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최초 ‘비(非)백인 총리’ 탄생] ‘자산 1조’ 인도계 英 총리 리시 수낙 “안정과 통합 최우선”

이선목 기자 2022. 10. 3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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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 수낙 신임 영국 총리가 선출 하루 뒤인10월 25일(현지시각) 다우닝가 10번지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UPI연합

“영국은 심각한 경제적 도전을 받고 있다.”

리시 수낙(42) 영국 신임 총리는 10월 24일(이하 현지시각) 선출 확정 후 첫 연설에서 “안정과 통합을 최우선 순위로 두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44일 만에 불명예 사퇴한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뒤를 이어 57대 영국 총리에 올랐다.

영국 총리실은 10월 25일 수낙 총리가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을 알현했으며, 찰스 3세가 수낙 총리의 내각 구성을 요청한 후 총리 취임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하루 앞선 24일 단독 후보로 보수당 대표 및 57대 총리 내정자로 결정됐다.

이로써 수낙 총리는 영국 역사상 첫 비(非)백인 총리이자 210년 만의 최연소 총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1980년 5월생인 그는 만 42세로, 1812년 로버트 젠킨슨(만 42세) 이후 210년 만의 최연소 총리다.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인 수낙 총리는 의사 아버지와 약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자랐다. 그는 인도 신분제인 카스트 제도 최상위층 브라만 계급으로, 전형적인 영국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영국 명문 윈체스터칼리지를 거쳐 옥스퍼드대 PPE(철학·정치·경제학),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고,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등에서 일했다. 

수낙 총리는 재력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2009년 인도 정보통신(IT) 대기업 인포시스의 창업자 딸인 아크샤타 무르티와 결혼했다. 영국 더타임스에 따르면, 이들 부부 재산 규모는 7억3000만파운드(약 1조2000억원)로, 영국 내 222번째 부자다.

정계에는 2015년 영국 하원의원 당선으로 발을 들였다. 이후 테리사 메이 전 총리 내각에서 주택공공자치부 차관, 보리스 존슨 전 총리 내각에서 재무부 장관에 파격 발탁되며 총리 후보군에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는 트러스 전 총리와 경쟁했던 지난 9월 보수당 대표 원내 경선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당원 투표에서는 패했다. 존슨 전 총리가 지난 7월 ‘파티 게이트’ 등으로 사퇴 압박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장관직을 내려놔 ‘배신자’로 낙인찍힌 데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수낙 총리 앞에는 만만치 않은 중책이 놓여있다. 우선 파운드화 가치와 국채 가격 폭락 등 혼란에 빠진 영국 경제를 수습해야 한다. 수낙 총리는 과거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면서 △법인세 19%→25% 인상 △국민보험(NI) 분담금 비율 1.25%포인트 인상 등 증세안을 공약했었다. 수낙 총리가 제러미 헌트 재무부 장관, 제임스 클리버리 외무부 장관 등 핵심 부처 장관을 유임시킨 것도 시장 안정을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보수당에 대한 여론 악화 등도 당면한 과제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스코틀랜드 독립 시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유럽연합(EU)과 갈등,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에너지 부족에 따른 정전 위기 등 수많은 난제가 수낙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수낙 총리의 정치 경험 부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가디언은 “수낙은 하원의원 경력 7년, 내각 장관 경력은 2년밖에 되지 않는다”며 “대내외 여러 위기에 대비할 수 있는 경험이 부족하다”고 했다.

연결 포인트 1
44일 만에 끝난 트러스 천하
英 경제혼란 사과는 없었다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운 트러스 전 총리가 실책에 대한 사과 없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취임 약 44일 만에 사퇴한 트러스 전 총리는 영국 역사상 최단기 재임한 총리로 남게 됐다. 직전 기록은 1827년 취임 119일 만에 사망한 조지 캐닝 총리다.

트러스 전 총리는 10월 25일 오전 남편, 두 딸과 함께 버킹엄궁을 방문해 찰스 3세 국왕에게 사직서를 전달했다. 앞서 그는 10월 20일 총리 사퇴를 공식 발표했지만, 영국 규정에 따라 후임자가 찰스 3세 국왕으로부터 공식 총리 임명을 받기 전까지 총리직을 유지했다. 

트러스 전 총리는 이날 버킹엄궁 방문 전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서 고별 연설을 했다. 트러스 전 총리는 “엘리자베스 2세 서거 및 찰스 3세 새 국왕 즉위식을 주관하는 거대한 영예를 누렸다”며 “영국은 계속해서 폭풍을 이겨내고 있다. 다만 영국을 믿고 영국 국민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추진하려 했던 ‘감세를 통한 성장책’을 재차 강조했다. 트러스 전 총리는 높은 성장과 낮은 세금 이념을 여전히 믿고 있다며 “총리 재임 중 우리가 직면한 도전에 더 과감하게 맞서고 담대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정책으로 수천 개 기업이 도산을 피했고, 악의의 국가(러시아)로부터 에너지 독립을 이뤘다고 자평했다. 이어 그는 평의원으로서 계속 일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후임 수낙 총리의 성공을 기원했다.

트러스 전 총리의 연설에 대해 BBC방송은 “그의 마지막 연설은 3분 7초로 (스캔들로 불명예 퇴진한)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절반보다도 짧았다”며 “영국 경제를 혼란에 빠뜨린 것과 관련해선 어떠한 사과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수낙 총리는 취임 연설에서 “트러스 전 총리의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10월 25일 한 예술가가 인도 뭄바이의 거리에서 리시 수낙 영국 신임 총리 당선을 축하하며 그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사진 로이터뉴스1

연결 포인트 2
사상 첫 인도계 영국 총리 탄생
옛 식민지 인도 “획기적 이정표”

인도계 이민 가정 출신인 수낙이 영국 총리에 오르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온 이민자 후손이 영국의 최고지도자에 오른 것이다. 

인도는 수낙 총리의 취임을 환영했다. 수낙 총리 선출이 확정된 10월 24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트위터에 “수낙이 영국 총리가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인도와 영국을 잇는 ‘살아 있는 다리’가 되길 바란다”며 그의 취임을 ‘스페셜 디왈리’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이날은 힌두교 최대 축제인 ‘디왈리(Diwali)’ 당일이었다. 인도 언론들도 수낙 총리 취임 소식을 앞다퉈 보도했다. NDTV는 “인도 아들이 제국을 정복했다”고 전했고, 타임스오브인디아는 “자랑스러운 힌두교도 수낙이 새 영국 총리가 됐다”고 했다.

영국 다문화주의 성숙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잇따랐다. 로이터는 EU 외교관의 발언을 인용해 “프랑스나 독일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으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라고 전했다. 영국 싱크탱크 브리티시 퓨처의 선더 카트왈라 이사는 “최근 수십 년간 영국 정치와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역사적 순간”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수낙 총리 당선에 대해 “상당히 놀라운 일”이라며 “아주 획기적인 이정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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