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한의 일본 탐구 <26> 제4차 한류 붐에 日 코리아타운 부활] 전성기 맞은 日 코리아타운…연초 오사카 이어 고베도 설립 추진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던 일본 내 코리아타운이 한류(韓流) 붐을 타고 있다. 이곳을 찾는 일본인과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고, 상권도 커지는 추세다. 도쿄의 신오쿠보 코리아타운은 전국적인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올 1월에는 오사카의 3개 재래 상가가 모여 ‘오사카 코리아타운’을 공식 출범시켰다. 재일교포가 세 번째로 많은 고베에서도 새로운 스타일의 코리아타운이 곧 선을 보인다. 일본에는 60여만 명의 재일교포(북한계 포함)가 살고 있다. 코리아타운을 이용하는 일본인들이 한·일 간 우호 증진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일본인 고객 급증하는 코리아타운
10월 24일 오후 일본 제2 도시 오사카의 JR오사카역에서 20여 분 기차를 타고 쓰루하시역에서 내렸다. 중앙 출구를 나서자 김치와 한국 음식을 파는 매장이 줄지어 있다. 진짜 코리아타운은 이곳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삼삼오오 몰려가는 20대 여성들을 따라가니 오사카 코리아타운 간판이 나타났다. 원래 명칭은 ‘미유키도리(御幸通) 상점가’다.
시장 인근 대로변에는 최신 한국풍 카페가 성업 중이다. 우산을 쓴 젊은 여성들이 줄을 서서 입장 순서를 기다린다. 오사카 코리아타운을 들어서자 좁은 길 양쪽에 화장품, 슈퍼, 김치와 한국 식자재, 치킨 프랜차이즈, 정육점, 돼지불고기 매장이 빼곡하다. 약 500m 상점가는 비가 오는 월요일 오후인데도 사람들로 붐빈다. 한국 식품을 취급하는 덕산상점 관계자는 “요즘 토, 일요일에는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방문객이 몰려온다”고 말했다.
오사카 코리아타운이 있는 이쿠노구는 일본 지자체 가운데 외국인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반도에서 이주해온 교포들이 많이 거주한다. 한·일 월드컵 개최와 한류 열풍을 타고 2000년대 들어 인기 명소로 자리 잡았다. 연간 방문자가 200여만 명에 달한다. 올 1월 JR쓰루하시역에서 남동쪽 1㎞ 떨어져 있는 미유키도리, 미유키도리 중앙, 미유키도리 동쪽의 세 상점가가 통합해 오사카 코리아타운으로 공식 발족했다.
사단법인으로 출범한 오사카 코리아타운은 공중화장실과 방범 카메라 등을 새로 설치했다. 인근 지역 점포에도 문호를 개방해 상권을 키워가고 있다. 당국도 다문화 상생을 행정의 중심 정책으로 내세워 시장 활성화를 지원하고 있다. 11월 현재, 코리아타운의 점포 수는 160개를 넘는다. 오사카 코리아타운의 홍성익 이사장은 “코리아타운 상권이 크게 활성화되면서 중심가 건물 가격은 10여 년 전보다 2~3배 올랐다”고 귀띔했다.
일본에 다시 부는 제4차 한류 붐
일본 대표 코리아타운은 도쿄에 있다. ‘신오쿠보 코리아타운’의 출발점은 1948년 설립된 롯데껌 제조공장이다. 당시 근로자로 재일교포를 고용한 게 시작이다. 1980년대에 유흥가인 가부키초 상권이 커지며 한국계 종사자의 주거지와 한국 식당이 꾸준히 늘어났다. 1990년대 우리나라의 해외여행 자유화와 유학생 증가와 맞물려 상권이 확대됐다. 지금은 점포 수가 600여 개에 달한다.
2002년에 제1차 한류 열풍이 시작됐다. 한·일 문화 개방에 따라 NHK방송에서 ‘겨울연가’ 등 한류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K팝(소녀시대, KARA)이 한류 열풍을 이끌었다. 2010년까지(제2차 한류 열풍)가 신오쿠보 코리아타운의 절정기였다. 당시 휴일에는 6만 명 이상이 몰렸다. 2012~2013년에 예기치 못한 악재를 만났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요구로 한·일 관계가 급속히 악화했다. 한국계 매장의 매출이 급감했고, 방문객은 전성기의 50% 이하로 떨어졌다. 점포 수는 40% 급감했다.
교포 상인들은 상권을 되살리기 위해 2014년 11월 한국 관련 단체를 모아 ‘신주쿠 한국상인연합회’를 발족시켰다. 무료 K셔틀버스 운행을 시작으로 적극적인 고객 유치에 나섰다. 2016년에 소녀상 설치 문제로 한·일 외교 문제가 다시 발생하기도 했으나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류 팬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얼짱 메이크업’ ‘귀요미 댄스’ ‘셀카봉’ 등 한국 문화에 호감을 갖는 젊은이들이 증가했다. 2017~2019년에 제3차 한류 열풍이 불었다. 주부나 고령층이 아닌 저연령층이 중심이 됐다. ‘한국풍 치즈 핫도그’ ‘한국 화장품’을 찾는 고객이 늘어났다. 당시 하루 평균 8만8000여 명이 방문했다. 10대가 일본에서 세 번째로 가고 싶은 곳으로 신오쿠보가 뽑혔다. 신오쿠보역 이용객은 이전보다 30% 이상 증가했다.
잘나가던 신오쿠보 코리아타운은 코로나19 사태로 다시 역풍을 만났다. 2020~2021년에 신오쿠보 지역 방문객은 35~50% 정도 감소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악재’가 일본에서 제4차 한류 열풍을 일으키는 계기도 됐다. 재택 생활이 늘어나면서 넷플릭스에서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등 한국 드라마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덕분에 ‘달고나 커피’ ‘마카롱’ 등 한국풍 카페와 디저트가 유행하고 있다. 니혼TV는 이런 현상을 ‘제4차 한류 열풍’으로 전했다.
일본 전국으로 확산하는 코리아타운
재일교포가 세 번째로 많은 고베에도 코리아타운 설립을 앞두고 있다. 교포 상인과 대학 연구자, 주고베 한국영사관 등이 손을 잡고 2019년부터 고베 시내에 ‘아시안 파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조민일 재일한국상공회의소 회장은 “효고현 내에 아시아계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도쿄, 오사카의 코리아타운과 차별화한 ‘아시안 파크’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안 파크는 고베와 효고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주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상품과 서비스, 정보가 교류하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조 회장 등 교포 기업인들이 실무 작업을 맡고 있다. 아시아계 음식점, 유통 기업과 서비스 기업을 네트워크화하고, 공동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 지난 9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공개 심포지엄을 열었다. 고베 아시안 파크를 공동 기획한 최상철 간사이대 상학부 교수는 “도쿄, 오사카의 코리아타운과 달리 현대적인 시티형 플랫폼을 추진하고 있다”며 “기존 코리아타운과 어떻게 차별화한 경쟁력을 확보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리아타운은 최근 30여 년 사이에 한·일 갈등과 한류 붐을 타고 부침을 거듭했다. 코리아타운 상권 내에서 재일교포 상인끼리 과도한 경쟁이 종종 문제가 되기도 했다.
코리아타운이 지속 성장하려면 몇 가지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 코리아타운의 방향성 정립이다. 한류 붐을 활용하기 위해 ‘한국풍’ 유지에 중점을 둘 것인지, 글로벌 시대를 맞아 현지화와 다문화를 강화할지를 놓고 상인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린다. 둘째, 예전에 비해 갈등이 줄긴 했지만, 한국계와 조총련계 교포 상인들의 단합이다. 양측 교포 간에 코리아타운의 미래 정체성을 놓고 미묘한 흐름의 차이가 있다.
마지막으로 후계자 문제다. 코리아타운 내 매장 운영자 가운데 3, 4세대들이 늘어나면서 가업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후계자를 구하지 못해 베트남인 등이 한국계 매장을 인수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최상철 교수는 “코리아타운 규모가 확장하는 국면에서 현지 일본 주민들과 갈등이 커지는 양상을 보였다”며 “지역 주민과 공생, 발전하는 협력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4차 한류 붐을 통해 한국산 상품과 서비스의 경쟁력은 충분히 증명됐다”며 “앞으로 코리아타운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성장시켜 갈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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