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열전 | 안병철 국립암센터 혈액종양내과 교수] “폐암 표적치료제 개발로 환자 생존 연장”
한국인 ‘사망 원인 1위’ 암. 그 가운데서도 사망률이 가장 높은 폐암의 5년 상대 생존율(암 환자가 5년 이상 생존할 확률)은 34.7%에 불과하다. 암 환자 전체 생존율의 절반 수준이다. 이마저도 원격 전이로 진행됐다면 생존율은 6.1%까지 ‘뚝’ 떨어진다. 폐암은 크기와 형태에 따라 소세포폐암(SCLC)과 비소세포폐암(NSCLC)으로 나뉜다. 이 중 비소세포폐암 비중은 최대 8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세포 성장 속도가 비교적 느려 조기 발견 시 수술로 완치도 가능하지만, 실제 수술이 가능한 환자는 네 명 중 한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폐암 환자 생존율이 낮은 것은 조기 발견이 어렵기 때문이다. 폐에는 통증을 일으킬 수 있는 신경이 거의 없다. 객혈 같은 평소에는 없었던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면 이미 초기는 지났다. 이상 증상은 폐 외 다른 부분으로 암세포가 전이됐다는 신호다. 폐암 판정 환자들이 절망하는 이유다.
벼랑 끝에 몰렸다는 생각에 검증되지 않은 치료제에 손을 대는 환자도 있다. 2019년 미국의 한 폐암 환자가 동물용 구충제 ‘펜벤다졸’을 먹고 완치됐다는 온라인 동영상이 떠돌면서 한때 국내서 동물용 구충제 ‘품절 대란’까지 벌어졌다. 이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의 대표적인 예다. 폐암 치료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로는 진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꼽힌다. 대표적인 돌연변이는 상피세포 성장 인자 수용체(EGFR)와 ALK, ROS1, KRA 등이다. 이 중에서도 EGFR은 비소세포폐암에서 최대 40%까지 관찰되는 흔한 유전자 변이 암이다. 국내 비소세포폐암 환자 중 EGFR 변이 양성 비율이 38%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
국내외 의료계와 제약사는 돌연변이에 주목했다. 그래서 나온 게 ‘표적항암제’다. 암 생성 때 생기는 생체 물질의 활동을 억제해 암세포 증식을 막는 것이다. 암 치료가 고통스러운 것은 치료제가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도 함께 공격하기 때문이다.
국내외 대표적인 EGFR 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 표적치료제로는 아스트라제네카의 이레사(성분명 게피티니브)와 로슈의 타쎄바(성분명 엘로티닙) 등이 꼽힌다. 국내에서는 유한양행이 2021년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를 허가받으며 국산 폐암 신약 시대를 열었다. 렉라자는 2021년 1월 EGFR 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 2차 치료제로 허가받고 같은 해 7월 보험급여 적용을 받았다. 안병철 국립암센터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생한 경우에는 유전자 돌연변이만을 표적해 폐암을 조절할 수 있다”라며 “오히려 유전자 돌연변이 없이 흡연이나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한 폐암이라면 복합적인 요소로 표적치료만으로 치료가 잘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다음은 안 교수와 일문일답.
폐암이란 무엇인가. 여러 종류가 있을 텐데, 어떻게 종류를 구분하는지 궁금하다.
“암이란 유전자 돌연변이로 발생한 암세포가 죽지 않고 계속 증식해 생기는 질환을 통칭한다. 유전자 돌연변이라고 해서 꼭 유전병은 아니다. 담배, 미세먼지 같은 대기오염, 발암물질 등에 의해 유전자가 약해지거나 돌연변이가 발생하면서 정상 세포가 암세포로 바뀐다. 폐암은 폐에 있는 세포에서 발생하는 암이다. 크게 소세포폐암과 비소세포폐암으로 나뉜다. 비소세포폐암은 소세포폐암과 비교해 유병률도 상당히 높고 유전자 돌연변이가 다양하다.”
한국인에게서 흔하게 나타나는 폐암과 돌연변이가 있나.
“폐암 중에서는 인종과 관계없이 소세포폐암보다는 비소세포폐암이 더 많이 나타난다. 비소세포폐암에서도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EGFR 돌연변이는 아시아인에게서 더 많이 확인된다. EGFR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경우를 EGFR 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으로 정의한다. 이는 서양인, 백인보다 한국과 동남아를 비롯한 동양인, 황인에게 훨씬 더 많이 나타난다. 유전학적으로 인종적 특성의 차이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개개인의 암 원인이 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찾아 치료한다고 들었다. 이 유전자 종류에는 어떤 게 있고 돌연변이마다 치료법은 어떠한가.
“표적치료제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몇몇 돌연변이를 막으면 폐암세포가 죽는다. 담배나 다른 원인으로 생기는 폐암은 하나를 막는다고 치료되지 않는다. 돌연변이에 의한 폐암만 막는다. 가장 흔한 유전자 돌연변이가 EGFR이다. 약 15년 전만 해도 폐암을 일으키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두 개 남짓이었는데, 현재 여덟 개 이상의 돌연변이 검사가 가능하다.”
모든 암이 그렇듯 조기 발견이 중요할 것 같다. 폐암을 자가 진단할 방법이 있는지, 없다면 얼마 주기로 병원을 방문해야 하나.
“확실히 폐암은 조기 발견이 어렵다. 폐 세포 자체에 통증을 일으키는 신경이 거의 없다. 보통 폐를 감싸고 있는 흉막이나 뼈를 파고드는 상태여야 통증을 느낀다. 이 정도 증상이 나타나면 이미 초기는 아니라는 의미다. 일정 나이가 넘어가고 흡연력이 있다면 건강검진으로 CT 검사를 권한다.”
폐암 치료제들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신약 등장에 따른 폐암 치료 성과는.
“과거에는 표적치료제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산소 호흡기를 차고 임종실에 들어갈 정도로 상태가 악화했던 한 환자를 검사한 결과 EGFR 변이를 확인했다. 당시 EGFR 변이 표적치료제 1세대로 불리는 게피티니브(제품명 이레사)가 임상시험 중이었다. 해당 치료제를 투여한 환자가 1~2주 만에 걷기 시작했다. 완치제는 아니지만, 죽을병으로 여겨졌던 폐암을 조절하고 1~2년 더 살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망할 수도 있었던 환자가 단 6개월, 1년이라도 더 살 수 있게 됐다면, 괄목할 만한 발전이라고 본다.”
국산 폐암 치료제로 렉라자가 개발됐다. 성과와 의미를 평가해달라.
“렉라자는 3세대 EGFR 변이 표적치료제다. 같은 3세대 치료제로 아스트라제네카의 오시머티닙(제품명 타그리소)이 있는데, 시장 대부분을 점유했다. 렉라자는 기존 약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서양인과 동양인의 유전적 차이를 고려해 개발했다. 국내 허가를 거쳐 해외 임상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확인한다면 국내 최초의 글로벌 항암 신약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기억에 남는 환자 케이스는.
“렉라자 임상 2상에 참여했던 4기 환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기존에 다른 치료제를 쓰다가 내성이 발생해서 렉라자를 처방했다. 한 번 내성이 생기면 1년 이내에 치료제를 변경해도 질병이 악화하는데, 렉라자를 쓰고 지금까지 5년 이상 치료가 잘 유지되고 있다. 내성 발생 이전 치료 기간까지 고려한다면 이 환자는 폐암을 처음 진단받은 후 8~9년 생존하면서 치료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에는 폐암 4기 환자에게서 이런 치료 결과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주로 어떤 환자에게 렉라자가 효과 있는지 궁금하다.
“렉라자는 EGFR 변이 표적치료제이기 때문에 우선 EGFR 변이가 확인돼야 한다. 렉라자를 포함한 3세대 EGFR 변이 표적치료제는 뇌혈관 장벽(BBB·Blood-Brain-Barrier) 투과도가 높아 뇌 전이가 발생한 환자에게서도 우수한 치료 효과를 보인다.”
최근 유럽종양학회(ESMO)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해외 폐암 치료 트렌드는 어떤가.
“효과적인 치료제를 조기에 사용한다는 전략이 치료 트렌드로 잡혔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도 수술 전 보조요법으로 치료제를 사용해 암 종양 크기를 줄이고 수술을 진행한다. 재발을 늦추기 위해서도 효과적인 치료 옵션을 조기에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결국 폐암뿐 아니라 다른 질환 역시 모두 조기 치료 세팅으로 치료 전략이 집중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효과적인 치료제의 조기 사용으로 환자가 더 오래 살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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