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안전불감증 정황 드러나는 이태원 참사
(서울=연합뉴스) 서울 이태원동에서 발생한 핼러윈 압사 사고에 대한 당국의 조사와 사태 수습 조치가 속도를 내고 있다. 31일 오후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외국인 26명을 포함해 154명이며, 부상자는 중상 33명 등 149명으로 집계됐다. 당국은 이날 사고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벌이는 등 사고 원인과 책임 규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고 당시 상황 분석과 부상자 및 목격자 증언 등 면밀한 조사 결과를 봐야 하지만, 이번 참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이 초래한 인재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없는 첫 핼러윈을 맞아 엄청난 인파가 이태원에 몰릴 것으로 충분히 예상됐는데도 관계당국의 사전 예방조치도 부족했다.
이태원 거리의 안전관리 책임이 있는 당사자들이 사전 모임을 갖고도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참사 사흘 전인 지난 26일 용산경찰서와 용산구청, 이태원역 관계자와 이태원관광특구상인연합회 측은 핼러윈을 맞아 간담회를 했다. 당시 회의에 서울시는 참석하지 않았고 안전관리 대책에 대한 실질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폭력과 마약 등 강력범죄 대처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경찰이 참사 당일 밤 이태원 거리에 배치한 137명의 인력은 사실상 범죄 예방과 단속을 맡은 치안 인력이었던 셈이다. 당시 회의에서 일방통행로 설치와 골목길 진입 통제, 이태원역 무정차 등 좀 더 적극적인 사전 안전조치가 마련됐더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다.
사고가 불가항력적 측면이 있다고 해도 어느 누구도 자기에게 책임이 있다고 나서지 않는 모습도 볼썽사납다. 경찰 측은 사고 2주 전 '이태원지구촌축제' 때와 달리 이태원 일대 교통통제를 하지 않은 데 대해 주최 측이 있는 공식적 축제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국민의 안전을 무한 책임져야 하는 경찰을 향해 경비 매뉴얼에 '공식'과 '비공식'이 따로 있느냐고 물어야 할 판이다. 참사 원인에 대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명을 두고 여권 내에서도 비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장관은 전날 사전 대비가 미흡했다는 지적과 관련해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한 데 이어 이날에도 "과연 그것(경찰·소방 대응)이 원인이었는지 의문"이라며 "선동성 정치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집회나 모임에 시정해야 할 것이 있는지를 더 깊게 연구해야 한다"는 이 장관의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온 나라가 슬픔과 충격에 빠진 이때 사고수습 주무부처 장관에게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은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유가족과 부상자들의 고통을 돌보는 게 최우선 과제다. 또 사고 원인을 면밀히 파악해 책임 소재를 가리고 안전 수칙 준수와 사고 초동 대처 등에 문제는 없었는지도 살펴 한 치의 의구심을 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 뒤로는 안전사각지대 관리와 시민의식 고취 등 근본적인 재발 방지책 마련에 힘써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번 사고처럼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 행사에 적용할 수 있는 인파 사고 예방 안전관리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도 거듭 당부한다. 이태원 참사를 정쟁의 도구화로 사용하려 한다면 국민의 반발과 저항을 면치 못할 것이다. 지금까진 여야를 떠나 각 정당 지도부가 한목소리로 초당적 대처를 강조하고 있으니 다행스럽다. 민주당에선 자당 소속인 서영석(경기 부천정) 의원이 참사 다음 날 당원 수십 명과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자 이재명 대표가 직접 감찰을 지시하기도 했다. 여야가 각종 정치 현안을 두고 극한 대치를 거듭하고 있지만 국가 재난 앞에선 정쟁을 멈추고 사고 수습에 하나가 돼야 한다. 사고 동영상과 가짜뉴스 유포로 인한 피해자의 명예 훼손 방지 등 추가 피해 예방에도 전 사회 구성원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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