다. 지금까지 해프 캐디백을 사용한 고객 중 클럽을 분실한 경우가 없다고 한다.

루나엑스 골프장에는 국내 최장 340m 거리의 천연 잔디 연습장도 있다. 3개 층 57개 타석을 갖춘 플레이엑스 연습장, 야외 스크린 골프 시설, 타구 측정 시스템 등 최첨단 시설을 갖춰 놓았다. 골프연습장만 이용하러 오는 이도 많다고 한다.

루나엑스 골프장 관계자는 “디지털 환경으로 빠르고 재미있는 심플 골프를 즐기면서 동시에 친환경 골프장을 통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도 강하다”고 했다.

화재 예방 및 쾌적한 환경을 위해 주차장 입구와 진행실 앞 외, 코스에서 흡연을 금지한다. 일회용 종이컵과 생수병을 두지 않고 텀블러 이용을 권장한다. 텀블러를 사용하는 고객은 스타트 구역에 비치된 정수기에서 깨끗한 물과 얼음을 이용할 수 있다.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 열리는 패밀리 골프대회는 프로 골퍼처럼 실전 경기에서 우승 경쟁을 벌이도록 했다. 윤 대표는 “모두 함께 즐기는 명랑 골프뿐만 아니라 골프 실력 향상을 위한 ‘진지 골프’도 체험해보시라는 의도였는데, 인기 만점”이라고 했다.

클럽하우스 식당에서는 구운 바닷가재 스파게티, 한우 육회 브로파이즈 스파게티, 고구마 포크커틀릿 피자이올라 등 다양한 세대 입맛에 맞출 수 있도록 해, 지역 맛집으로도 유명해지고 있다. 미국 골프장 헤드 프로를 지내고 SBS 골프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는 김재열 위원은 “한국은 어느 골프장이나 화려한 클럽하우스를 지으려 하고 대중제도 회원제처럼 운용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루나엑스의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심플 골프’ 운동은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골프의 기존 틀을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루나엑스의 실험이 확산하면, 단일 색이던 K골프의 콘텐츠가 더 풍부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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